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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10년/봄) 신작시/상처 외 1편/김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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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
상처 외 1편
비가 와도 아프고, 바람이 불어도 아프다.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며 새살 돋기를 기다린다.
이제는 제 몸 아픈 것에 익숙해져 있다.
상처를 쓰다듬다가 문득 당신의 상처에 대하여 생각한다.
이 작은 상처에도 이렇게 신경 쓰이며
덧나면 어쩔까 싶은 마음에 무섭다하곤 하는데
우후죽순 돋아나는 상처를 보며 당신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느덧 당신의 상처는 나의 상처가 되고
당신은 나의 상처 속에 자리를 잡는다.
오래된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견뎌왔던 그 마음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엮어놓는 시간들,
맨 아래에 있는 것부터 단단해진다.
상처가 깊어지면 상처만큼의 삶이 단단해진다.
깊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다.
이 삶의 깊이를 볼 수 있는 곳에서
함께 있고 싶다. 당신도 상처가 되지 않고
나도 당신 때문에 아프지 않은 그곳에 있고 싶다.
허공, 말의 집
말과 말 사이를 읽다가
문득 허공을 읽고 있는 것을 본다.
그 본질 속으로 잠입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하염없이 그 안으로 빠져들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언제부터 그런 일들로부터 소외되었던 것일까.
말 사이사이를 짚어보다가
문득 말들에게 읽히고 있는 나를 본다.
허공이 되어 있는 것을 본다.
나는 말들이 짓고 있는 집이었다.
김광기∙1995년 시집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로 작품활동 시작. 수원예술대상(문학부문) 수상. 시집 '호두껍질', '데칼코마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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