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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10년/여름) 특집/이십대의 발랄한 상상력들(유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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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504회 작성일 10-12-07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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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래퍼의 직업관

유 승 균|가수, 29세




소통이 없다니

옛날에 아르키메데스는 ‘내가 버티고 설 자리만 마련해 주면 지구를 움직여 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오늘날 다시 태어난다면, 전기 미디어를 가리키며 ‘내가 여러분의 눈과 귀 그리고 신경과 뇌 위에 설 수 있는 자리만 마련해 주면 내가 원하는 템포와 패턴으로 세계를 움직이겠다’로 말할 것이다. 우리는 이 ‘설 수 있는 자리’를 이미 기업들에게 넘겨줘 버렸다.

―마샬 맥루언, 1964.


“유 군도 보시다시피 우리는 소통이 핍진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소통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복수의 인간들이 모여 있는 군집사회에 소통이 없다니, 오늘 집 앞 편의점에 생수 안 판다는 이유로 지구에 물이 없다고 한탄하실 기세다. 현대사회에 소통이 없다니, 그래서 선생님은 대체 누구와 소통이 그리 핍진해 지셨는지요. 어제 사모님께 혼나고 소파에서 주무셨나요. 자녀들이 용돈만 받고 피씨방으로 내빼니 짜증나시지요? 직장의 아랫사람들은 당연히 선생님과 소통이 잘 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아랫사람 시절이 있으니 그 이유는 아시지 않습니까. 원래 윗물은 아래에 뭐가 사는지 모릅니다. 수직적 구조에서 보이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그와 나는 소통이라는 어휘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에서의 이런저런 필요를 남에게 기호로써 통보, 이를 주고받으며 사유를 진행하는 과정이 내가 아는 소통인데, 소통이 부재하다고 하시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선생님의 정의는 나의 그것에서 아마 또 다른 체가 몇 개 더 추가되어 있는 것 같다. 그 말씀을 이해해 보려고 나와 내 주변을 되짚어 본다.

왜? 문학이 사람들을 예전처럼 널리 감동시키고 있지 못해서? 나도 예전보다 책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줄긴 했지만…… 문학=책은 아닌데, 문학의 정의가 무엇이길래? 아니면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개연성이 예전에 비해 무한소로 치달아가고 있다는 말씀이신가. 기표와 기의의 해석문제는 개개인의 커뮤니케이션 간에도 산더미처럼 쌓이곤 하니 전 사회적인 현상으로 치부하려면 연구가 많이 필요할 텐데. 요즘 아이들이 그렇게 서정에 메말랐던가. 그런 듯도 하고……. 성균관대 중앙도서관 앞에 있는 심산 김창숙 선생 동상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구야?’ 하는 3, 4학년으로 보이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끈이 여기저기 끊어지고 있는 소리가 들리기는 하는 것도 같다. 역사는 곧 서사인데 국사는 선택과목이고. 너도나도 경영학 부전공으로 4년 내내 열심히 공부(“소설책 읽는 인문학 수업이 무슨 공부냐!”)하고 기업에 입사하면 개인의 시간은 더 줄어든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세상을 보는 눈은 내가 유태인/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여기던 20세기 초의 독일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행여 오늘날의 우리 사회가 재벌기업과 족벌언론이 미디어를 선취하고, 민중의 감성을 완벽히 집어삼킨 시대라면 ‘소통의 단절’이라는 평가가 옳겠지만, 아직은 그렇지는 않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는데, 선생님과 대화하다 보면 뭐라 반론을 해야 좋을지 손발이 저려올 때가 있다.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예술은 또 달린다

이해를 못하실 것 같아 말씀드리기를 주저하게 되는데, 선생님은 dcinside는 아직 안 가보신 모양이다. 뽀샵질(이미지 자료를 에디터가 원하는 대로 합성하는 행위)의 시대에 새로이 한국 미술사에 등장한(아직 학계가 인정해주지 않았으니 앞으로 ‘등장할’) 표현수단인 ‘필수요소’가 기표와 기의의 합일에 대한 얼마나 강렬한 염원을 담고 있는지 못보셨구나. 기술복제가 예술작품의 근간을 흔들어 놓은 이후부터 사라진 원본의 아우라를, 재합성하는 작가가 의도하는 아우라로 ‘새로 고침’ 해놓은 인터넷 합성작가들은 훌륭한 앤디 워홀의 후예들이며, 이탈리아 미래주의의 적자嫡子들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퇴임까지 남은 시간을 보여주는 ‘퇴임시계’ 플래시 작품이 웹서핑하는 세계인들에게 심어놓은 공포는 20세기 폭스나 워너브라더스가 몇 억 달러 들여 만들어놓은 블록버스터의 결과물이 아니다. 영화감독이 미디어를 활용하여 의도한 세계를 창조하는 흡사 신과도 같은 위치를 깨달은, ip주소를 이름삼아 살고 있는 우리 주변 친구들 같은 아무개들일 따름이다.

