수록작품(전체)
38호(2010년/여름) 신작단편(홍명진)
페이지 정보

본문
아홉 번째 집
홍명진
그 집 담벼락에 손을 대자 온몸이 쓰라리는 듯했다. 우둘투둘한 시멘트벽의 질감이 흡사 호렴 알갱이나 멍게 돌기처럼 몸속을 파고드는 듯한 쓰라림. 윤희는 찔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잠금 고리가 떨어져나가 한 짝이 늘 젖혀져 있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대문의 성긴 창살 틈으로 보이는 마당은 또 한 겹의 초록 철망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갈색 반점이 섞인 털이 긴 흰색 시베리안 허스키 두 마리가 사는 집이 소동물원의 사육장처럼 마당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문틈 사이로 들여다보는 사람의 기미를 눈치 챘는지, 긴 목줄을 끌며 일어나더니 컹, 하고 짖을 품새를 취했다. 윤희는 주인이 현관문을 열고 내다보기라도 할까봐 얼른 대문 처마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았다. 윤희 발치엔 미처 주소를 이전하지 못한 우편물들이 쌓여 있었다. 제발 우편물 좀 어떻게 해줘요. 아주 골치 아파 죽겠어요.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짜증스럽게 내뱉던 여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중소기업청에서 보낸 대출금 상환 독촉장, 자동차 관련 압류 통지서, 세무서에서 보낸 부가세 잠체납 고지서, 몇 군데 출판사에서 보내온 구독료를 내지 못한 책자와 홍보물 따위들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 집은 윤희의 의식 속에 요새처럼 홀로 우뚝했다. 수없이 옮겨 다닌 사글셋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나름의 기품과 고고함을 지닌 채로.
사는 동안은 지긋지긋하게 불편하고 성가셨다. 먼저 살던 사람이 그녀에게 건네준 치렁치렁하게 뒤얽힌 열쇠 꾸러미를 받아들 때 윤희는 잡다한 열쇠붙이의 종류에 기가 눌렸다. 한 푼도 안 나갈 것 같은 가벼운 열쇠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이 많은 열쇠들이 전부 이 집에 소용되는 것인가. 그땐 손안에 든 열쇠붙이들의 용도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들이 전혀 소용없는 쇠붙이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사 온 이튿날, 윤희는 열쇠 꾸러미에서 빼낸 현관 열쇠를 들고 찻길 건너 있는 열쇠집을 찾아갔다. 열쇠장이는 관록이 녹록찮아 보였다. 두어 평 남짓한 컨테이너박스 안에는 표창장을 담아놓은 유리 액자 세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금박 테두리를 두른 표창장 하나는 대머리가 훌떡 까진 역대 대통령의 이름과 도장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평생을 컨테이너 박스 안에 갇혀서 뒤틀린 한쪽 다리를 끌고 구두 굽을 갈고, 열쇠를 팠을 사내의 의지가 단단한 입매에 물려 있었다. ‘위 사람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남을 위한 봉사정신이 투철하여 이 사회에……’ 표창장의 문구를 멀거니 쳐다보는 윤희에게 사내가 물었다.
“뭘 하시게?”
윤희는 손바닥에 꼭 쥐고 온 열쇠를 내밀었다.
“이십 년도 더 된 열쇠구만.”
사내는 열쇠를 눈앞에 대고 요리조리 들여다보았다. 등기부등본에 그 집은 1982년에 신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열쇠만 봐도 아세요?”
“요샌 이런 다마를 안 쓰거든요. 한 이십 년 전까지는 다 이런 열쇠를 썼지.”
“다마가 달라요? 어떻게요?”
열쇠 뭉치가 든 조그만 박스를 뒤적거리던 사내가 윤희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냥 다마라고 불러요. 열쇠에 새겨진 무늬 같은 거.”
곰보 자국 같은 동그라미 일곱 개가 불연속적으로 찍힌 열쇠의 무늬. 열쇠의 무늬만 보고도 세월을 가늠할 수 있는 열쇠장이와 마찬가지로 남편 태훈도 가구만 척 보면 나무의 재질과 제작공정, 도장기법을 알아맞혔다. 그건 가구장이로 삼십 년 가까이 살아온 남편의 관록이었다. 그것밖에 그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한때 윤희는 태훈의 몸에서 나는 나무 냄새를 좋아했다. 그의 머리칼이나 귓불 뒤, 겨드랑이에서 나는 톱밥 냄새를 맡으면 은은하게 잠이 몰려왔다. 그를 만나던 이십 대에 그녀는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모든 일에서 한두 발씩 늦은 늦깎이 인생. 윤희는 스물넷에 가까스로 대학생이 되었다. 낮에는 조그만 무역회사에서 경리 겸 비서 일을 보고, 야간대학을 다니던 시절, 아침이면 관자놀이에 침이 꽂힌 것 같고, 골이 지끈거렸다. 잠만 자는 방을 처음 가진 건 집을 떠난 지 2년이나 지난 뒤였다. 일찍 직장을 잡은 고등학교 동창의 자취방을 전전하며 단과학원을 다녔다. 낮과 밤이 나뉜 생활은 어느 한쪽도 완성도를 가지지 못한 불구의 시간이었다. ‘딱 일 년만 공부해보고……’ 하던 것이 삼사 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윤희는 인생이 결코 만만치 않은 미로라는 걸 깨달았다.
대학 일 년을 남겨두고 그녀가 다니던 회사는 문을 닫았다. 사장은 종적을 감춰버렸고, 석 달씩이나 월급을 받지 못한 그녀는 빈손으로 잠만 자는 방에 틀어박혔다. 그때부터 불면이 시작되었나? 정확하진 않지만 그 무렵 남편을 만났다. 아무 때고 그의 자취방을 찾아갔다. 창틀 한쪽 귀퉁이에 놓인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면 밀폐되었던 그의 방에선 희한하게도 톱밥 냄새가 났다. 책상 위엔 방송통신대학교 교재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펼쳐진 책 위에 또 다른 책이 펼쳐져 있고, 낱장의 메모지들과 리포트 용지, 볼펜과 샤프연필, 동전 따위가 아무렇게나 끼어 있었다. 책상 밑에는 돌돌 말린 양말짝과 목에 때가 전 티셔츠, 물기가 바싹 마른 걸레가 한데 뒤엉켜 있기도 했다. 개지 않고 늘 깔려 있는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가 침낭을 뒤집어쓴 것처럼 몸을 말고 있으면 한 마리 짐승이 된 것 같았다. 누군가 그녀를 깨우지 않는다면 몸에 곰팡이가 필 때까지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잔업을 하고 밤늦게 돌아온 그가 문을 따고 들어올 때까지 잘 때도 있고, 그가 돌아오기 전에 몸만 쏙 빠져나올 때도 있었다. 열일곱 살 때 집을 떠나와 가구공장을 떠난 적이 없다는 서른세 살의 남자. 그의 겨드랑이에 머리를 들이밀고 자는 잠은 은은하면서도 달았다. 흡사 빗살무늬 관 속에서 깊고 곤한 잠을 자는 것처럼.
윤희는 주머니 속에 든 그 집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열쇠장이에게 복사한 세 개 중에 하나는 태훈의 열쇠고리에 채워져 있을 것이다. 딸이 갖고 있던 하나와 원래 있던 하나는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넘겼다. 태훈은 그 집 열쇠를 간직한 채 사라졌다. 어느 날 홀연히.
언젠간 태훈이 그 집으로 돌아오리란 걸 윤희는 믿는다. 하지만 윤희의 믿음은 안개 속의 미로를 더듬는 것처럼 자신이 없다. 돌아오는 것도 돌아오지 않는 것도 태훈의 의지다. 윤희는 그 집 열쇠를 만지작거릴 때면 묵직한 슬픔의 실체를 만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가 비워두고 떠난 집, 어쩌면 그 집에서 모든 것이 멈춰버렸을지도 모를 그의 인생과 결부된 모든 것들의 부재…….
“주인 간섭 없는 집이면 돼.”
윤희가 바란 건 그것뿐이었다. 공인중개사를 끼고 일주일이나 발품을 팔았다. 집은 보면 볼수록 실망스러웠다. 그중 마음에 든다 싶으면 수중의 돈과 맞지 않았다. 재래시장 인근의 오래된 주공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간다는 소문과 맞물려 그 일대의 빌라라고 이름 달린 것들은 열세 평짜리 전세가가 기천만 원에서 들쭉날쭉, 시장에 내놓은 입찰품처럼 부르는 게 값이었다. 윤희는 집도 다 인연이 있는 법이라고 말한 공인중개사 남자의 말을 믿고 싶었다. 어디선가 인연이 나타나겠지……. 별생각 없이 차 한 잔 마시고, 두 번째는 맥주 한 잔, 세 번째는 자취방에 들어가 그가 없는 사이에 긴 잠을 자고 나왔던 태훈과의 만남처럼.
그 집을 본 건 다음날 혼자서라도 골목골목 집을 보러 다녀야겠다고 작정하고 공인중개사 남자와 헤어지고 돌아서던 길이었다. 그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서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의 남자가 전봇대에 전단지를 붙이고 있었다. 윤희는 아직 전단지에 풀기도 마르지 않은 그 집을 당장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사십이 좀 넘었을까? 믿지 못하겠다는 듯 생뚱한 표정으로 남자는 따라오라고 했다.
그 집을 처음 본 순간, 윤희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내부를 건성 둘러본 뒤 윤희는 구두 계약으로 10만 원을 건네고 남자가 써준, 아무 형식도 없이 ‘구두 계약금 10만 원 받았음’이라는 영수증을 받아들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뾰족지붕을 가진 그 집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다음날 오전 11시에 계약금을 들고 길 건너 공인중개소에서 남자와 만나기로 하고 그 집을 나왔다. 꼭 뭣에 홀린 기분이었다. 어둑해진 골목으로 나온 윤희는 대문 밖에 서서 그 집을 몇 번이나 올려다보았다.
