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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10년/여름) 특집/이십대의 발랄한 상상력들(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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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나의 힘:우리는 어째서 ‘세대’를 넘어서야 하는가?
단 편 선 |가수, 25세
엊그제 쯤이었나, ‘청년 이그나이트’라는 단체에서 준비한 ‘말해봐, 괜찮아! 찍어봐, 바뀔 거야!’라는 대학로 거리문화제에서 노래를 부를 일이 있었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 곧 있을 지방선거를 맞아 ‘대학생 유권자’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려는 목적의 문화제였으며, 큰 규모라기보다는 예의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진행되는 소규모의 문화 행사였다 할 수 있었다. 마침, 부제로서는 꽤 그럴싸하게도 ‘4.19 혁명 50돌 기념’이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그렇다, 50년 전에 이 땅에서는 혁명이 일어났었지(비록 그것이 반쪽 짜리도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귀여운 탈을 뒤집어쓰고 지나가는 청춘들에게 유권자로서의 호소를 하던 친구들의 옆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던 내 심기는 사실 꽤나 불편했었다. 내 노래에 사람들이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아무리 보아도 우리 문화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보다는 지나가는 사람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아니, ‘절대적’이라는 수사가 더욱 좋겠다). 문화제에 관심을 안 가지는 것이야 크게 상관없겠다만, 왠지 내 눈에는 그들이 ‘투표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이기만 했다. 평소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거의 없던 내가 보기에도 이건 아니었던 것이다. 문득 화가 난 나는, 노래를 하다말고 갑작스레 마이크를 잡고는 “저기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제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세금 내시죠? 담배 피고 술 마시고 생활 하시면서 세금 내실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투표 안 하세요? 정부가 우리가 낸 세금 마음대로 써도 되는 겁니까? 투표 안 하시는 분들은 세금 낼 자격도 없어요. 아세요?” 라는 식으로 한참을 떠들어댔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공허한 울림이었다. 4월의 볕 좋은 날이었다.
단체의 목표치가 다 찬 것인지, 투표 참여를 독려하던 친구들은 슬슬 자리를 접고 있었다. 이윽고 둥그렇게 둘러서 참여한 친구들이 한마디씩 하는데,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어떻느니, ‘4.19’가 어떻느니 하는 붕 뜬 소리만 하고 있었다. 아마 바보 같았을 것이다. 함께 식사를 하러가자는데 다음 일정이 있다면서 빠져나왔다. 사실 다음 일정과의 사이는 꽤 벌어져 있었지만 왠지 거리를 걷고 싶은 것이었다. 거리를 쏘다니고 싶은 것이었다.
대학로의 ‘이음 책방’에서 아는 사람이 쓴 자서전을 한 권 사들고 홍대로 향했다. 킥킥거리며 책을 읽다 내려야 할 곳에 내리질 못하여 지하철 역까지 한참을 걸어가기도 했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20대 다큐멘터리로 꽤나 알려진) <개청춘> 상영회가 있었고 감독인 여성영상집단 ‘반이다’와의 GV를 내가 진행하기로 되어있었다. GV를 시작하기 조금 전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먼저 만난 ‘반이다’와 나는 김치찌개를 먹으러 들어갔다. 간만에 만나서는 근황도 묻고, 요새 작업들 얘기도 하다 이내 ‘20대’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늦었지만 이 글의 주제다). ‘반이다’는 근래 담론이 돌아가는 모습에 대해 불만이 꽤 있었다. <개청춘>이 처음 상영될 때만 해도 ‘20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상연한 경우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신선하기도 했고, 그래서 내심 <개청춘> 이후로는 ‘실제로서의 20대 운동’이 어떤 식으로든 시작될 수 있지 않겠나 기대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개청춘>을 기점으로 ‘20대’에 대해 20대 자신들이 발언하는 경우들이 현저하게 늘어나기는 했지만(그러니까 그들이 얼리어답터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 대부분이 자기에 대해 기술하는 것, 그러니까 ‘자기-서술’에 그쳤다는 것이었다. “그래, ‘자기-서술’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야. 오히려 좋아. 그런데? 그 다음에는 무엇이 와야하는데?” ‘20대’는 아직도 ‘자기-서술’하는 정도에 만족하는 것 아니냐고, 우리는 입을 모았다. 거기서 끝난다면, 그래서 그것이 단순한 ‘세대 간 인정투쟁’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끝난다면 우리는? 자조적인 결론일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우리는 니치마켓을 하나 뚫은 것으로, 새로운 자서전 시장을 하나 만든 것으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이미 끝난 까닭에, 우리 역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거리’를 했다라 말해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맥락 없이는 의미가 발생할 수 없나니). 