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37호(2010년/봄) 신작시/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외 1편/김은경
페이지 정보

본문
김은경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외 1편
바람 든 노을을 마셔요
아무 이유 없이 내가 사랑에 빠질 때
벌레 먹은 포도나무 잎사귀가 열매의 통증을 읽어요
사라지는 구절을 느리게 후렴하는 밤
흙과 자갈, 오래된 구릉과 잘 여문 씨앗, 나도 모르게
핑 도는 눈물
봉인된 무덤은 해명할 수 없어요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취하기 위해 태어난 걸요
굴종하는
질투뿐인
거짓말 같은 죽음
좁은 병목 두터운 코르크 마개 따윈
대수롭지 않아요
속삭이듯
몸살을 맞이하듯
입 벌려
당신 전체를 굴려 봐요 무릎 꿇어 봐요
멀미가 오면 좀 어떤가요 육체 없는
손가락은 어차피 거짓말인데
붉은 혀만이 불길한
실체라는 거
기억하세요 매일매일
무료한 식탁을
*이란의 바흐만 고바디 감독이 만든 영화.
달빛은 사라지지 않고
숨 가쁘게 달려도 달빛
사라지지 않아요
고양이 울음 그치고
가로등이 차례로 죽어가고
더 고단해지는 동안에도
몸 부풀려 수천 개 얼굴로 오는 달빛
날마다
아껴둔 얼굴을 차곡차곡 조각내고
붉은 꽃, 짓이겨 손톱 물들이고
여비 없이
짝짝이 다리 팔랑이며
더 멀리
낯선 공장으로 떠나가지만
아무리 그래도,
머리 위 달빛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것은 길어요
김은경∙경북 고령 출생. 2000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추천2
- 이전글37호(2010년/봄) 신작시/실, 실실^∼ 실없는 확률론 외 1편/김영찬 10.08.18
- 다음글37호(2010년/봄) 신작시/눈곱 외 1편/김수우 10.08.1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