그날 밤, 윤희는 초조한 마음으로 남편을 기다렸다. 신접살림을 차릴 집을 구하던 때가 생각났다. 소액의 보증금에 월세로 시작해야 하는 살림이었지만 구미에 맞는 집이 없었다. 집이 좀 깨끗하다 싶으면 터무니없이 월세가 비쌌다. 적당한 가격에 집의 상태도 양호한데 태훈이 자꾸만 퇴짜를 놓기에 그녀는 그의 뒤를 따르며 짜증을 부렸다. 대체 살림은 누가 할 건데 그러냐고. 그때 태훈이 말했다. 기름보일러가 된 집을 찾아야 연탄을 안 갈지. 그 이후 이사에 관한 한 그는 단 한 번도 관여한 적이 없었다.
밤늦게 퇴근한 태훈을 끌고 윤희는 저녁에 보았던 그 집을 보러갔다. 윤희는 대문 앞에서 그 집을 손으로 가리켰다. 방이 자그마치 네 개야. 일층에 세 개, 뾰족하게 튀어나온 저 부분은 다락이야. 넓은 발코니도 있어. 다락방을 서재로 꾸미고 발코니엔 차탁을 놓으면 딱 안성맞춤일 거야. 거실 한쪽 벽에 나무로 된 아홉 칸짜리 계단이 있는 복층 구조야. 잠자고 씻고 밥 먹는 곳과 분리된 이층이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 우리 혼자 저 집을 다 쓰는 거야. 주인의 간섭은 일절 없대. 당신도 그랬잖아. 주인집 눈치 안 보고 살고 싶다고. 이제 어깨 쫙 펴고 드나들 수 있어. 사는 동안은 우리 집이니까. 윤희는 별 감흥 없이 뾰족지붕을 쳐다보는 태훈에게 조잘거렸다.
윤희는 결혼 후 떠돌아 다녔던 여덟 군데의 셋집들을 태훈에게 상기시켜주고 싶었다. 딱 한 번 독채로 살아본 걸 빼면 일곱 군데가 다 주인과 얽힌 집이었다. 아이가 쿵쿵거리며 뛴다, 화장실 창문으로 담배꽁초를 던져 마당 하수구가 막혔다, 집 앞 골목은 왜 쓸지 않냐, 대문 초인종을 함부로 누르지 마라, 부부싸움을 할 땐 창문이라도 닫고 해라……. 툭하면 낡은 보일러가 고장 나던 집, 화장실 뒤쪽에 하수저장고가 있던 지하방, 신경이 예민한 노부부가 일층에 살던 지하방, 주인이 일층에 슈퍼마켓을 하던 이층 셋집, 마당에 화장실이 있던 집……. 그 집 앞에서 돌아서며 태훈은 석연찮게 말했다. 오래된 집은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저걸 어떻게 당신이 감당해?
그 집은 윤희의 이름으로 계약했다. 주민등록등본엔 호주도 윤희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살고 있던 지하방의 보증금에 80퍼센트나 더 얹어 계약했다. 그 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그녀에게 굴러들어왔다. 홀로 20여 년을 사신 친정어머니가 텃밭을 포함한 100여 평가량의 시골집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그 집을 처분한 돈의 반을 언니와 여동생이 나눠 갖고 반은 그녀에게 돌아왔다. 셋방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윤희 때문에 속을 끓이던 어머니가 제대로 된 집이라도 한 칸 얻으라고 남긴 유산인 셈이었다.
“당신은 이제 나한테 얹혀사는 거야.”
그 집에서의 첫날 밤 윤희는 농담하듯 말했다. 태훈은 돌아누우며 그래, 이 집 니 꺼다, 농담으로 반응했다.
그 집 이층 테라스로 나가는 창틀 틈바구니엔 질경이가 한 포기 자라고 있었다. 누군가가 홧김에 내던진 것인지, 거실 천장 한가운데 달린 나팔꽃 무늬의 샹들리에 갓에는 미니 피자 한 덩어리가 껌처럼 들러붙어 누룩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정오의 햇살이 뾰족지붕을 지날 때면 깨진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운 빛 한줄기가 미세한 틈을 타고 거실 바닥에 내리꽂혔다. 집 안의 먼지가 그 칼끝 같은 빛살에 갇혀 파닥이는 게 보였다. 새집에서 의욕적인 인생을 설계했을 첫 번째 주인은 그 집에서 십 년을 살고 떠났다. 두 번째 임자부터는 세를 놓았다. 세입자들에게 돌림을 당한 집은 형편없이 거칠어졌다. 계약한 만큼 살다 나갈 집이란 지속적인 애정을 받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윤희네가 들어온 지 딱 일주일이 지났을 때 네 번째 집임자가 집을 매물로 내놓았다. 평일은 덜 했지만 주말과 일요일엔 공인중개사를 동반하고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집을 보러왔다. 태훈이 늦잠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른 오전, 느닷없이 닥친 손님에게 집을 보여주는 일은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심했다. 육 개월이 지나자 인접한 재래시장의 개발 라인에 걸려 그 집 앞집부터 여섯 채의 집이 헐리기 시작했다.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공용 주차장을 만든다고 했다. 이른 아침부터 포클레인이 집을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떨 땐 집 전체의 창틀이 전기 충격을 가한 것처럼 쩌릿쩌릿 흔들렸다. 시멘트가 단단한 내장 벽이나 지붕을 부술 때는 그녀의 달팽이관에 풍뎅이가 들어와 있는 것처럼 귀가 잉잉거렸다. 소리는 이층에서 더 확연하게 들려왔다. 이층은 그야말로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테라스엔 방범 창살조차 없이 구부러진 못 하나가 창이 열리는 것을 막고 있을 뿐이었다. 테라스는 텅 비어 있었다. 바닥에 깔린 타일은 깨지거나 변색되어 누랬다. 먼저 살던 사람은 그곳에다 온갖 짐들을 쌓아두었었다. 짐이 나간 테라스 수챗구멍에는 쥐가 쏠다 만 비누 덩어리와 돌멩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다락방은 아홉 자 정도의 마름모꼴이었다. 천장의 기울기를 따라 한쪽은 윤희의 머리가 닿았다. 책상과 책꽂이, 의자 하나만 달랑 놓인 황량한 이층 그 방에서 소음을 견디며 자란 질경이엔 씨가 맺혔다. 쉬는 날에도 태훈은 서재랍시고 꾸민 이층엔커녕 마당에조차 나가보지 않았다.
태훈은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어서야 들어왔다. 일요일에 그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붙들고 침대에서 뒹굴며 밀린 잠을 잤다. 여성 월간지를 내는 출판사 편집부에서 프리랜서로 교정 일을 보는 윤희가 한 달에 삼사 일씩 야근을 하느라 집을 비울 때, 딸애는 ‘엄마 무서워요’ 하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내오곤 했다. 밤 열한 시가 다 되어 태훈이 돌아올 때까지 딸은 혼자 천장고가 높은 그 집을 지키며 두려움과 싸우면서 보냈다. 그녀가 일하는 잡지엔 자기 스타일의 맞춤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는 고정 꼭지가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부동산적인 소유의 의미가 아닌, 꿈을 설계하는 살아 있는 집이라는 점을 피력했다. 실용성과 이상성을 조화롭게 갖춘, 그야말로 자기만의 스타일, 자기만의 삶이 돋보이는, 꿈을 담보한 집. 삶과 집을 연계하는 온갖 가치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기자의 글 솜씨 역시 꿀같이 달았다. 그 집들은 하나같이 특별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갖는 집과는 다른 무언가로 심도 깊게 포장되어 있었다.
사진이 실린 컬러 대지 교정지를 보면서도 그녀의 눈엔 집이 아니라, 글자만 들어왔다. 이제껏 그녀의 각박한 삶이 그래왔듯, 단지 오자나 탈자, 행간에서 비문을 잡아내야 하는 그녀의 직업병적인 관심을 벗어나면 그건 그저 하나의 그림 조각,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문장에 불과했다.
마감 막바지에 바짝 이틀 밤을 연거푸 새고 집에 돌아오면 윤희는 시체처럼 하루 밤낮을 내리 잠만 잤다. 눈을 떠 보면 대개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남편과 딸애가 공장과 학교로 가고 난 뒤, 멍한 상태에서 잠을 깨면 귀울음처럼 집이 울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사 온 지 열 달 만에 다섯 번째 임자가 집을 인수했다. 하지만 공인중개사로부터 통보만 받았을 뿐, 그녀는 새로운 집임자의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집이 새로운 임자에게 넘어간 다음 달, 그녀도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출판사는 적자를 면치 못하는 책임을 물어 편집장을 몰아냈고, 새로운 편집장은 그가 밖에서 호흡을 맞춰 일하던 멤버로 교정자를 교체했다. 지난 7년 동안 그녀는 죽은 듯이 고요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동안 그녀는 세 번 이사를 했으며, 딸애는 그녀가 없는 사이 늘 혼자서 집을 지키면서도 허리가 잘록하고 엉덩이가 빵빵하게 튀어나온 숙녀가 되었다. 그녀에게 온 계약파계 통보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 한 통이 전부였다. 딸아이가 보내던 문자에 ‘참아, 어쩔 수 없잖아’라고 답해 주었던 일이 뼛속 깊이 그녀를 아프게 했다.
