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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9/가을)/흐름진단/소설/추억이 소중한 이유/이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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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진단/소설|
추억이 소중한 이유
이경재|문학평론가
∙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문학동네≫, 2009년 여름호)
∙박원, 「내가 사랑하는 모자」(≪리토피아≫, 2009년 여름호)
∙은희경,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문학동네≫, 2009년 여름호)
1. 누구에게나 추억은 있다
사람들을 무리지어 호칭하는 단어 중의 하나로 ‘세대’라는 것이 있다. 같은 시기에 살면서 공통의식을 가지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들을 이르는 말일텐데, 우리 사회나 문단에서도 적지 않게 쓰이는 단어이다. 4.19세대, 6.3세대, 5.18세대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의문 하나. 4.19야 갓 쓴 노인부터 이제 막 젖을 뗀 58년 개띠도 다 겪은 정치적 대격변인데, 어이하여 우리가 ‘4.19 세대’라 칭하는 일군의 무리는 1960년에 스무살 언저리였던 사람들만을 칭하는 것일까? 이러한 사정은 여타의 ‘**세대’들에도 모두 해당된다. 그것은 스무살 무렵의 체험이 한 인간의 의식과 감성을 형성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세대와 관련해 흥미로운 것은 한국에서 세대를 가르는 호칭에는 하나의 단절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90년대를 기점으로 나뉘어지는데, 그 이전에는 정치적인 대사건들이 세대를 가르는 핵심적인 호칭이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서태지 세대나 X세대와 같이 문화적 아이콘이나 담론이 그 호칭의 기원이 된다. 그것은 이제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정치적인 것으로부터 다양한 기원으로 중심을 옮겨갔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고,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되어 한 인간을 지배할 결정적인 정치적 사건 등이 사라진 것과도 연관된다. 오늘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러한 세대적 호칭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집단의 한 일원으로서의 자신’보다는 ‘단독자로서의 자신’을 중요시하는 지금의 상황에 부합된다. 이제 인간은 세대가 아닌 ‘나’일 뿐이다.
이 계절에는 가마 속에서 말랑말랑한 진흙을 벗어나 도기로서 탄생하는 그 결정적인 순간을 다룬, 즉 스무살 무렵의 삶을 주대상으로 한 작품들이 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 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문학동네≫, 2009년 여름호), 박원, 「내가 사랑하는 모자」(≪리토피아≫, 2009년 여름호), 은희경,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문학동네≫, 2009년 여름호)가 그 작품들이다. 80년대생, 70년대생, 60년대생의 각기 다른 스무살을 담고 있는 이들 작품은 모두 회고를 기본 서사 골격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청년이란 사리나 이치가 아닌 동물적 감성으로 세계를 헤아리고, 온몸으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려고” 하며, “사리나 이치는 육체적 열광이 식어버린 후에 찾아오는 변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스무살 무렵의 삶은 이미 성인이 된 현재의 자기로부터 비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 세 작품은 사랑의 문제를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은 자연스럽게 관계와 윤리에 대한 사유로 우리를 이끈다.
2. 너에게 질문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
김애란의 「너의 여름은 어떠니」는 2000년대 문학의 한 상징이 된 작가의 특징과 역량이 응축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묘미는 갓 대학생이 된 자가 한 이성을 가슴에 담게 되는 과정과 가슴에 담은 자를 다시 허공 중에 내려 놓게 되는 과정을 그야말로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는 작가의 문학적 솜씨에 있다.
‘나’는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한 선배를 좋아했다. 연모의 마음은 지금도 이어져서, “나는 지금껏 선배처럼 이상적인 남자를 본 적이 없”(278)다. 그 선배가 ‘나’의 마음에 처음 들어온 계기는 모임에서 잠깐 빠져나왔을 때, 자신을 찾는 모습을 보면서이다. 이후 ‘나’는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어냐고 물어왔을 때, “나의 부재를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대답”(279)하게 된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어느 무더운 여름밤 피서를 위해 에어컨이 있는 과방에 갔다가 선배를 만나게 된 일이다. 그 곳에서 여러 사진들을 함께 보던 중, ‘나’의 사진을 보게 된다. 이 때 “황토색 인조가죽 가방”(285)이 촌스럽다고 싫어하는 ‘나’와는 달리 선배는 바로 그 가방 때문에 그 사진이 좋다고 말한다. 이유는 그 가방에는 “여자의 ‘생활’이 보여서”(285)이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선배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다.
