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38호(2010년 여름호) 특별초대석-강인섭의 통일시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74회 작성일 11-03-11 14:23

본문

강인섭
다시 금강金剛에 외 7편


무거운 고뇌의 짐 다 부리고
가벼운 혼령만 남아
우주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닐 때
다시 금강에 오리라

상팔담에서 구룡연으로 떨어지는
폭포와 한 몸 되어
천사와 나뭇꾼처럼 얼싸안고

짙푸른 물속 하염없이 들여다보며
가는 세월 동그라미 안에 묶어두리니

만물상 얼굴에 새겨진 온갖 풍상
좀 더 가까이 다가가
하나하나 매만져 보고
해금강 삼일포三日浦에도
사흘이 아니라 삼동三冬을 묵어가리라

그대는 길이 막혀 못 갔던
내금강 깊은 골짜구니
비로봉 가는 길목 난간에도
해 저문 산등성이에 짐승처럼 걸터앉아
지나가는 구름과 말동무하리니






아! 금강아



나 환생해 다시 올 때까지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그렇게 있어다오.
눈오는 밤의 백일몽


눈 오는 밤에는 잠을 설친다
그리고 꿈을 꾼다
멀리 떠난 님이라도 오시려나
몇 번이고 깨어 창밖을 내다본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땅에 내려와 서성이던 하늘이
마침내 일기예보대로 눈을 뿌리면
오래 가슴에 묻어둔 모닥불이 피어오르듯
불혹不惑의 나이에도
소년처럼 설야雪夜에 잠 못 이루나니

눈 뜨고 있을 때는 오지 않던 눈이
온 천지가 고요해지자
심야의 점령군처럼 가만가만히
사립문을 밀고 들어선다

하늘의 축복과 평화로움이 내려앉아
온 누리를 하얗게 덮은 이 아침
꿈길에서 오가던 이산가족의 발자욱 따라
선잠 끝에 단꿈을 꾸노니
오오 통일統一도 이렇게 왔으면…… 

먹을 것 구하러 집 나간 엄마와
허기진 어린 아이가 눈길에서 만나고
가난한 나타샤를 태운 눈썰매가
멀리 사라진 후
남북의 동포들이 설원雪原에서 만나
하늘이 굽어보고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도 이제 하나가 되었노라”고
3․1운동 때처럼 전국 방방곡곡에서
통일을 선포해 버리면 어떨까.





가을의 기도


가을이 깊어갈수록
기도는 간절해집니다
비록 나이 들어 쉰 목소리지만
생사의 고비를 넘어온 심장에서
우러나는 소리니까요

나이가 들면 세월 가는 속도가
갑절 빨라진다더니
해마다 맞고 보내는 가을이
왜 이리 짧은가요
이제 몇 번이나 더
이 땅의 가을 정취를 맛볼 수 있을지

그래서 가는 해가 아쉬워
저녁노을의 꼬리라도 붙잡고 싶어집니다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는 땅이기에
더욱 그리운 고향
휴전선 건너 장단에서 내려온 친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올해는
조상 묘소를 성묘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속절없이 또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모처럼 찾는 방배단에서
북녘 하늘을 바라보면
멀리 개성 송악산이 보이고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서해바다에서
금물결이 출렁입니다

이런 때 하늘에 대고
나즉하고 쉰 목소리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모 자식 간의 천륜을 끊어 놓고
성묘길마저 막아놓은 철조망이라도
제발 거두어 달라고.
가을들녘에서

메뚜기 여치가 뛰어가는
가을 들녘
논두렁길을 따라
마악 걸음마를 배운 아가가
아장아장 걸어간다

멀리 뻗어 있는
두 줄의 선로 위로
검은 기차가 지나가고
빛과 그림자는
시각을 가려
설 자리를 잡는다

지금쯤 북녘 허기진 들녘에도
벼이삭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갈바람이
새 쫒는 소년의 목청과 어울려
멀리멀리 퍼져가리니