윤희는 7년 만에야 비로소 온전히 집안에 들어앉았다. 윤희가 잡지사에 나가면서 세 번 이사를 한 동안 태훈의 사업은 점차 나빠졌다. 열일곱에 고향을 떠나온 그가 맨주먹으로 가정을 이루고, 자기 손으로 조그만 가구 공장을 차리고, 그 공장이 세파를 따라 폭풍우 속의 배처럼 위험스럽게 항해를 계속하는 동안, 윤희는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그녀가 교정 일을 하기 전에는 어린 딸애를 공장 한 켠 톱밥 더미에 앉혀놓고 거친 나뭇결에 사포질을 했다. 수없이 닦고 문지르는 사이 하루 두 끼씩 꼬박꼬박 직원들의 밥을 해댔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배추 서너 포기씩 김치를 담고 매일매일 새로운 찌개나 국을 끓여대고, 밑반찬을 만들었다. 그때는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가난한 살림은 소금물을 퍼 올리는 수차를 돌리듯 힘겹게 굴러갔다. 직원들의 월급이 밀리고, 자재비 독촉에 시달리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독촉장이 날아들고, 한 번씩 어음부도가 났다. 전셋집을 줄여 월세방이 되었다가, 공장 사람들의 밥을 해대던 가건물로 들어가 살던 때도 있었다. 남의 입에 밥 들어가게 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데 책임감도 없이 당신은 이 일을 놓지 못하나, 윤희는 태훈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그래도 태훈은 그 일을 놓지 못했다. 결국 윤희는 공장이 무너지든 가라앉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그 집에서의 겨울나기는 절박한 사투였다. 전년도 1월의 난방비는 무려 40만 원에 육박했다. 윤희가 1월에 낸 가스 사용료는 18만 원가량이었다. 양말 위에 덧신을 신고 내복에 솜바지를 껴입고, 티셔츠 위에 스웨터를 껴입고 살았다. 거실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넓은 창은 비닐로 이중 막을 쳐도 바람이 새어들었다. 보일러가 한 번씩 돌 때마다 신용카드로 결제도 안 되는 가스비가 보이지도 않게 쑥쑥 빠져나갔다. 실내 온도는 항상 영상 15도를 넘지 않았다. 딸아이는 발가락과 손가락이 시려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조그만 전기스토브는 냉랭한 집 안의 공기를 데우는 데는 별 효과가 없었다. 잠바를 껴입은 딸아이는 대문 밖으로 나가 볕이 잘 드는 담벼락에 기대서서 볕 바라기를 했다. 밖이 집 안보다 더 따뜻해. 딸아이는 말했다. 난방비 때문에 도저히 살 수가 없다고 하자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벽난로가 운치도 있고, 실내 공기를 올리는 데는 적격이라고 했다. 잡지 컬러 화보에서 본 복층 구조의 이층집 거실에 설치된 벽난로는 격조와 온기가 있어 보였다. 그건 돈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내 집일 때만 가능한 이야기 아닌가?
윤희는 날이 풀리기만을 기다렸다. 집 안에 살얼음이 어는 겨울이 지나, 마당의 수도가 녹고, 이웃한 집 담장 밑에 파놓은 화단에 월년초 알뿌리에 잎이 돋는 봄 지나, 뒤틀린 등나무를 타고 오른 능소화가 만개하는 여름을……. 다시 돌아올 겨울은 도려내 버리고 싶었다. 사람의 염원으로는 도려낼 수 없는 계절을 간신히 두 번 겪어내고 그 집에서 바야흐로 두 번째 맞는 봄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세 계약 만료가 두 달 남아 있었다.
그 집에서의 봄은 아주 더디게 왔다. 3월로 접어들었는데도 추웠다. 실내 온도 영상 15도에 맞춰진 보일러 조절판을 생각 없이 25도까지 올리며 태훈이 성질을 냈다.
“보일러 좀 올리고 살자. 이글루도 이것보단 더 따뜻할 거다. 내가 가스 값 낸다니까. 내가 다 낼게.”
한 푼의 수입도 가져오지 못하면서 태훈은 역정을 냈다. 그는 몇 달째 공장 월세는커녕 여섯 명 직원들의 월급도 못 주고 있었다. 그를 제외한 여섯 명 모두가 동남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공장 마당에 마련된 컨테이너박스에서 지냈다. 그들을 마지막으로 본 건 몇 달 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그들을 데리고 일인분에 8천 원 하는 샤브샤브로 회식을 한 때였다. 윤희는 태훈의 말을 무시하고 보일러의 조절기를 다시 15도에 맞췄다. 그가 다시 25도에 조절기를 맞췄다. 그녀는 다시 15도로 조절기를 내렸다. 대신 침대에 깔아놓은 전기장판의 코드를 꽂았다. 태훈은 모멸감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리모컨을 들고 텔레비전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30번대가 넘은 한 채널에서 목숨 걸고 채식하는 남자의 일상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태훈은 잠깐 채널을 멈췄다. 육기라곤 조금도 없어 보이는 깡마른 쉰 줄의 남자는 손수 마당에 푸성귀를 가꾼다고 했다. 그는 현미와 콩으로 밥을 지었다. 압력솥 꼭지가 달랑달랑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식탁 한 켠에 놓아둔 라디오에선 아늑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내가 밥을 한 공기 퍼서 푸성귀와 된장이 준비된 식탁 앞에 앉았다.
“매일 손수 이렇게 해서 드세요?”
얼굴이 보이지 않는 프로그램의 피디가 물었다. 사내는 윤희와 태훈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요. 몸을 이롭게 하는 음식을 남한테 맡길 수는 없지요, 저한텐 이게 행복입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장면이 바뀌려는 찰나에 태훈이 채널을 돌렸다. 그의 손놀림이 신경질적으로 빨라졌다. 790개로 편성된 케이블 채널은 겅중겅중 건너뛰면서 겁 없이 마구 올라갔다. 90번대로 넘어가자 반짝이와 무지개가 티브이 브라운관에 떠다니다가 화면이 잡혔다. 낙타가 사막 한가운데 서 있었다. 거친 화면에 카메라를 잡은 수준은 조악했고, 내레이터의 목소리도 아마추어 티가 났다. 익숙지 않은 목소리여서 그런가? 순간 다시 채널이 바뀌기 시작했다.
“제발 좀 멈춰.”
윤희가 소리쳤다. 태훈은 리모컨을 집어던지고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윤희는 앞으로 나간 채널 몇 개를 뒤로 돌렸다. 쌍봉낙타의 등엔 태산 같은 짐이 실려 있었다. 태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윤희의 눈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쌍봉낙타는 앞발 두 개를 구부리고 앉은 다음 뒷발을 꿇으면서 엉덩이를 내렸다.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였다. 쌓인 짐 위에 낙타의 주인이 남은 짐 한 짝을 마저 올려 실었다. 밧줄로 짐을 꼼꼼히 묶고 낙타의 엉덩이를 때리자 낙타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땅을 디디며 먼저 일어선 뒷발이 팽팽하게 푸들거렸다. 뒷발을 버티고 선 낙타는 두 앞발로 허공을 퉁기듯이 불뚝 일어섰다. 낙타는 천천히 한 발을 내디뎠다. 두 개의 혹은 거대한 짐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확 죽어버려.”
이불 속에서 태훈이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
“낙타는 제 몸이 파묻힐 정도로 짐을 싣고도 저렇게 일어나는데 뭣 땜에 죽고 싶대?”
윤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불을 확 걷어치운 태훈이 리모컨을 들어 브라운관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결혼 후 윤희는 남편의 꿈에 대해 한마디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더 이상 퇴근하고 돌아온 밤 시간에 책상 앞에 앉지 않았다. 그가 늘 책상 위에 펴놓았던 방송통신용 교재도 어디에 처박혔는지 몰랐다. 결혼하기 전 태훈은 3년 동안이나 가톨릭 회관의 ‘사랑의 등불 전화’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는 방송통신대를 졸업하면 직장생활을 하면서 평생 사회봉사 활동에 종사하고 싶다고 했다. 석 달 동안 상담교육을 이수한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상담실의 전화기가 놓인 책상 앞을 지켰다.
―그 시간에 전화를 해오는 사람이 있단 말이죠?
―그럼요. 고통스런 일 때문에 날 밝을 때까지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럼, 하루에 몇 통의 전화를 받나요? 한 두세 시가 지나면 그냥 졸다 오죠?
―아뇨. 날 밝을 때까지 꼬박 전화만 받을 때도 있어요.
―도대체 수십 통이 온단 말에요?
―아뇨. 한 사람과 사십 분, 한 시간씩 통화하는 게 보통이죠.
윤희는 놀라서 신음 같은 소리를 냈다.
―무슨 얘기들을 주고받는데요?
―전 그냥 계속 듣기만 해요. 적당하게 맞장구를 쳐주면서. 카운슬러라는 게 문제를 해결해주는 신 같은 입장은 아니거든요. 그걸 감히 누가 해결해줄 수 있겠어요. 누구에겐가 자신의 말을 하고 싶어 가슴이 꽉 막힌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우리의 할 일이죠.
―어떤 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글쎄요…….
상담 교육을 이수할 때 천기누설의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서약이라도 한 사람처럼 그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태훈씬 누구에겐가 그런 전화를 걸어본 적은 없어요?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제가 치유를 받는 느낌이죠. 그래서 날밤을 새는 그 시간들이 힘들지 않아요.
윤희는 사람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그에게 존경의 마음을 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서른세 살의 남자와 감히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사라진 뒤 만 하루 만에 윤희의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곧 돌아갈게. 며칠만 쉬고.
