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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10년/여름) 권두언/다성多聲의 모자이크(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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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성多聲의 모자이크
≪리토피아≫를 유심히 관찰한 사람은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리토피아≫의 전반적인 목소리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최근 5∼6호 이전부터 ≪리토피아≫는 크고 거칠고 추상적인 목소리로 특집을 꾸미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거대한 담론들이 특집 원고를 채우고, 미세한 담론들이 그 하위 체계를 이루는 식의 잡지 편집을 지양하고 있는 셈이다.
대신 ≪리토피아≫는 작고 미약하지만 생생하고 구체적인 목소리로 특집을 채우려고 애쓰고 있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집필을 할 수 있는 주제를 내놓는가 하면, 지나치게 현실과 요원한 주제를 피하고 있기도 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문학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주제에 접근하기도 하고, 필자들도 반드시 문학 관련 계통의 사람들을 고집하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은 삶의 주변에서 들려오는 생생한 현장음을 담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문학이 늘 크고 진지해서 어렵고 기피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작은 사람들’의 내면적 바람을 들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변화는 틀림없이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이다. 문학잡지가 세상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고 질문했을 때 응전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은 문학이라는 갑갑한 틀에서 지나치게 고식적으로 흘러나오는 거대 담론을 용인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진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문학의 저력과 역할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잡지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서 머뭇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작고 낮고 연약하고 비전문적인 목소리는 경계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일단 여러 갈래로 쪼개져 다양한 형태로 재생되는 목소리를 긍정적으로 청취하기로 하자. 이번호에서 지면 가득 펼쳐져 있는, 다음 세대를 짊어질 젊은이들이 육성으로 내고 있는 거침없는 항의와 격정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들의 치기와 편협함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기존의 문학이, 그리고 문학잡지가, 또 문학판이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잠시라도 생각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자. 그것은 이 시대 문학잡지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또한 이 작은 목표에 충실할 수만 있다면, 그만하면 잡지 특집으로 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천안함이 침몰하고 우리 모두가 겪은 슬픔과, 그 안에서 숨겨진 장병들의 유해가 함께 안장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나라 전체에 비장한 기운이 감돌고 있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울분과 함께 추모의 정이 넘치고 있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20대의 발칙한 상상력을 가진 이들은 오늘의 이 사태를 어떻게 살펴볼지. 그들이 지니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그 무엇이라고 해도, 그들과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 과연 우리의 문학 속에서 제대로 진단되고 있었는지. 아니 앞으로 제대로 진단되는 날이 올 것인지. 문학이 이러한 슬픔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오늘날의 한국은 문학잡지의 천국을 이루고 있다. 대형서점의 서가에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문학잡지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은 정작 얼마 되지 않는다. 문학과 문학의 역할에 대해 가끔 회의가 들 때마다 생각한다. 작은 목소리일망정 누군가는 듣고 있을 거라고. 오늘을 넘기면서 그 누구보다도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 목소리를 분별해서 들었으면 한다. 문학이 침몰하고 있는 세상에서, 그나마 문학을 소생시키고 지켜가야 하는 이유를 가장 많이 간직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도 많은 좋은 필진들이 참여해 주셨고, 수고해 주셨다. 언제나 그렇지만, 자신의 글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은,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안 된다. ≪리토피아≫는 모든 필진의 글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글쓴이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언제나 노력할 것이다. 옥고를 보내주신 이들에게 감사한다.
특히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자유롭게 자리 잡은 특집 곁에, 안정되고 차분한 자세로 앉아 계신 듬직한 필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잡지가 하나의 집이라면, 젊은이들의 상상력이 뛰어놀 수 있도록 이 분들은 한편으로 자리를 양보한 분들이다. 그분들의 중후함 역시 ≪리토피아≫의 목소리를 만드는 중요한 힘임에 틀림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여름호가 궁극적으로 겨냥했던 것은 균형과 조화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의 삶과 문학에도 균형과 조화가 찾아오기를 기원한다.
2010년 여름
김남석(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추천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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