‘나’와 선배, 그리고 ‘황토색 인조가죽 가방’은 김애란과 독자 그리고 김애란의 소설로 그 층위를 옮겨볼 수 있다. 김애란 소설은 사실 요즘의 현란한 칙릿 소설에 비하여 어딘가 촌스럽고 구수한 정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촌스럽고 구수한 정감 속에 지난 시절의 삶이 지닌 끈끈한 실감이 잘 묻어난다. 그것이 세대와 성별을 뛰어넘어 김애란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김애란 소설에는 감각만이 횡행하는 여타의 소설과는 구분되는 ‘생활’이 보이는 것이다.
혼자서만 선배를 좋아하던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별다른 직장 없이 체중을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지낸다. 이 때 졸업 이후 2년 만에 케이블 방송의 AD로 있는 그 선배에게서 연락이 온다. 선배는 세계 핫도그 먹기대회 일등 수상자이며, 미모의 재미교포 여성인 수잔 리 옆에서, 뚱뚱한 ‘나’가 레슬링복을 입고 허겁지겁 핫도그 먹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는 “부모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일부러 자해를 하는 청소년”(292)처럼, 선배의 부탁을 그대로 받아준다. 선배 역시도 힘들게 들어간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친구 장례식에 가려고 차려 입은 상복 차림 그대로 방에 눕는다. 방은 “습도 탓인지 깊은 물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295)이다. 이와 같은 자궁으로서의 방은 <도도한 생활>과 같은 김애란의 이전 소설들에도 자주 출몰했다. 이 방은 상처받은 영혼이 자신을 지켜내는 지상의 최저낙원이다. 일종의 가사상태에 빠져 있는 것인데, 어린 시절에도 그런 적이 있다. 익사당할 뻔했을 때, 그녀는 병만이의 팔뚝을 잡고 겨우 살아난 것이다. “아무도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모른다는 고립감”(296)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병만이의 팔뚝에 “멍”(296)을 남기고 살아난 것이다. 그때와 같은 상황에 처해서야, 그녀는 비로소 병만이의 아픔을 생각한다. 그것은 곧 “불현듯, 내가 살아 있어, 혹은 사는 동안, 어디선가 누군가 몹시 아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나도 모르는 누군가 많이 아팠고, 또 견뎠을 거라고.”(298)와 같은 커다란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선배의 행동이 ‘나’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것처럼, ‘나’ 역시 산다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그만큼의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김애란은 이번 소설에서 매우 근본적이고 종교적인 시각에서 인간의 삶을 바라보았다고 볼 수 있다.
3. 이제는 모자를 벗을 시간
박원의 「내가 사랑하는 모자」에는 여러 개의 모자가 등장한다. 첫 번째가 아버지의 모자다. ‘나’는 여성들에 둘러싸여 기를 못 펴고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늘 “다섯 누나들에게 당한 수모와 자존감의 상처”(92)를 지니고 살아온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이와 관련해 더한 고통을 겪는다. 그는 “자기보다 십오 센티미터나 큰 어머니 앞에서 그리고 다섯 누나들 앞에서 늘 주눅이 들어 있”(95)다. 결국 아버지는 어머니의 해법에 의해 “존재하되, 그 흔적은 집안 어느 구석에도 남아 있지 않아야 했”(95)다. 한 종교 방송국의 라디오 피디였던 아버지는 올곧은 선비형의 인물이다. 회사를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집을 기부하고 퇴직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며, 아들에게 “학자가 되라던”(104) 사람이다. 아버지의 모자는 “무조건 가족을 위해 지나치게 굽신거리거나 비굴하게만은 살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단호한 의지 같은 거”(95)다. 그러한 아버지를 보며 ‘나’는 “부자 아빠를 꿈꾼”(95)다. 모든 가족에게 무시당하는 그런 아버지를 볼 때마다 “오로지 부자 아빠가 되는 것만이 남의 남성을 보장해 줄 유일한 구원의 메시지”(95)라고 생각한 것이다. 대학 4년간 “증권회사 입사 시험에만 몰두”(95)한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어린 시절 들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자이다. 다섯 살쯤 되는 소년이 아빠의 커다란 벙거지 모자를 쓰고, 나중에는 모자에 덧씌워져 질식하여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소년의 모자는 머리에 씌어진 날부터 조금씩 자라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들보다 훨씬 빠르게 자라기 시작”(93)한다. 이 때의 모자는 사회적인 존재로서 행세하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의무나 체면 등을 의미한다. 세 번째는 ‘나’가 근무하는 증권회사의 방이 쓰고 다니는 모자이다. 그녀에게 모자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애교로 사용되는 무기”(91)이다. 그녀는 매사 제멋대로인데다 상관에게만 깍듯하다. 방의 모자는 어린 시절 소년을 짓누르던 누나들이 쓰던 모자와 같은 의미를 형성하고 있다.