윤희는 그를 믿기로 했다.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사흘이 한 달이 되었다. 그가 한 통의 메시지를 보내올 때, 그녀는 다섯 통의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은 없었고, 그의 메시지는 일방적이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면 휴대폰은 늘 꺼져 있었다.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시간이 갈수록 태훈의 휴대폰 번호를 누를 때마다 윤희는 살이 떨리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존재하지 않는 번호라는 메시지가 흘러나올까봐.
‘당신은 왜 나에게 당신의 얘기를 하지 않는 거야?’
윤희는 울퉁불퉁한 담벼락에 손을 문대며 중얼거렸다.
태훈이 사라진 지 두 달이 지났을 때 그 집을 내놓았다. 그 집의 다섯 번째 주인은 재계약을 하려면 일천오백만 원을 올려달라고 했다. 이 년 새 전세 시세가 그만큼 올랐다고 했다. 그 역시 주인을 대변한 공인중개사 사내로부터 통보를 받았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쳤다. 겨울이 완연히 물러가고 그 집에도 봄볕이 들고 있었다. 거실 창에 쳐놓은 이중의 비닐 막을 떼어내야지 생각했지만 실행하지는 못했다.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창문을 열어도 봄바람을 집 안에 들일 수는 없었다.
태훈이 사라진 두 달 새 집은 폐가처럼 변해 있었다. 그렇잖아도 황량한 집이었다. 거실 한가운데 긴 쇠사슬을 늘어뜨린 샹들리에에는 거미줄이 여러 겹 쳐져 있었다. 손님을 데리고 온 공인중개사 사내가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노트로 거미줄을 훑어내기도 했다. 이층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예 보일러 자체를 돌리지 않아 겨우내 냉골이었던 이층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라곤 없었다. 때로 윤희는 겨우 배꼽에 안전 바가 닿는 이층 난간에 서서 거실을 굽어보았다.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 때문에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돌이나 지났을까 한 아기를 안고 온 부부에게 집을 보일 때 윤희는 아홉 칸짜리 계단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우리 딸애도 생각 없이 내려오다 발을 삔 적이 있는데, 어린 아기들은 뭘 짚고 오르는 걸 좋아하잖아요? 자칫 한눈을 팔았다간 애기가 굴러 떨어져요. 계단 폭 좀 봐요. 옛날에 지은 집이라 안전장치가 전혀 없잖아요. 윤희의 친절한 설명에 공인중개사 사내는 눈살을 찌푸렸다. 집을 보러 온 모든 이들에게 윤희는 한결같이 친절하게 굴었다. 한겨울엔 난방비가 장난 아니에요. 저흰 지지난 달에 40만 원을 냈다고요. 그래도 실내 온도는 18도를 넘지 않았어요. 세면실 하수구로 쥐가 올라와서 돌로 눌러놨어요. 수챗구멍 눌러놓은 저 돌을 치우시며 안 돼요. 봐요, 문짝도 쥐가 다 쏠아놨잖아요. 먼저 살던 사람이 그 얘길 안 해줘서 이사 와서 며칠 동안 쥐 잡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게요. 11월 들어서면 마당 수도는 꽁꽁 잘 싸매야 해요. 수도가 터져서 수도 요금이 10만 원이 넘은 적도 있어요. 지하실엔 가끔 고양이가 죽어 있어요. 거기가 보일러실인데 왜 그렇게 쓸데없이 지하실을 넓게 만들어놨는지 모르겠어요. 윤희의 친절에 손님들은 대개 건성으로 집을 둘러보다 나갔다.
열쇠를 복사하러 갔을 때 열쇠장이 사내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땐 건축허가를 받으려면 방공호를 반드시 파야 했다고, 벙커를 좋아하는 대통령의 주택정책에 따른 새로운 건축법 때문에 이 일대에 지어진 재래식 집들은 모두 쓸모도 없는 지하실을 갖고 있다고 했다. 태훈을 기다리는 밤, 지하실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릴 때면 윤희는 살갗이 조여오곤 했다. 번번이 고양이의 울음소리인 줄 알면서도 처절하고 절박하게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로 들렸다. 보일러 조절기의 물보충에 빨간 불이 들어와 지하실에 내려가야 할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그녀는 지하실 입구에서부터 얼어붙었다. 뻥 뚫린 좁은 구멍 속으로 온몸을 구부려야 들어갈 수 있는 지하실엔 미친 여자가 갓 낳은 핏덩이를 안고 잠들어 있을 것 같았다.
비굴하고 야비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그 집이 가진 허술함과 그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첫눈에 반해 그 집을 계약하겠다고 나선 임자가 있었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탄탄한 근육질의 남자는 사십이 안 되어 보였다. 반들거리는 단단한 이마와 날카로운 눈매는 사설 경비업체의 경호원 같은 이미지를 풍겼다. 그는 집의 실내를 건성 돌아보고 마당을 꼼꼼히 살폈다. 그는 처음부터 윤희와는 상대하지 않았다. 시베리안 허스키가 두 마립니다. 썰매끌기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탄 경력도 있어요. 다른 건 다 괜찮습니다. 녀석들을 맘 놓고 키울 수 있는 마당만 있다면. 그의 말에 공인중개사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주인은 이 집을 되팔 목적으로 사놓았어요. 주인 간섭은 일절 없습니다. 나중에 이사 나가실 때 원상 복구 해놓는다는 조항에 사인만 하시면……. 지하실 안으로 들어갔던 사내가 손바닥을 털면서 밖으로 나왔다. 여긴 나무판자로 문짝만 하나 해 달면 해결되겠는데요. 그는 곧 계약서를 작성했고 윤희는 그 집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곧 여름이 올 텐데……, 어쩌면 여름이 오기 전에 태훈이 돌아올 집인데…….
윤희는 우편물들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훈이 사라진 지 백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집으로 마음이 갈 때마다 핸드백 속의 그 집 열쇠를 만지작거렸지만 그 집엔 한 번도 발길을 한 적이 없었다. 전셋집을 처분한 돈의 반은 월급을 받지 못하고 흩어진 공장 직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와흐너와 마몽이 인권센터의 상담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우린 사장님을 믿었습니다. 우린 갈 곳이 없어요. 어눌한 한국말로 와흐너가 윤희에게 호소했다. 검은 피부에 동그랗게 큰 눈을 가진 와흐너는 윤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긴 속눈썹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끓고 있는 샤브샤브 국물에 얇게 저민 쇠고기 조각을 담그며 흰 이를 드러내고 웃던 와흐너와 마몽에겐 고국에 두고 온 어린 자식들이 있었다. 노동부에 찾아가 진정할 수도 있었지만, 그 전에 사모님을 먼저 뵙고 싶었어요. 와흐너와 마몽도 사모님을 뵙고 싶어 했구요. 인권센터의 상담사라는 남자는 그게 인간적인 순서 아니냐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이건 제 이름으로 된 제 집이에요. 이건 칠십 평생 허리 굽혀 살아온 내 어머니가 저한테 준 유산이란 말이에요. 하지만 윤희는 그 말을 꿀꺽 삼켰다. 모든 게 헛되게 들릴지도 모른다는 낙담이 밀려들었다. 머나먼 이국으로 꿈을 안고 찾아왔을 그들에겐 잠 못 이루는 깊은 밤, 자신들의 하소연을 받아줄 전화 한 통 할 곳이 없는 사람들일지도 몰랐다.
윤희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그 집 골목을 빠져나왔다. 태훈이 사라진 뒤 시작된 불면증으로 그녀의 머릿속엔 좀이 스는 것처럼 구멍이 뚫리고 몸은 늘 소금가마니처럼 무거웠다. 아무리 하찮은 목숨에게도 죽음 같은 시간은 언젠가 지나가게 마련이다. 흐르는 시간이 주는 한 가닥 은혜마저 없다면 무거운 생은 무엇을 버팀목으로 살아갈까. 골목을 빠져나가며 윤희는 중얼거린다. 물기가 바짝 마른 입술이 따갑게 조여 왔다. 지금 태훈에겐 그녀와 마찬가지로 어둡고 무서운 죽음의 터널을 통과하는 시간일 것이다. 어쩌면 그에겐 자신이 무엇인지, 누구인지를 찾아 헤매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거두어 가나마나 별 쓸모도 없는 우편물들을 품에 안고 윤희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 집 담벼락을 만졌을 때 느꼈던 돌기들이, 울퉁불퉁한 빛의 입자들이 차창을 통해 아프게 그녀의 이마에 와 닿았다. 그녀는 주머니 속에 든 그 집 열쇠를 꼭 쥐었다. 어쩌면 태훈은 수십 번도 더 아무도 몰래 그 집 담벼락을 쓸어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절의 시간을 이기고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그의 몫이었다. 우편물을 수거해가든지 어쩌든지 하라는 그 집 여자의 전화 독촉에 시달리면서도 하루 이틀 그 일을 미뤘던 건 그가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한낮은 봄빛이 넘쳐 완연한 여름 냄새를 풍겼다. 세상의 모든 것이 빨라지고 있었다. 삶의 속도도, 인생의 의미들마저도 빠르게 휘돌아 치고 꺾어지며 재빠르게 흘러갔다. 그 집에서 보낸 혹한의 겨울이 뼛속 깊이 사리처럼 박혀 있었다. 잊지 못할 거였다. 윤희는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던 열쇠를 꼭 쥐고 차창을 열었다. 벨벳처럼 부드럽고 흠 없는 바람이 코끝을 파고들었다. 버스가 고가도로로 올라설 때 윤희는 차창 밖으로 움켜쥐었던 열쇠를 힘껏 던져버렸다.
홍명진∙2001년 단편 「바퀴의 집」으로 전태일 문학상 수상. 2008년 단편 「터틀넥스웨터」로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8년 단편 「삼봉여인숙」 한국문화예술위 우수작품 선정. 장편소설 숨비소리.