조금 슬프지만, 현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 “슬픔은 나의 힘”이라 노래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때때로, ‘20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공허하다 느낀다. 아니, 실은 거의 늘 그렇다. ‘20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내 ‘밥줄’이 끊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러하다. 글쎄, 왜일까? ‘30대’나 ‘40대’, 그러니까 어른들이 ‘20대’에게 원하는 것을 ‘20대’가 보여주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인가? 내 짐작으로는, 그것보다는 실제로 ‘20대’가 이미 ‘어른’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재미있게도, ‘30대’나 ‘40대’ 혹은 그보다 더 위의 어르신들이 ‘20대’에게 롤모델을 부여하는 형국이란 사실 ‘20대’가 스스로 주체화될 수 없는 이, ‘어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잘 생각해보시길. ‘40대’가 ‘30대’에게 ‘어찌어찌 해라’라고 주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은가? (물론 그런 경우가 일부 있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어차피 일부 아닌가?) 하지만 ‘20대’, 특히 그중에서도 어떤 활동act을 고민하고 있는 활동가activist, 혹은 전-활동가pre-activist 단계에 있는 친구들은 어른들의 바람과는 별 상관없이, 자신의 활동을 지향한다. ‘40대’에 대해서 ‘30대’가 그렇듯, ‘40대’와 ‘30대’에 대해서 ‘20대’도 그런 것이다. 이미 자신들의 활동반경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제시하는 ‘롤모델’을 따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꽤나 적지 않은 ‘20대 활동가’들이 ‘세대 간 인정투쟁’에 함몰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긴 할테지만, 그를 중요하다 말하지는 않을 참이다. 말했듯, 그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거리’이기에 정작 우리가 실질적으로 ‘사건’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단초는 그 ‘바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단초는 ‘20대’의 바깥에 있으며 ‘세대론’의 바깥에 있다. 그렇기에 그 지점에서, ‘세대 간 차이’ 따위는 무화될 것이다. 저항하더라도, 무화시켜야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윤리인 까닭이다.
사실 최근의 경험들 때문에 이런 얘기를 늘어놓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저기에 노래를 하러다니다 만난, 아나키스트이며 평화활동가인 ‘조약골’은 먼저 나에게 말을 놓자고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놓는 것이었다. ‘조약골’의 오랜 활동경력을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가 나보다 나이가 꽤 많을 것임을 지레 짐작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러자”고는 했지만 왠지 조금 서툴렀다. 익숙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지금에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만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의식적으로라도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 베인 습관일 뿐이다. 누가 누군가의 위에 있다고 누가 보증해준 것인가? 정작의 보증인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있다’라 믿고 있다. 사실은 그럼으로서, 우리가 안전해지려는 욕망에서다. ‘조약골’과 나와의 일화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종종 재생산된다. 하지만 이제는 넘어서야할 때가 아닌가? ‘20대’와 ‘30대’, ‘40대’가 각각 다를 이유가 없다. 말 지어내기 좋아하는 사회학자들이야 서로의 차이를 세심하게 파헤쳐 반드시 분류할 테지만, 실은 비슷한 욕망의 회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20대’와 ‘20대 활동가’라는 구분이 나을 것이다(그러나 여기서 나는 ‘(쁘띠)부르주아로서의 20대’와 ‘프롤레타리아로서의 20대’라는 대립항을 도입하고 싶은 유혹을 참지 못한다). 여기에 활동가에게는 사실 세대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하나 추가시켜야 되겠다. ‘조약골’이 ‘30대 활동가’이고 내가 ‘20대 활동가’인 것이 아니라, 우리는 둘 다 활동가인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유명한 실천명제를 패러디하자면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세대가 없다’. 우리는 윤리는 이곳에서부터 시작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미래는 이로부터 도래하는 것이 아닐까?
단편선∙<요새 젊은 것들> 공동 저자. 음악창작자. 성인가요를 연주하는 원맨 포크 프로젝트 ‘회기동 단편선’을 운영. 대중음악전문웹진 보다(bo-da.net)에 동시대 한국음악에 관한 사담들을 비정기적으로 기고. 또는 포크로동자라거나 생계형빈민포크날품팔이로 자신을 소개할 때도 있음. 근래에는 동교동 삼거리의 철거 투쟁 현장 ‘두리반’에서 기획자로 활동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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