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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10년/봄) 신작시/눈곱 외 1편/김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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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우
눈곱 외 1편
한 남자가 생선횟집 수족관을 들여다보고 있다
중얼거린다
위협적인 언사와 달래는 어투
물고기가 자신을 수족관처럼 바라본다고 화를 내는 그는
수족관을 몰래 그리워하는 중이리라
버려졌지만 스스로 버린 거라 믿어버린,
한세월 맨땅을 지고 온 남루
그는 잉여가 된 건
내가 그를 기억하지 않은 까닭이다
비딱히 걸린 가방마저 반쯤 열려 헐렁한 속을 드러내었다
다 쏟아질듯 위태롭지만
다행히 주인의 빈속처럼
비딱한 가방 안은 은밀하고 까마득하다
보이지 않는 도시가 그에게서 매일 붕괴되고 있으니
물고기에게 시비 거는 그의 눈곱은
삐걱이는 난간의 무게
하얀 거품으로 밀려왔다
빠른 속도로 모래톱을 빠져나가는, 늙수그레한 시간을 본다
결코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자기장 밖을 떠도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잉여의 눈곱, 눈곱들
객방
절집에서 내어준 끝방, 메주 뜬내 가득하다
뒤울에 땅거미 막 졌는데
두레박이 한참 내려간 우물처럼 밤이 깊다
앳된 스님이 넣어준 홍시 몇 알
함께 큰절 한다 서로 오래 기다린 손님이니
대나무 옷걸이에 걸어놓은 겉옷과도 절한다
내 옷도 내 손님이셨으니
징검징검 미열을 건너 무심히 도착한 고요
내 사랑의 새로운 선언문, 페이지마다 낡고 낡아 보풀 이는데
지상에 피어난, 그리고 함부로 잊혀진 절망들이
검정고무신을 벗고 마주 앉는다
거미 한 마리 방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김수우∙199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길의길',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붉은 사하라'. 사진에세이집 '하늘이 보이는 쪽창', '지붕 밑 푸른 바다','아름다운 자연 가족'. 산문집 '씨앗을 지키는 새', '백년어'. 부산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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