홍명진
그 집 담벼락에 손을 대자 온몸이 쓰라리는 듯했다. 우둘투둘한 시멘트벽의 질감이 흡사 호렴 알갱이나 멍게 돌기처럼 몸속을 파고드는 듯한 쓰라림. 윤희는 찔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잠금 고리가 떨어져나가 한 짝이 늘 젖혀져 있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대문의 성긴 창살 틈으로 보이는 마당은 또 한 겹의 초록 철망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갈색 반점이 섞인 털이 긴 흰색 시베리안 허스키 두 마리가 사는 집이 소동물원의 사육장처럼 마당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문틈 사이로 들여다보는 사람의 기미를 눈치 챘는지, 긴 목줄을 끌며 일어나더니 컹, 하고 짖을 품새를 취했다. 윤희는 주인이 현관문을 열고 내다보기라도 할까봐 얼른 대문 처마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았다. 윤희 발치엔 미처 주소를 이전하지 못한 우편물들이 쌓여 있었다. 제발 우편물 좀 어떻게 해줘요. 아주 골치 아파 죽겠어요.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짜증스럽게 내뱉던 여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중소기업청에서 보낸 대출금 상환 독촉장, 자동차 관련 압류 통지서, 세무서에서 보낸 부가세 잠체납 고지서, 몇 군데 출판사에서 보내온 구독료를 내지 못한 책자와 홍보물 따위들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 집은 윤희의 의식 속에 요새처럼 홀로 우뚝했다. 수없이 옮겨 다닌 사글셋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나름의 기품과 고고함을 지닌 채로.
사는 동안은 지긋지긋하게 불편하고 성가셨다. 먼저 살던 사람이 그녀에게 건네준 치렁치렁하게 뒤얽힌 열쇠 꾸러미를 받아들 때 윤희는 잡다한 열쇠붙이의 종류에 기가 눌렸다. 한 푼도 안 나갈 것 같은 가벼운 열쇠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이 많은 열쇠들이 전부 이 집에 소용되는 것인가. 그땐 손안에 든 열쇠붙이들의 용도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들이 전혀 소용없는 쇠붙이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사 온 이튿날, 윤희는 열쇠 꾸러미에서 빼낸 현관 열쇠를 들고 찻길 건너 있는 열쇠집을 찾아갔다. 열쇠장이는 관록이 녹록찮아 보였다. 두어 평 남짓한 컨테이너박스 안에는 표창장을 담아놓은 유리 액자 세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금박 테두리를 두른 표창장 하나는 대머리가 훌떡 까진 역대 대통령의 이름과 도장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평생을 컨테이너 박스 안에 갇혀서 뒤틀린 한쪽 다리를 끌고 구두 굽을 갈고, 열쇠를 팠을 사내의 의지가 단단한 입매에 물려 있었다. ‘위 사람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남을 위한 봉사정신이 투철하여 이 사회에……’ 표창장의 문구를 멀거니 쳐다보는 윤희에게 사내가 물었다.
“뭘 하시게?”
윤희는 손바닥에 꼭 쥐고 온 열쇠를 내밀었다.
“이십 년도 더 된 열쇠구만.”
사내는 열쇠를 눈앞에 대고 요리조리 들여다보았다. 등기부등본에 그 집은 1982년에 신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열쇠만 봐도 아세요?”
“요샌 이런 다마를 안 쓰거든요. 한 이십 년 전까지는 다 이런 열쇠를 썼지.”
“다마가 달라요? 어떻게요?”
열쇠 뭉치가 든 조그만 박스를 뒤적거리던 사내가 윤희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냥 다마라고 불러요. 열쇠에 새겨진 무늬 같은 거.”
곰보 자국 같은 동그라미 일곱 개가 불연속적으로 찍힌 열쇠의 무늬. 열쇠의 무늬만 보고도 세월을 가늠할 수 있는 열쇠장이와 마찬가지로 남편 태훈도 가구만 척 보면 나무의 재질과 제작공정, 도장기법을 알아맞혔다. 그건 가구장이로 삼십 년 가까이 살아온 남편의 관록이었다. 그것밖에 그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한때 윤희는 태훈의 몸에서 나는 나무 냄새를 좋아했다. 그의 머리칼이나 귓불 뒤, 겨드랑이에서 나는 톱밥 냄새를 맡으면 은은하게 잠이 몰려왔다. 그를 만나던 이십 대에 그녀는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모든 일에서 한두 발씩 늦은 늦깎이 인생. 윤희는 스물넷에 가까스로 대학생이 되었다. 낮에는 조그만 무역회사에서 경리 겸 비서 일을 보고, 야간대학을 다니던 시절, 아침이면 관자놀이에 침이 꽂힌 것 같고, 골이 지끈거렸다. 잠만 자는 방을 처음 가진 건 집을 떠난 지 2년이나 지난 뒤였다. 일찍 직장을 잡은 고등학교 동창의 자취방을 전전하며 단과학원을 다녔다. 낮과 밤이 나뉜 생활은 어느 한쪽도 완성도를 가지지 못한 불구의 시간이었다. ‘딱 일 년만 공부해보고……’ 하던 것이 삼사 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윤희는 인생이 결코 만만치 않은 미로라는 걸 깨달았다.
대학 일 년을 남겨두고 그녀가 다니던 회사는 문을 닫았다. 사장은 종적을 감춰버렸고, 석 달씩이나 월급을 받지 못한 그녀는 빈손으로 잠만 자는 방에 틀어박혔다. 그때부터 불면이 시작되었나? 정확하진 않지만 그 무렵 남편을 만났다. 아무 때고 그의 자취방을 찾아갔다. 창틀 한쪽 귀퉁이에 놓인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면 밀폐되었던 그의 방에선 희한하게도 톱밥 냄새가 났다. 책상 위엔 방송통신대학교 교재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펼쳐진 책 위에 또 다른 책이 펼쳐져 있고, 낱장의 메모지들과 리포트 용지, 볼펜과 샤프연필, 동전 따위가 아무렇게나 끼어 있었다. 책상 밑에는 돌돌 말린 양말짝과 목에 때가 전 티셔츠, 물기가 바싹 마른 걸레가 한데 뒤엉켜 있기도 했다. 개지 않고 늘 깔려 있는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가 침낭을 뒤집어쓴 것처럼 몸을 말고 있으면 한 마리 짐승이 된 것 같았다. 누군가 그녀를 깨우지 않는다면 몸에 곰팡이가 필 때까지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잔업을 하고 밤늦게 돌아온 그가 문을 따고 들어올 때까지 잘 때도 있고, 그가 돌아오기 전에 몸만 쏙 빠져나올 때도 있었다. 열일곱 살 때 집을 떠나와 가구공장을 떠난 적이 없다는 서른세 살의 남자. 그의 겨드랑이에 머리를 들이밀고 자는 잠은 은은하면서도 달았다. 흡사 빗살무늬 관 속에서 깊고 곤한 잠을 자는 것처럼.
윤희는 주머니 속에 든 그 집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열쇠장이에게 복사한 세 개 중에 하나는 태훈의 열쇠고리에 채워져 있을 것이다. 딸이 갖고 있던 하나와 원래 있던 하나는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넘겼다. 태훈은 그 집 열쇠를 간직한 채 사라졌다. 어느 날 홀연히.
언젠간 태훈이 그 집으로 돌아오리란 걸 윤희는 믿는다. 하지만 윤희의 믿음은 안개 속의 미로를 더듬는 것처럼 자신이 없다. 돌아오는 것도 돌아오지 않는 것도 태훈의 의지다. 윤희는 그 집 열쇠를 만지작거릴 때면 묵직한 슬픔의 실체를 만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가 비워두고 떠난 집, 어쩌면 그 집에서 모든 것이 멈춰버렸을지도 모를 그의 인생과 결부된 모든 것들의 부재…….
“주인 간섭 없는 집이면 돼.”
윤희가 바란 건 그것뿐이었다. 공인중개사를 끼고 일주일이나 발품을 팔았다. 집은 보면 볼수록 실망스러웠다. 그중 마음에 든다 싶으면 수중의 돈과 맞지 않았다. 재래시장 인근의 오래된 주공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간다는 소문과 맞물려 그 일대의 빌라라고 이름 달린 것들은 열세 평짜리 전세가가 기천만 원에서 들쭉날쭉, 시장에 내놓은 입찰품처럼 부르는 게 값이었다. 윤희는 집도 다 인연이 있는 법이라고 말한 공인중개사 남자의 말을 믿고 싶었다. 어디선가 인연이 나타나겠지……. 별생각 없이 차 한 잔 마시고, 두 번째는 맥주 한 잔, 세 번째는 자취방에 들어가 그가 없는 사이에 긴 잠을 자고 나왔던 태훈과의 만남처럼.
그 집을 본 건 다음날 혼자서라도 골목골목 집을 보러 다녀야겠다고 작정하고 공인중개사 남자와 헤어지고 돌아서던 길이었다. 그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서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의 남자가 전봇대에 전단지를 붙이고 있었다. 윤희는 아직 전단지에 풀기도 마르지 않은 그 집을 당장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사십이 좀 넘었을까? 믿지 못하겠다는 듯 생뚱한 표정으로 남자는 따라오라고 했다.
그 집을 처음 본 순간, 윤희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내부를 건성 둘러본 뒤 윤희는 구두 계약으로 10만 원을 건네고 남자가 써준, 아무 형식도 없이 ‘구두 계약금 10만 원 받았음’이라는 영수증을 받아들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뾰족지붕을 가진 그 집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다음날 오전 11시에 계약금을 들고 길 건너 공인중개소에서 남자와 만나기로 하고 그 집을 나왔다. 꼭 뭣에 홀린 기분이었다. 어둑해진 골목으로 나온 윤희는 대문 밖에 서서 그 집을 몇 번이나 올려다보았다.
