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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10년/봄) 신작시/슬픔의 가능성 외 1편/박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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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하
슬픔의 가능성 외 1편
우리는 떠나면서 만났다
앞을 보면서 뒤를 보았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린다면,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릴 때 눈이 온다면
슬픔은 가능할까?
누구도 슬픔에 대해서 친절히 일러주지 않는다
중앙선은 흔들림이 없고
나는 반으로 나뉘는 상징이 싫다
이를테면 신호등 같은 것
목적 없는 삶은 좋다
이를테면 무모한 사랑 같은 것
눈이 내린다 질문과 답을 뭉뚱그리며
무모하게 쏟아지는 눈 속에서
보이지 않는 건널목을
배고픈 사람들이 장님처럼 우우 건너간다
모든 버스를 그냥 보내버리고 정류장에 선 사람처럼
나는 웃는다
슬픔이 가능하지 않다면 어떤 건너편이 가능할까?
저편이 이편이 되려면 얼마나 오래 돌아가야 하는 걸까?
우리가 농담마저 망각한다면
이 슬픔의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네가 버스에서 내릴 때
나는 마침내 등대를 잃은 사람이 된다
건널 수 없는 건너편으로
하얗게 손을 흔들며 별의 말들이 사라진다
고백의 원형들
말해 줄게
아랫입술을 깨문 이유를
몰래 버린 새 옷들과
손바닥에 새긴 별 무늬를
어떻게 내가 울다가 웃다가 결국
사막의 달 위에 신발 한 짝을
올려놓고 왔는지
맨발을 보여줄게
거울 속에서 자라난 오아시스를
푸른 심장의 굳은살들이
언제부터 꽃이 되었는가를
그 꽃이 얼마나 천천히 차가워졌는가를
무지개가 가 닿은 바닥에 대해 말해 줄게
커다란 웃음소리 뒤끝에
배어나던 핏방울에 대해
정오를 끌어안던 그림자와
눈 속의 검은 만월에 대해
없음으로 있는 당신
모래기둥 위의 달 같은 당신에게
갇힌 사막처럼 외쳐 줄게
모래시계 속의 모래알처럼 쏟아지며
속삭여 줄게
박시하∙2008년 ≪작가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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