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37호(2010년/봄) 신작시/황홀한 블루스 외 1편/이인순
페이지 정보

본문
이인순
황홀한 블루스 외 1편
보라, 서쪽 산꼭대기에 걸려 있는 저 황금빛 복주머니를
절정에 잠시 머물다 체념하듯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저 태양은
오오오오오오옴 오옹오오오오옴
황금빛 오르가즘을 천지에 슬슬 풀어 놓는다
수억만 개 허방을 딛고 억겁을 닳아진 경로를 따라 수천 세기를 날아온 저 분분한 새 떼들
이제 잠이 깃들 집을 찾아 흩어져 돌아간다
사유의 깊은 주름살들
시간을 숨겨둔 복주머니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주름을 가졌다
주름 사이에 사랑을 넌지시 비밀을 간직한다
하늘 귀퉁이에서 미끄러지는 황금주머니
내려가는 자는 육체에 새긴 쑥스런 훈장인
주름을 가진 자 살아남은 자들이다
올라가는 자 모두 초월超越을 꿈꾸지만
내려오는 자는 경계를 넘나드는 황홀한
포월抱越의 블루스를 춘다
아름다움은 입술 꾹 다문 두 겹의 비밀 사이에서 피어난다
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긴 여행을 떠나는 일이다
낮달 하나를 엿보고자 하는 간절한 동경이다
어느 저녁, 어스름으로 길게 흐르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희미해져가는 바다를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낯선 바다 위로 낮게 뜬 어떤 달 하나를 동경하여
그 바닷가에 나를 풍장하려 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여, 사람의 길은 모두 달라서
네게 가는 길과 내게 오는 길은 사뭇 달랐다
이인순∙1991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벌레집>.
추천2
- 이전글37호(2010년/봄) 신작시/떠나가 버린 사랑과 기상 캐스터 외 1편/김경수 10.08.18
- 다음글37호(2010년/봄) 신작시/수첩, 알래스카 외 1편/서규정 10.08.1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