그날 밤, 윤희는 초조한 마음으로 남편을 기다렸다. 신접살림을 차릴 집을 구하던 때가 생각났다. 소액의 보증금에 월세로 시작해야 하는 살림이었지만 구미에 맞는 집이 없었다. 집이 좀 깨끗하다 싶으면 터무니없이 월세가 비쌌다. 적당한 가격에 집의 상태도 양호한데 태훈이 자꾸만 퇴짜를 놓기에 그녀는 그의 뒤를 따르며 짜증을 부렸다. 대체 살림은 누가 할 건데 그러냐고. 그때 태훈이 말했다. 기름보일러가 된 집을 찾아야 연탄을 안 갈지. 그 이후 이사에 관한 한 그는 단 한 번도 관여한 적이 없었다.
밤늦게 퇴근한 태훈을 끌고 윤희는 저녁에 보았던 그 집을 보러갔다. 윤희는 대문 앞에서 그 집을 손으로 가리켰다. 방이 자그마치 네 개야. 일층에 세 개, 뾰족하게 튀어나온 저 부분은 다락이야. 넓은 발코니도 있어. 다락방을 서재로 꾸미고 발코니엔 차탁을 놓으면 딱 안성맞춤일 거야. 거실 한쪽 벽에 나무로 된 아홉 칸짜리 계단이 있는 복층 구조야. 잠자고 씻고 밥 먹는 곳과 분리된 이층이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 우리 혼자 저 집을 다 쓰는 거야. 주인의 간섭은 일절 없대. 당신도 그랬잖아. 주인집 눈치 안 보고 살고 싶다고. 이제 어깨 쫙 펴고 드나들 수 있어. 사는 동안은 우리 집이니까. 윤희는 별 감흥 없이 뾰족지붕을 쳐다보는 태훈에게 조잘거렸다.
윤희는 결혼 후 떠돌아 다녔던 여덟 군데의 셋집들을 태훈에게 상기시켜주고 싶었다. 딱 한 번 독채로 살아본 걸 빼면 일곱 군데가 다 주인과 얽힌 집이었다. 아이가 쿵쿵거리며 뛴다, 화장실 창문으로 담배꽁초를 던져 마당 하수구가 막혔다, 집 앞 골목은 왜 쓸지 않냐, 대문 초인종을 함부로 누르지 마라, 부부싸움을 할 땐 창문이라도 닫고 해라……. 툭하면 낡은 보일러가 고장 나던 집, 화장실 뒤쪽에 하수저장고가 있던 지하방, 신경이 예민한 노부부가 일층에 살던 지하방, 주인이 일층에 슈퍼마켓을 하던 이층 셋집, 마당에 화장실이 있던 집……. 그 집 앞에서 돌아서며 태훈은 석연찮게 말했다. 오래된 집은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저걸 어떻게 당신이 감당해?
그 집은 윤희의 이름으로 계약했다. 주민등록등본엔 호주도 윤희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살고 있던 지하방의 보증금에 80퍼센트나 더 얹어 계약했다. 그 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그녀에게 굴러들어왔다. 홀로 20여 년을 사신 친정어머니가 텃밭을 포함한 100여 평가량의 시골집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그 집을 처분한 돈의 반을 언니와 여동생이 나눠 갖고 반은 그녀에게 돌아왔다. 셋방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윤희 때문에 속을 끓이던 어머니가 제대로 된 집이라도 한 칸 얻으라고 남긴 유산인 셈이었다.
“당신은 이제 나한테 얹혀사는 거야.”
그 집에서의 첫날 밤 윤희는 농담하듯 말했다. 태훈은 돌아누우며 그래, 이 집 니 꺼다, 농담으로 반응했다.
그 집 이층 테라스로 나가는 창틀 틈바구니엔 질경이가 한 포기 자라고 있었다. 누군가가 홧김에 내던진 것인지, 거실 천장 한가운데 달린 나팔꽃 무늬의 샹들리에 갓에는 미니 피자 한 덩어리가 껌처럼 들러붙어 누룩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정오의 햇살이 뾰족지붕을 지날 때면 깨진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운 빛 한줄기가 미세한 틈을 타고 거실 바닥에 내리꽂혔다. 집 안의 먼지가 그 칼끝 같은 빛살에 갇혀 파닥이는 게 보였다. 새집에서 의욕적인 인생을 설계했을 첫 번째 주인은 그 집에서 십 년을 살고 떠났다. 두 번째 임자부터는 세를 놓았다. 세입자들에게 돌림을 당한 집은 형편없이 거칠어졌다. 계약한 만큼 살다 나갈 집이란 지속적인 애정을 받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윤희네가 들어온 지 딱 일주일이 지났을 때 네 번째 집임자가 집을 매물로 내놓았다. 평일은 덜 했지만 주말과 일요일엔 공인중개사를 동반하고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집을 보러왔다. 태훈이 늦잠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른 오전, 느닷없이 닥친 손님에게 집을 보여주는 일은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심했다. 육 개월이 지나자 인접한 재래시장의 개발 라인에 걸려 그 집 앞집부터 여섯 채의 집이 헐리기 시작했다.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공용 주차장을 만든다고 했다. 이른 아침부터 포클레인이 집을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떨 땐 집 전체의 창틀이 전기 충격을 가한 것처럼 쩌릿쩌릿 흔들렸다. 시멘트가 단단한 내장 벽이나 지붕을 부술 때는 그녀의 달팽이관에 풍뎅이가 들어와 있는 것처럼 귀가 잉잉거렸다. 소리는 이층에서 더 확연하게 들려왔다. 이층은 그야말로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테라스엔 방범 창살조차 없이 구부러진 못 하나가 창이 열리는 것을 막고 있을 뿐이었다. 테라스는 텅 비어 있었다. 바닥에 깔린 타일은 깨지거나 변색되어 누랬다. 먼저 살던 사람은 그곳에다 온갖 짐들을 쌓아두었었다. 짐이 나간 테라스 수챗구멍에는 쥐가 쏠다 만 비누 덩어리와 돌멩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다락방은 아홉 자 정도의 마름모꼴이었다. 천장의 기울기를 따라 한쪽은 윤희의 머리가 닿았다. 책상과 책꽂이, 의자 하나만 달랑 놓인 황량한 이층 그 방에서 소음을 견디며 자란 질경이엔 씨가 맺혔다. 쉬는 날에도 태훈은 서재랍시고 꾸민 이층엔커녕 마당에조차 나가보지 않았다.
태훈은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어서야 들어왔다. 일요일에 그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붙들고 침대에서 뒹굴며 밀린 잠을 잤다. 여성 월간지를 내는 출판사 편집부에서 프리랜서로 교정 일을 보는 윤희가 한 달에 삼사 일씩 야근을 하느라 집을 비울 때, 딸애는 ‘엄마 무서워요’ 하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내오곤 했다. 밤 열한 시가 다 되어 태훈이 돌아올 때까지 딸은 혼자 천장고가 높은 그 집을 지키며 두려움과 싸우면서 보냈다. 그녀가 일하는 잡지엔 자기 스타일의 맞춤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는 고정 꼭지가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부동산적인 소유의 의미가 아닌, 꿈을 설계하는 살아 있는 집이라는 점을 피력했다. 실용성과 이상성을 조화롭게 갖춘, 그야말로 자기만의 스타일, 자기만의 삶이 돋보이는, 꿈을 담보한 집. 삶과 집을 연계하는 온갖 가치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기자의 글 솜씨 역시 꿀같이 달았다. 그 집들은 하나같이 특별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갖는 집과는 다른 무언가로 심도 깊게 포장되어 있었다.
사진이 실린 컬러 대지 교정지를 보면서도 그녀의 눈엔 집이 아니라, 글자만 들어왔다. 이제껏 그녀의 각박한 삶이 그래왔듯, 단지 오자나 탈자, 행간에서 비문을 잡아내야 하는 그녀의 직업병적인 관심을 벗어나면 그건 그저 하나의 그림 조각,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문장에 불과했다.
마감 막바지에 바짝 이틀 밤을 연거푸 새고 집에 돌아오면 윤희는 시체처럼 하루 밤낮을 내리 잠만 잤다. 눈을 떠 보면 대개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남편과 딸애가 공장과 학교로 가고 난 뒤, 멍한 상태에서 잠을 깨면 귀울음처럼 집이 울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사 온 지 열 달 만에 다섯 번째 임자가 집을 인수했다. 하지만 공인중개사로부터 통보만 받았을 뿐, 그녀는 새로운 집임자의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집이 새로운 임자에게 넘어간 다음 달, 그녀도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출판사는 적자를 면치 못하는 책임을 물어 편집장을 몰아냈고, 새로운 편집장은 그가 밖에서 호흡을 맞춰 일하던 멤버로 교정자를 교체했다. 지난 7년 동안 그녀는 죽은 듯이 고요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동안 그녀는 세 번 이사를 했으며, 딸애는 그녀가 없는 사이 늘 혼자서 집을 지키면서도 허리가 잘록하고 엉덩이가 빵빵하게 튀어나온 숙녀가 되었다. 그녀에게 온 계약파계 통보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 한 통이 전부였다. 딸아이가 보내던 문자에 ‘참아, 어쩔 수 없잖아’라고 답해 주었던 일이 뼛속 깊이 그녀를 아프게 했다.