네번째는 대학동창 소례가 쓰고 다니던 모자이다. ‘나’는 오랜만에 대학동창회에 나가게 되고, 그는 자신이 짝사랑했던 소례와의 일을 생각한다. “고액의 명품 만년필 같던”(97) 그녀는 “언제나 선망의 대상”(97)이었다. 나는 컨닝 페이퍼를 만들어 주는 등 그녀에게 공을 들여왔는데, 입대를 앞둔 환송회에서까지 그녀는 “잘 다녀오라는 인사 외엔 아무 말도 건네지 않”(97)는다. “그녀가 나를, 나의 페이퍼를, 나의 존재를 무시해왔다는 사실”(98)을 깨달은 ‘나’는 “그녀의 부티 나는 빌로도 모자”(98)에 안주를 토해 버린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그녀 앞에서 ‘나’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그녀는 어느새 이혼녀가 되었고, 예전의 귀족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나’가 “그녀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100)아 한다는 점이다. “대학 때의 순정은 내겐 이미 지나가 버린 감정”이고, 회사에서 엮이게 되는 인간들과의 관계에만도 이미 충분히 피곤하다. 오직 “화폐로 유통할 수 있는 거래”(100)만이 ‘나’의 가슴을 뛰게 한다. ‘나’는 지금 애널리스트 홍과 협력하여 큰 돈을 만지려고 한다. 이 일은 숟가락을 얹으려는 지점장의 협박에서 드러나듯이 합법과 범법의 경계에 놓여 있다. 그녀는 두 번 다시 그녀와 마주치지 않기를 바란다.
다섯 번째 모자는 ‘나’가 늘 꿈꿔오던 모자이다. 그것은 마술쇼에 나오는 만능 모자로서, 무엇이든 감출 수도 있고, 무엇이든 나오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나를 사라지게도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게도 할 수 있는 어떤 모자”(106)이다. 욕망의 대상으로서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소례의 모자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신입사원 수련회에서의 마술쇼가 실패했듯이, 그는 끝내 자신의 진실에서 도피하는데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환송회에서 소례의 눈빛은 “작은 격려가 담긴”(106)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 소설은 “이제야 나는 그때의 이십대가 그립다. 비록 가난하고 서툴렀지만 그 시절의 소례를 다시 한 번쯤은 만나고 싶다. 나는 저장번호 05의 사진 파일을 천천히 불러온다.”(106)로 끝난다. 이것은 소례와의 화해이자 과거와의 화해이고, 부자아빠가 되기 위해 외면해 온 본래적인 자아와의 화해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
4. 다른 모든 연애담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연애담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는 대학입학을 앞둔 안나의 사랑 이야기를 은희경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신선하게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선명한 이분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색채로 보았을 때는 흰색과 푸른 색의 대비이고, 루시아와 준희의 대립이고, 크리스마스와 12월 25일의 대립이다. 일별하여 말하자면 이상과 현실의 대립이라 부를 수 있다.
안나는 눈이 내리지 않는 남쪽 바닷가에서 태어나 산다. 이 곳에 서울에서 나고 자란 루시아가 이사를 온다. 지역과 도시라는 공간적 위계는 둘 사이를 가르는 거대한 전선이다. 작품의 주요 서사는 안나와 루시아가 1976년 겨울, 서울의 유명 입시학원에서 총정리 수업을 받기 위해 상경하면서 이루어진다. 안나는 낡고 커다란 단층 양옥에서 하숙을 하고 루시아는 고모집에 머문다. “어린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고 방학 때마다 고모 집에 다녀갔던 루시아는 서울이 익숙했지만 안나는 아니었”(236)다. 안나는 “서울의 크기”(237)에 적응하지 못한다. 학원 아이들과 쉽게 친해진 루시아와 달리, “남쪽 억양을 감출 수는 없었던 안나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237)는다.