아, 이제 곡창인 철원평야와
연백평야를 갈라놓은 철조망도
우리 손으로 거두어 낼 때가 아닌가





겨울 철새에게


가을걷이가 끝난 빈 벌판 위로
헤엄치듯 나는 겨울 철새들
시베리아에서 떠나 중국 북한땅을 거쳐
구만 리 하늘을 날아온 그들에게
북녘 소식을 물어 본다

올해 그 곳 작황은 어떠하며
이삭 줍는 주민들도 보이던지
군데군데 묘등에 벌초는 되어 있으며
금강산 단풍은 겨울옷으로 갈아입었는지
궁금한 것도 많다

그리고 155마일 비무장지대를 거쳐 오면서
왜 그곳에는 둥지를 틀지 않았는지
휴전선의 번뜩이는 총구와
철조망이 몸서리치게 무서웠는지
미사일과 핵이 겁나서였는지 묻고 싶다

내 어릴 적 고향 하늘을 날던 기러기 떼들도
총소리를 몹시 무서워했었지
그래서 금강 하구 둑이나 낙동강 하류
순천만 갯벌 같은 데 둥지를 틀고
겨울나기를 하는 철새들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북한 어린이를 위한 기도


북한 어린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입니다

“평양 밖으로 나가보니 사람의 키가 갑자기 작아지고 사는 모습도 사뭇 달라 딴 나라에 온 줄로 착각할 뻔했어요. 눈에 띄는 어린이는 거의 영양실조에 걸린 듯 비실비실하더군요.” 최근 북한을 다녀온 어느 외국인의 얘기를 들은 후 언젠가 본 아프리카 기아 현장의 영상이 떠올라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십 수 년 전 부전고원 부근을 여행한 어느 목사의 증언도 귓전에 쟁쟁합니다. 추운 겨울 식량 구하러 집 나간 어머니를 찾아 헤매던 소년에게 “고생이 많구나.” 하고 말을 걸었더니 대뜸 “저희는 괜찮아요,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가 지켜주니까요.”라고 대답하더라는 것. 이제 수령도 가고 지도자도 몸이 아프다는데 사상적으로 조숙했던 그 때 그 소년은 커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하느님은 왜 남녘에만 있고 북에는 없느냐.”고 울부짖던 영화 「크로싱」의 주인공. 그를 국경 너머 몽골사막에서 죽게 한 것은 자유에의 갈망이 아니라 배고픔과 추위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꽃처럼 나비처럼 춤추는 북한 어린이들의 공연이나 인형처럼 일제히 웃고 있는 마스게임 장면을 볼라치면 도대체 행복이란 어떤 것인지 아리숭해지기도 합니다. 사실 저들은 북의 어린이도 남의 어린이도 아니며 오직 한민족의 후손일 뿐, 그리고 우리의 내일과 미래의 세계를 짊어지고 갈 주인임을 왜 모를까요. 북한 어린이도 우리의 자식처럼 어른이 될 때까지는 배불리 먹고 자랄 권리가 있다는 걸 말입니다

이제 또 다시 추운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찢어진 문풍지 사이로 스며드는 찬바람이 살을 애이면 영양실조에 걸린 저들은 어찌 버틸지 눈앞이 캄캄합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따뜻한 아랫목에서 기도만 하고 있어도 되는지 아니면 달리 어찌해야 하는지 하느님 당신께 묻고 싶습니다.





백두산 천지 앞에서


하늘과 땅의 영기靈氣가 서린 곳
백두산 천지 앞에 서면
모든 산맥과 평원이 발 아래 엎드리듯
나도 이름 없는 들꽃처럼
그 앞에 고개 숙인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상이 바뀌지만
짙푸른 천지 물속은
태고처럼 고즈넉이 가라앉아
억겁의 침묵 속에 잠겨 있나니

아, 지난날 이곳을 지나던 말발굽 소리
날짐승과 외적을 쫓던
고구려, 예맥인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데
거센 폭풍우가 몰아쳐
시야를 가리누나

흰 머리 위 하늘로 떠가는 구름 사이로
수십 년 세월이 유수처럼 지나갔거늘
갈라진 반도의 허리는 언제 이어질 건지
휴화산休火山의 분화구 앞에서
시커멓게 타버린 용암과
화산재의 가루만 매만져 볼 뿐이다.