물론 미술 말고 음악으로 넘어가서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말씀도 일면 매우 옳아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95년 고1 수학여행 때 살면서 가장 멀리 떠났던 여행의 서정성을 만끽하는 가운데 사흘 내내 내 귀에 들려왔던 노래는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였는데 그 노래의 가사가 내 삶과 소통하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기억나는 가사라고는 ‘싸바싸바~’뿐이니). 그 이후 우리 집 주변 번화가의 레코드샵에서 사람들의 뺨을 때리고 귓등을 간지르던 가요계의 밀리언 셀러들이 모두 그랬다. 올해의 큰 히트곡인 2NE1의 ‘I don't care’의 노랫말도 나도 서로를 신경 쓰지 않는다. 60년대 이후 시인들이 유행가의 작사에 완전히 손을 떼자 문학과 가요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른 종이 되었다. 소설가와 뭘 소통해서 음악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못들어 봤다. 미디어의 팔다리가 워낙 길어진 사회이다 보니 어딘가에서 어떤 공기를 공유하여 만들어진 다른 장르의 작품들은 무슨 연관성이 있을 법도 한데, 실제로 보여주는 표상들은 각기 담 쌓은 듯한 모습들이다.

하지만 이것도 조폭자본에 고스란히 예속된 메이저 가요계가 우리에게 팔기 위해 내놓은 컨텐츠의 문제일 뿐, 자본에 회유당할 이유가 없는 개별적인 창작자들이 만드는 음악은 합성사진을 만들고 있는 자신의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는 미술가들과 다를 바 없는 훌륭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명한 말인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한마디에 리듬감을 부여해 Nelly나 Akon의 플래티넘 싱글들보다도 신나는 댄스곡을 만들어놓은 익명의 유저들은 웬만한 믹스 DJ들보다 여러모로(특히 문화와 사회에 대한 이해도에서) 뛰어난 창작음악가라는 사실을, 본인들은 모를 것이다. 이러한 익명의 창작인들은 출세를 타의로 포기한 채 시를 경연하며 술내기를 하며 지내던 여항문인들의 흥취를 지니고 있으며, 그들이 가진 아웃사이더의 자유로움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가장 거대한 적 가운데 하나인 무료 OS LINUX의 창시자 리누스 토발즈의 개발의도처럼 ‘그냥 재미로Just for fun’ 시작하여 인류의 빛으로 승화된다.


그래도 문학은 언제나 미디어의 총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종이가, 구텐베르크 은하가, 사진이, 활동사진이, 축음기가, 타이프라이터가, 개인용 컴퓨터가, 인터넷이, 모든 혁명을 가져온 미디어들이 등장할 때마다 문학은 변화하였고 인류를 새로운 시대에 알맞는 사유방식으로 길들였다. 성경이 대량으로 인쇄 배포되어 수도사들이 소리 내어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어지자 묵독을 이단으로 간주하여 비판하는 종교인들이 많았다니, 미디어와 문학의 발을 맞추는 변화에 따른 반감과 저항은 늘 있었던 모양이다. 한국에는 수 개월 전 겨우 시작된 스마트폰의 시대 역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문학이 책 속에, 음악이 CD 안에, 영화가 극장에만 앉아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또한 제공자와 소비자가 프로슈머로 융합된 것도 인터넷 혁명이 미디어의 변화를 통해 오래전부터 사람들을 압박해온 결과다.