윤희는 7년 만에야 비로소 온전히 집안에 들어앉았다. 윤희가 잡지사에 나가면서 세 번 이사를 한 동안 태훈의 사업은 점차 나빠졌다. 열일곱에 고향을 떠나온 그가 맨주먹으로 가정을 이루고, 자기 손으로 조그만 가구 공장을 차리고, 그 공장이 세파를 따라 폭풍우 속의 배처럼 위험스럽게 항해를 계속하는 동안, 윤희는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그녀가 교정 일을 하기 전에는 어린 딸애를 공장 한 켠 톱밥 더미에 앉혀놓고 거친 나뭇결에 사포질을 했다. 수없이 닦고 문지르는 사이 하루 두 끼씩 꼬박꼬박 직원들의 밥을 해댔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배추 서너 포기씩 김치를 담고 매일매일 새로운 찌개나 국을 끓여대고, 밑반찬을 만들었다. 그때는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가난한 살림은 소금물을 퍼 올리는 수차를 돌리듯 힘겹게 굴러갔다. 직원들의 월급이 밀리고, 자재비 독촉에 시달리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독촉장이 날아들고, 한 번씩 어음부도가 났다. 전셋집을 줄여 월세방이 되었다가, 공장 사람들의 밥을 해대던 가건물로 들어가 살던 때도 있었다. 남의 입에 밥 들어가게 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데 책임감도 없이 당신은 이 일을 놓지 못하나, 윤희는 태훈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그래도 태훈은 그 일을 놓지 못했다. 결국 윤희는 공장이 무너지든 가라앉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그 집에서의 겨울나기는 절박한 사투였다. 전년도 1월의 난방비는 무려 40만 원에 육박했다. 윤희가 1월에 낸 가스 사용료는 18만 원가량이었다. 양말 위에 덧신을 신고 내복에 솜바지를 껴입고, 티셔츠 위에 스웨터를 껴입고 살았다. 거실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넓은 창은 비닐로 이중 막을 쳐도 바람이 새어들었다. 보일러가 한 번씩 돌 때마다 신용카드로 결제도 안 되는 가스비가 보이지도 않게 쑥쑥 빠져나갔다. 실내 온도는 항상 영상 15도를 넘지 않았다. 딸아이는 발가락과 손가락이 시려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조그만 전기스토브는 냉랭한 집 안의 공기를 데우는 데는 별 효과가 없었다. 잠바를 껴입은 딸아이는 대문 밖으로 나가 볕이 잘 드는 담벼락에 기대서서 볕 바라기를 했다. 밖이 집 안보다 더 따뜻해. 딸아이는 말했다. 난방비 때문에 도저히 살 수가 없다고 하자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벽난로가 운치도 있고, 실내 공기를 올리는 데는 적격이라고 했다. 잡지 컬러 화보에서 본 복층 구조의 이층집 거실에 설치된 벽난로는 격조와 온기가 있어 보였다. 그건 돈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내 집일 때만 가능한 이야기 아닌가?
윤희는 날이 풀리기만을 기다렸다. 집 안에 살얼음이 어는 겨울이 지나, 마당의 수도가 녹고, 이웃한 집 담장 밑에 파놓은 화단에 월년초 알뿌리에 잎이 돋는 봄 지나, 뒤틀린 등나무를 타고 오른 능소화가 만개하는 여름을……. 다시 돌아올 겨울은 도려내 버리고 싶었다. 사람의 염원으로는 도려낼 수 없는 계절을 간신히 두 번 겪어내고 그 집에서 바야흐로 두 번째 맞는 봄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세 계약 만료가 두 달 남아 있었다.
그 집에서의 봄은 아주 더디게 왔다. 3월로 접어들었는데도 추웠다. 실내 온도 영상 15도에 맞춰진 보일러 조절판을 생각 없이 25도까지 올리며 태훈이 성질을 냈다.
“보일러 좀 올리고 살자. 이글루도 이것보단 더 따뜻할 거다. 내가 가스 값 낸다니까. 내가 다 낼게.”
한 푼의 수입도 가져오지 못하면서 태훈은 역정을 냈다. 그는 몇 달째 공장 월세는커녕 여섯 명 직원들의 월급도 못 주고 있었다. 그를 제외한 여섯 명 모두가 동남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공장 마당에 마련된 컨테이너박스에서 지냈다. 그들을 마지막으로 본 건 몇 달 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그들을 데리고 일인분에 8천 원 하는 샤브샤브로 회식을 한 때였다. 윤희는 태훈의 말을 무시하고 보일러의 조절기를 다시 15도에 맞췄다. 그가 다시 25도에 조절기를 맞췄다. 그녀는 다시 15도로 조절기를 내렸다. 대신 침대에 깔아놓은 전기장판의 코드를 꽂았다. 태훈은 모멸감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리모컨을 들고 텔레비전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30번대가 넘은 한 채널에서 목숨 걸고 채식하는 남자의 일상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태훈은 잠깐 채널을 멈췄다. 육기라곤 조금도 없어 보이는 깡마른 쉰 줄의 남자는 손수 마당에 푸성귀를 가꾼다고 했다. 그는 현미와 콩으로 밥을 지었다. 압력솥 꼭지가 달랑달랑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식탁 한 켠에 놓아둔 라디오에선 아늑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내가 밥을 한 공기 퍼서 푸성귀와 된장이 준비된 식탁 앞에 앉았다.
“매일 손수 이렇게 해서 드세요?”
얼굴이 보이지 않는 프로그램의 피디가 물었다. 사내는 윤희와 태훈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요. 몸을 이롭게 하는 음식을 남한테 맡길 수는 없지요, 저한텐 이게 행복입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장면이 바뀌려는 찰나에 태훈이 채널을 돌렸다. 그의 손놀림이 신경질적으로 빨라졌다. 790개로 편성된 케이블 채널은 겅중겅중 건너뛰면서 겁 없이 마구 올라갔다. 90번대로 넘어가자 반짝이와 무지개가 티브이 브라운관에 떠다니다가 화면이 잡혔다. 낙타가 사막 한가운데 서 있었다. 거친 화면에 카메라를 잡은 수준은 조악했고, 내레이터의 목소리도 아마추어 티가 났다. 익숙지 않은 목소리여서 그런가? 순간 다시 채널이 바뀌기 시작했다.
“제발 좀 멈춰.”
윤희가 소리쳤다. 태훈은 리모컨을 집어던지고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윤희는 앞으로 나간 채널 몇 개를 뒤로 돌렸다. 쌍봉낙타의 등엔 태산 같은 짐이 실려 있었다. 태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윤희의 눈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쌍봉낙타는 앞발 두 개를 구부리고 앉은 다음 뒷발을 꿇으면서 엉덩이를 내렸다.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였다. 쌓인 짐 위에 낙타의 주인이 남은 짐 한 짝을 마저 올려 실었다. 밧줄로 짐을 꼼꼼히 묶고 낙타의 엉덩이를 때리자 낙타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땅을 디디며 먼저 일어선 뒷발이 팽팽하게 푸들거렸다. 뒷발을 버티고 선 낙타는 두 앞발로 허공을 퉁기듯이 불뚝 일어섰다. 낙타는 천천히 한 발을 내디뎠다. 두 개의 혹은 거대한 짐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확 죽어버려.”
이불 속에서 태훈이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
“낙타는 제 몸이 파묻힐 정도로 짐을 싣고도 저렇게 일어나는데 뭣 땜에 죽고 싶대?”
윤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불을 확 걷어치운 태훈이 리모컨을 들어 브라운관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결혼 후 윤희는 남편의 꿈에 대해 한마디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더 이상 퇴근하고 돌아온 밤 시간에 책상 앞에 앉지 않았다. 그가 늘 책상 위에 펴놓았던 방송통신용 교재도 어디에 처박혔는지 몰랐다. 결혼하기 전 태훈은 3년 동안이나 가톨릭 회관의 ‘사랑의 등불 전화’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는 방송통신대를 졸업하면 직장생활을 하면서 평생 사회봉사 활동에 종사하고 싶다고 했다. 석 달 동안 상담교육을 이수한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상담실의 전화기가 놓인 책상 앞을 지켰다.
―그 시간에 전화를 해오는 사람이 있단 말이죠?
―그럼요. 고통스런 일 때문에 날 밝을 때까지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럼, 하루에 몇 통의 전화를 받나요? 한 두세 시가 지나면 그냥 졸다 오죠?
―아뇨. 날 밝을 때까지 꼬박 전화만 받을 때도 있어요.
―도대체 수십 통이 온단 말에요?
―아뇨. 한 사람과 사십 분, 한 시간씩 통화하는 게 보통이죠.
윤희는 놀라서 신음 같은 소리를 냈다.
―무슨 얘기들을 주고받는데요?
―전 그냥 계속 듣기만 해요. 적당하게 맞장구를 쳐주면서. 카운슬러라는 게 문제를 해결해주는 신 같은 입장은 아니거든요. 그걸 감히 누가 해결해줄 수 있겠어요. 누구에겐가 자신의 말을 하고 싶어 가슴이 꽉 막힌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우리의 할 일이죠.
―어떤 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글쎄요…….
상담 교육을 이수할 때 천기누설의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서약이라도 한 사람처럼 그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태훈씬 누구에겐가 그런 전화를 걸어본 적은 없어요?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제가 치유를 받는 느낌이죠. 그래서 날밤을 새는 그 시간들이 힘들지 않아요.
윤희는 사람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그에게 존경의 마음을 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서른세 살의 남자와 감히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사라진 뒤 만 하루 만에 윤희의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곧 돌아갈게. 며칠만 쉬고.
윤희는 그를 믿기로 했다.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사흘이 한 달이 되었다. 그가 한 통의 메시지를 보내올 때, 그녀는 다섯 통의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은 없었고, 그의 메시지는 일방적이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면 휴대폰은 늘 꺼져 있었다.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시간이 갈수록 태훈의 휴대폰 번호를 누를 때마다 윤희는 살이 떨리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존재하지 않는 번호라는 메시지가 흘러나올까봐.