해란강 풍경


중국 대륙 한 모퉁이
연변땅을 흐르는 해란강은
그 생김새가 우리네 강과 다를 바 없다

야트막한 산기슭을 끼고
구비쳐 흐르는 강줄기도 그렇거니와
주변에 펼쳐진 풍경 또한
한반도의 여느 내와 닮은꼴이다

언덕 위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누우런 송아지
그 둘레 맴돌며 꼴을 베는 소년의 모습도
오래전 해묵은 사진첩에서 본 듯한 얼굴이다

해질녘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 조상들은 이곳을
북간도北間島라 부르며
고향처럼 알고 살아왔거늘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가진 나라가
차지하고 있나니
흐르는 강물 바라보며
할 말을 잊는다.





시인의 말


문단에 나온 지 어느덧 반세기가 넘었다. 그동안 분단시, 통일시라는 이름의 작품을 써온 것도 거의 비슷한 년도일 성 싶다.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된 후 10년 만에 '녹슨 경의선'이라는 표제의 첫 시집을 냈고 잇달아 '강인섭 통일시집'을 출간했으니 분단문학을 주로 하는 작가로 알려질 만도 하다. 그러나 실상 나는 분단현실을 고발하고 통일 지향적 목소리를 내는 시만을 써온 건 아니다. 오히려 서정성이 깃든 순수시 계열의 작품을 더 많이 써왔다고 할 수 있다.
조지훈이 추천한 <동아일보> 당선작 「산록」이나 박두진이 수작으로 꼽은 장시 「맹인」 같은 시편은 현실참여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이처럼 다양한 문학적 지향을 보이며 쉬지 않고 시작에 몰두해 온 내가 이번에는 분단과 통일문제를 주제로 한 작품만을 한데 모아 보았다. 20세기가 저물어 가던 1999년에 펴낸 '강인섭 통일시집' 이후, 그러니까 독일이 통일된 다음부터 최근까지 써온 작품 가운데서 8편을 골라본 것이다. 이 시편들 속에는 주로 통일의 꿈이 멀어져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심리가 깃들어 있다.
나는 지금도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이던 독일이 통일되던 날, 베를린 시내 ‘브라덴브르그’ 문 위에 올라서서 얼싸안고 환호하던 젊은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독일 다음에는 우리 차례일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그날을 기다려 왔으나 통일의 길은 점점 멀어져만 가는 느낌이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목이 터져라 합창하던 그들의 열광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그런 날 무슨 노래를 불러야할지, 남북동포의 심금을 울릴 노래가 과연 있는지 자문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분단의 벽이 아무리 높고 세월이 많이 흐른다 해도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통일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살아 있는 한 한민족이 하나 되는 날은 오고야 말 것이라는 확신을 버릴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독일통일 또한 준비는 오랫동안 착실하게 해왔지만 막상 분단의 징벽이 무너진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온 그대로 고집스럽게 분단 극복과 통일의 염원을 노래하는 시를 쓸 생각이다. 분단과 이념의 벽을 뛰어 넘어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고유의 민족 정신적 유산을 찾아내어 한민족이 통일된 후에도 읽힐 수 있는 그런 시를 써내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강인섭∙1936년 전북 고창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대학에서 수학했다.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녹슨 경의선' 등 4권의 시집과  '더 넓은 세계로' 등의 수상집, 평론집을 다수 출간했다. <동아일보> 워싱턴특파원. 논설위원. 관훈클럽 총무를 역임하고, 통일민주당 부총재, 제14. 16대 국회의원과 대통령정무수석을 지냈다. 한국외대 석좌교수와 호남대 겸임교수를 지낸 후, 강우규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추천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