그래서 어휘의 정의란 얼마나 많은, 또한 충실한 잔손질을 요구하는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양재동이 ‘말 죽 먹이던 거리’였던, 봉화에 불 피우던 시절의 소통과, 걸어다니며 전세계와 댓글놀이를 하고 사는 오늘의 소통은 크게 달라진 외형으로 소통이라는 어휘를 붙이기도 생경한 느낌을 주지만, 실상은 옛날의 소통과 지금의 소통에 대한 일관된 공통점을 사람들이 더욱 날카로운 시선으로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따름인 것 같다. 인문학은 ISO 26000이 등장하여 우리 대기업들을 압박하기 시작한 최근 몇 달, 그 수 천 년 이전부터 일정한 규약protocol을 열망해 왔고, 자기 세대에 그것의 정립이 충분치 못하면 또 다음세대에 그 책임의 뒷장을 비워주었다. 국가나 대자본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지 않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롯데 자이언츠의 평생 팬이 되는 것과 동일한 이유로 선대 인류의 보석들을 캐고, 자기 나름대로의 이해를 통해 사람들과 술자리에서, 맞선에서, 심포지엄에서 대화를 시도한다. 지금의 새로운 세대도 앞으로 등장할 세대도 훌륭히 소통을 이루어낼 것이다. 기업에 의해, 여가시간 안주는 사교육과 직장문화에 의해 개인의 사고가 정지되어가는 세상에 살고 있어도 인간은 여전히 문학을 품을 능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가에 대자보가 사라지고 대학이 취업아카데미가 되었다고 해도 걱정할 것이 없다. 열띤 토론에 따른 사회정화의 기능은 진작에 대학에서 인터넷으로 옮겨왔다. 나 같은 나이도 아직 많지 않은 90년대 학번들이 모여 요즘 대학생들 보면 한숨만 나온다는 푸념을 늘어놓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산소가 아깝다. 건강한 피는 어딘가에서 아직도 흐르고 있다. 그 근처에 가보지 못한 우리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농사짓다 말고 수렵하다 말고 동굴에 뜬금없이 그림을 그리는 발칙한 상상력에서, 인간은 달라진 게 없다. 사람이 머리 굴리고 사는 이상 시대와 사람에 맞는 아고라가 존재하지 않을 리 없다. 다음 아고라에 안 가보셔서 소통이 단절된 것 같다고 하시는 것은 아닌가? 출판되지 않은, 팔지 않는, 한국학술정보 KISS에 등재되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댓글 속에서, 합성사진 속에서, 노랫말 속에서 젊은이들에게 보이고 읽히고 들리며 문학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가사를 잘 외우지 못한다. 무엇을 말하는가?…(중략)… 그의 주관심은 창작에 있지 연주에 있지 않다. 그는 노래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데 뜻이 있지, 개척한 땅을 어떻게 잘 가꾸어 낼 것인가에는 관심이 적은 편이다…(중략)…그는 ‘음악’을 더 사랑해야 한다.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가 음악이다. 어찌 소중하지 않으랴?……

―문호근(민예총 대변인)


얼마 안 있어 내 아이도 낳고 그에게 해 줄 말은 무언가

이제까지도 눈에 잘 안띄고 귀하고 듣기 어려웠던 얘기들

아직도 풋풋한 바보네 인심과 양심을 지키는 가난한 이웃들

환인의 나라와 비류의 역사 험난한 역경 속 이어온 문화를

총명한 아이들의 해맑은 눈빛과 당당한 조국의 새로운 미래를

깨었는 백성의 넘치는 기상과 한뜻의 노래와 민족의 재통일을

―정태춘 ‘얘기2’, 1989.


오프라인 음반산업의 황금기 시절 자본의 파이를 어느 정도 나누어먹고 반짝 ‘업계’를 이루었던 민중가요의 시장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고 해서, 정태춘이 남기고 싶었던 ‘귀하고 듣기 어려웠던 얘기들’의 뜻을 이해하고, 그것을 음악으로 즐길 수 있는 젊은이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랩을 한다고 해서, 어릴 때부터 힙합에 흠뻑 젖어 살아왔다고 해서 새로운 미디어에 맞추어 등장한 새로운 문화컨텐츠 제공자라고 생각한 일은 없다. ‘좋은 옛날 것 위에 건설하지 말고, 나쁜 새로운 것 위에 건설하라’는 브레히트의 좌우명, ‘환인의 나라와 비류의 역사 험난한 역경 속 이어온 문화를’ 노래할 수밖에 없던 정태춘의 고통스러운 리듬감에 충실한 말들을 써내려가고 싶었는데, 시집은 잘 안 팔리고 아무도 모르니까 쓸쓸하고, 개중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비트 위에 내가 원하는 사설을 읊기에 랩이 제일 적절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옛것이 나에게 가르친 정서는 새로운 척박한 땅을 훑을 써레. 사상을 위한 양식이 필요하니 판을 찍고 가끔 공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양식을 받으면 그 댓가로 사상을 빼앗아 갈까봐 대형 음반기획사와 계약은 하지 않았고, 현재 자영업자다.



유승균∙가수.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 음반 <Love, Curse, Create> 등 3집 발간.

추천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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