‘당신은 왜 나에게 당신의 얘기를 하지 않는 거야?’
윤희는 울퉁불퉁한 담벼락에 손을 문대며 중얼거렸다.
태훈이 사라진 지 두 달이 지났을 때 그 집을 내놓았다. 그 집의 다섯 번째 주인은 재계약을 하려면 일천오백만 원을 올려달라고 했다. 이 년 새 전세 시세가 그만큼 올랐다고 했다. 그 역시 주인을 대변한 공인중개사 사내로부터 통보를 받았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쳤다. 겨울이 완연히 물러가고 그 집에도 봄볕이 들고 있었다. 거실 창에 쳐놓은 이중의 비닐 막을 떼어내야지 생각했지만 실행하지는 못했다.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창문을 열어도 봄바람을 집 안에 들일 수는 없었다.
태훈이 사라진 두 달 새 집은 폐가처럼 변해 있었다. 그렇잖아도 황량한 집이었다. 거실 한가운데 긴 쇠사슬을 늘어뜨린 샹들리에에는 거미줄이 여러 겹 쳐져 있었다. 손님을 데리고 온 공인중개사 사내가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노트로 거미줄을 훑어내기도 했다. 이층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예 보일러 자체를 돌리지 않아 겨우내 냉골이었던 이층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라곤 없었다. 때로 윤희는 겨우 배꼽에 안전 바가 닿는 이층 난간에 서서 거실을 굽어보았다.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 때문에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돌이나 지났을까 한 아기를 안고 온 부부에게 집을 보일 때 윤희는 아홉 칸짜리 계단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우리 딸애도 생각 없이 내려오다 발을 삔 적이 있는데, 어린 아기들은 뭘 짚고 오르는 걸 좋아하잖아요? 자칫 한눈을 팔았다간 애기가 굴러 떨어져요. 계단 폭 좀 봐요. 옛날에 지은 집이라 안전장치가 전혀 없잖아요. 윤희의 친절한 설명에 공인중개사 사내는 눈살을 찌푸렸다. 집을 보러 온 모든 이들에게 윤희는 한결같이 친절하게 굴었다. 한겨울엔 난방비가 장난 아니에요. 저흰 지지난 달에 40만 원을 냈다고요. 그래도 실내 온도는 18도를 넘지 않았어요. 세면실 하수구로 쥐가 올라와서 돌로 눌러놨어요. 수챗구멍 눌러놓은 저 돌을 치우시며 안 돼요. 봐요, 문짝도 쥐가 다 쏠아놨잖아요. 먼저 살던 사람이 그 얘길 안 해줘서 이사 와서 며칠 동안 쥐 잡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게요. 11월 들어서면 마당 수도는 꽁꽁 잘 싸매야 해요. 수도가 터져서 수도 요금이 10만 원이 넘은 적도 있어요. 지하실엔 가끔 고양이가 죽어 있어요. 거기가 보일러실인데 왜 그렇게 쓸데없이 지하실을 넓게 만들어놨는지 모르겠어요. 윤희의 친절에 손님들은 대개 건성으로 집을 둘러보다 나갔다.
열쇠를 복사하러 갔을 때 열쇠장이 사내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땐 건축허가를 받으려면 방공호를 반드시 파야 했다고, 벙커를 좋아하는 대통령의 주택정책에 따른 새로운 건축법 때문에 이 일대에 지어진 재래식 집들은 모두 쓸모도 없는 지하실을 갖고 있다고 했다. 태훈을 기다리는 밤, 지하실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릴 때면 윤희는 살갗이 조여오곤 했다. 번번이 고양이의 울음소리인 줄 알면서도 처절하고 절박하게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로 들렸다. 보일러 조절기의 물보충에 빨간 불이 들어와 지하실에 내려가야 할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그녀는 지하실 입구에서부터 얼어붙었다. 뻥 뚫린 좁은 구멍 속으로 온몸을 구부려야 들어갈 수 있는 지하실엔 미친 여자가 갓 낳은 핏덩이를 안고 잠들어 있을 것 같았다.
비굴하고 야비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그 집이 가진 허술함과 그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첫눈에 반해 그 집을 계약하겠다고 나선 임자가 있었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탄탄한 근육질의 남자는 사십이 안 되어 보였다. 반들거리는 단단한 이마와 날카로운 눈매는 사설 경비업체의 경호원 같은 이미지를 풍겼다. 그는 집의 실내를 건성 돌아보고 마당을 꼼꼼히 살폈다. 그는 처음부터 윤희와는 상대하지 않았다. 시베리안 허스키가 두 마립니다. 썰매끌기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탄 경력도 있어요. 다른 건 다 괜찮습니다. 녀석들을 맘 놓고 키울 수 있는 마당만 있다면. 그의 말에 공인중개사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주인은 이 집을 되팔 목적으로 사놓았어요. 주인 간섭은 일절 없습니다. 나중에 이사 나가실 때 원상 복구 해놓는다는 조항에 사인만 하시면……. 지하실 안으로 들어갔던 사내가 손바닥을 털면서 밖으로 나왔다. 여긴 나무판자로 문짝만 하나 해 달면 해결되겠는데요. 그는 곧 계약서를 작성했고 윤희는 그 집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곧 여름이 올 텐데……, 어쩌면 여름이 오기 전에 태훈이 돌아올 집인데…….
윤희는 우편물들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훈이 사라진 지 백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집으로 마음이 갈 때마다 핸드백 속의 그 집 열쇠를 만지작거렸지만 그 집엔 한 번도 발길을 한 적이 없었다. 전셋집을 처분한 돈의 반은 월급을 받지 못하고 흩어진 공장 직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와흐너와 마몽이 인권센터의 상담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우린 사장님을 믿었습니다. 우린 갈 곳이 없어요. 어눌한 한국말로 와흐너가 윤희에게 호소했다. 검은 피부에 동그랗게 큰 눈을 가진 와흐너는 윤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긴 속눈썹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끓고 있는 샤브샤브 국물에 얇게 저민 쇠고기 조각을 담그며 흰 이를 드러내고 웃던 와흐너와 마몽에겐 고국에 두고 온 어린 자식들이 있었다. 노동부에 찾아가 진정할 수도 있었지만, 그 전에 사모님을 먼저 뵙고 싶었어요. 와흐너와 마몽도 사모님을 뵙고 싶어 했구요. 인권센터의 상담사라는 남자는 그게 인간적인 순서 아니냐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이건 제 이름으로 된 제 집이에요. 이건 칠십 평생 허리 굽혀 살아온 내 어머니가 저한테 준 유산이란 말이에요. 하지만 윤희는 그 말을 꿀꺽 삼켰다. 모든 게 헛되게 들릴지도 모른다는 낙담이 밀려들었다. 머나먼 이국으로 꿈을 안고 찾아왔을 그들에겐 잠 못 이루는 깊은 밤, 자신들의 하소연을 받아줄 전화 한 통 할 곳이 없는 사람들일지도 몰랐다.
윤희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그 집 골목을 빠져나왔다. 태훈이 사라진 뒤 시작된 불면증으로 그녀의 머릿속엔 좀이 스는 것처럼 구멍이 뚫리고 몸은 늘 소금가마니처럼 무거웠다. 아무리 하찮은 목숨에게도 죽음 같은 시간은 언젠가 지나가게 마련이다. 흐르는 시간이 주는 한 가닥 은혜마저 없다면 무거운 생은 무엇을 버팀목으로 살아갈까. 골목을 빠져나가며 윤희는 중얼거린다. 물기가 바짝 마른 입술이 따갑게 조여 왔다. 지금 태훈에겐 그녀와 마찬가지로 어둡고 무서운 죽음의 터널을 통과하는 시간일 것이다. 어쩌면 그에겐 자신이 무엇인지, 누구인지를 찾아 헤매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거두어 가나마나 별 쓸모도 없는 우편물들을 품에 안고 윤희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 집 담벼락을 만졌을 때 느꼈던 돌기들이, 울퉁불퉁한 빛의 입자들이 차창을 통해 아프게 그녀의 이마에 와 닿았다. 그녀는 주머니 속에 든 그 집 열쇠를 꼭 쥐었다. 어쩌면 태훈은 수십 번도 더 아무도 몰래 그 집 담벼락을 쓸어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절의 시간을 이기고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그의 몫이었다. 우편물을 수거해가든지 어쩌든지 하라는 그 집 여자의 전화 독촉에 시달리면서도 하루 이틀 그 일을 미뤘던 건 그가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한낮은 봄빛이 넘쳐 완연한 여름 냄새를 풍겼다. 세상의 모든 것이 빨라지고 있었다. 삶의 속도도, 인생의 의미들마저도 빠르게 휘돌아 치고 꺾어지며 재빠르게 흘러갔다. 그 집에서 보낸 혹한의 겨울이 뼛속 깊이 사리처럼 박혀 있었다. 잊지 못할 거였다. 윤희는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던 열쇠를 꼭 쥐고 차창을 열었다. 벨벳처럼 부드럽고 흠 없는 바람이 코끝을 파고들었다. 버스가 고가도로로 올라설 때 윤희는 차창 밖으로 움켜쥐었던 열쇠를 힘껏 던져버렸다.
홍명진∙2001년 단편 「바퀴의 집」으로 전태일 문학상 수상. 2008년 단편 「터틀넥스웨터」로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8년 단편 「삼봉여인숙」 한국문화예술위 우수작품 선정. 장편소설 숨비소리.
추천24
- 이전글38호(2010년/여름) 신작단편(이소망) 10.12.07
- 다음글38호(2010년/여름) 신작단편(노재희) 10.12.0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