이런 상황에서 안나는 요한을 좋아하게 되는데, 그는 “어떤 남학생보다도, 서양나라에서 온 크리스마스 카드 속의 양치기 소년과 모습이 가장 비슷”(239)하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안나에게 자기만의 세계가 생기는 것과 겹쳐 있는데, “루시아에게 물을 수 없는 말이 자꾸 생겨나는 것”(240)이 그러한 변화의 증거이다. 요한에 대한 안나의 풋풋한 감정을 묘사하는 대목이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두 페이지에 걸쳐(240-241) 안나가 요한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은 것을 열거하고 있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크리스마스가 놓여 있다. 첫 번째 문장은 “열두 살, 크리스마스 정오 무렵에 안나는 루시아를 처음 만났다.”(232)이다. 핵심적인 사건 역시 크리스마스에 이루어진다. 그 크리스마스는 “십대의 마지막 크리스마스였고, 스무 살부터는 그들에게도 다른 어른들처럼 바쁘고 따분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246)이기 때문이다.
안나-요한-루시아가 함께 만나기로 한 1976년 크리스마스 날, 루시아는 경찰인 고모부의 수갑에 장난삼아 손목을 집어넣었다가 풀지 못해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못한다. 실제 연인은 요한과 루시아지만, 이로 인해 안나와 요한이 데이트를 하게 된다. 이 날은 화이트크리스마스여서 안나는 처음으로 눈을 보게 된다. “열아홉의 요안나는 요한과 함께 크리스마스이브의 눈 오는 거리를 걷고 있”(249)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 안나는 너무나 심각한 요의를 느껴 정신없이 도시의 밤길을 헤매기만 한다. 그는 그토록 사랑하던 요한을 내버려 두고 오줌 눌 곳만 찾아 헤맨 것인데, 화장실도 아닌 곳에서 요의를 해결한다. 그 때 “뜨거운 오줌이 찐득한 검은 액체처럼 천천히 발밑에 고이기 시작”(254)한다. 이 ‘찐득한 검은 액체’ 역시 고향의 바닷빛이자 지영 언니의 그림 색에 이어지는 푸른 색에 해당한다. 이 액체에 대해 안나는 “세실리아 언니가 몰래 낳아서 버리고 도망쳐버렸던 태아가 모습을 갖고 있다면 그런 모습일 것 같았다. 비밀과 더러움, 죄와 수치와 선택되지 못한 존재의 완결된 고독을 담고”(254) 생각한다. 그것은 이 푸른색이 지닌 의미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눈으로 대표되는 흰색이 꿈과 이상을 의미한다면, 푸른 색은 현실과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욕망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흰색은 천상의 색으로서 상승지향의 상상력을, 푸른 색은 지상의 색으로서 하강지향의 상상력을 드러낸다. 이혼녀로 힘든 세월을 견디던 지영 언니의 그림은 주로 ‘푸른 색’이다. 32년 뒤의 봄 안나는 유럽의 한 미술관에서 지영 언니의 카드에 있던 그림을 본다. 지영 언니가 프랑스로 보내려던 카드는 사실 전남편이 보낸 카드를 그대로 보낸 것이었다. 거기에는 “내 꿈은 당신의 칠십 세 생일에 축하편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의 품에서 구십사 세에 죽고 싶다.”(253)는 문구가 써 있다. 지영은 그때 만약 코코슈카가 「바람의 신부」에 붙인 글귀, “이 지상에서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비바람치는 밤하늘을 떠올리더라도 우리는 영원히 함께 있어야 한다.”(253)는 글을 지영 언니의 전남편이 써보냈다면, 지영 언니는 카드를 돌려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서로를 향한 간절한 마음이 끝내 소통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32년이 지난 지금 안나가 “고독한 사람에 대해서 사람들은 늘 오해한다. 그들은 강하지도 않고 메마르지도 않았으며 혼자 있기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해도 사람은 늘 자기만의 고독을 갖고 있다.”(253)며 ‘오해’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이 작품에서 말하는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란 개개 인간이 지닌 단단한 자아의 벽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욕망에 대한 서글프지만 싱싱한 메타포라 할 수 있다.
이경재∙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현대소설의 구조와 미학>(공저). <어문학 연구의 넓이와 깊이>(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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