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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9/가을) <흐름․진단/시> 그리운 그대, 그리고 그때/진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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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진단/시|
그리운 그대, 그리고 그때
진순애|문학평론가
∙김수열, 「대맹일 써사 헌다」 전문(≪리토피아≫, 2009. 여름호)
∙채풍묵, 「시루떡」 전문(≪문학 선』, 2009. 여름호)
∙고운기, 「별아, 내 가슴에」 전문(≪시작≫, 2009. 여름호)
∙설태수, 「그대만한 창문이」 전문(≪시와세계≫, 2009. 여름호)
∙신용묵, 「타자의 시간」(≪시안≫, 2009. 여름호)
∙심보선, 「호시절」(≪시인세계≫, 2009. 여름호)
그리운 그대는 그리운 그때의 일부이고 그리운 그때 역시 그리운 그대의 일부이나, 그리운 그대가 있어서 그리운 그때 또한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리운 그대는 없는 채 그리운 그때만 있을 수도 있겠으나, 이때에도 그리운 그대가 없을 수는 없다. 이때의 그리운 그대는 ‘지금의 나’의 타자가 돼버린 또 다른 ‘나’, 곧 지나간 그래서 잃어버린 ‘과거의 나’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리운 그때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운 그대를 은유하는 그리운 그대의 또 하나의 모습인 셈이다. 결국 그리운 그대와 그때란 우리의 지난날을 은유하는 셈인데, 문제는 우리가 그리움으로 지난날을 반추하는 까닭이 무엇인가에 있다.
그리움이란 그 그리운 것이 지금·여기에 부재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며, 부재중이란 잃어버려서 혹은 상실해서 그리고 이별하여 지금은 결핍 상태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곧 그리움이란 부재중으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하여 선별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마음의 상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운 그대와 그때를 향한 시는 지금은 부재중이어서 그리운 그것에 대한 시인의 지향태이자 합일의 욕구를 은유하는 셈이다. 궁극적으로 그리움이란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소멸된 것이 아니라 분리되어서 부재중으로 존재하는 것을 향한 지향태이자 합일의 욕구인 것이다.
그리운 것을 향한 욕구는 반성적 명제와 함께 치유제를 대신하기도 하는 까닭에 상처의 탑 속에서 사는 현대인의 생명의 샘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그리움의 시가 지닌 동시대적 의의가 남다르다 하겠다. 개인은 개인적이자 역사적 존재이므로 그러하다. 그러므로 그리운 그대와 그때를 향한 시의 풍경은 현대 시인의 내면 풍경이자 현대적 풍경을 지시하는 말인 것이다. 통일된 세계에서 분리되고 단절된 시인은 그리운 그대와 그때를 노래하여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며 합일의 꿈을 실현한다.
큰 공뷔 허영 높은 책상 받아 아진 사름덜만 대맹일 쓰는 줄 알암시냐
사름이나 괴기나 매혼가지여 대맹일 써사 헌다
생선국도 대맹이로 딸려사 베지근 허곡 자리냉국도 대맹일 써사 허는 거여
자리대맹일 그창 그걸 돌방애에 놩 닥닥닥닥 좀질게 모상
콥대사니에 새우리에 조선된장에 조물조물 버무려사
오목가심 써넝헌 냉국이 되는 벱이라, 알암시냐
허기사 자리대맹이만도 못헌 대맹이들이 수두룩인디 고랑 무시것 헐꺼라
앗아불라!
―김수열, 「대맹일 써사 헌다」 전문(≪리토피아≫, 2009. 여름호)
독백에서 비롯된다는 서정시에 대한 정의를 따른다면, 위 시는 독백이면서도 그 독백이 설정된 청자를 향하고 있어서 대화체적 독백에 속한다. 그런데 그 대화체가 아이러니하게도 청자인 독자와의 소통을 오히려 단절한 독백체여서 현대 서정시의 전위성을 은유한다. 물론 특정한 청자와의 소통은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일반적 청자인 독자와의 소통은 전위적으로 차단되어 있어서 현대 서정시의 한 면모를 나타낸다. 특히 이와 같은 차단이 첨단적 모티프 내지는 첨단적 방법에서 비롯된 차단이 아니라는 데 그 의의가 돋보인다. 방언이 방법적 전위로 작용한 것이다. 현대의 표준어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어서 오히려 표준어에 익숙해진 그리고 현대의 첨단문화에 익숙해진 독자와의 소통을 단절한 역설적 전위이다. 오래되어 잃어버린 세월에서 비롯된 단절의 두께가 방법적 전위가 된 현대라는 현대의 아이러니를 은유하고 있다. 이제 전위는 그리운 그때의 샘에 있는 셈이며, 전위가 된 서정이자 서정이 된 전위라는 현대의 아이러니이다.
방법적으로 전위인 까닭에 시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굳이 해명해야 할 까닭은 없을 것이다. 위 시의 포인트는 의미 전달에 있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그럼에도 미루어 짐작하건데 ‘대맹이’를 써서 무슨 ‘냉국’을 만드는 내용으로 이해되는데, 사전에 의하면 ‘대맹이’는 ‘뱀’을 일컫는 경상남도 남해지역의 방언이라고 한다. 뱀을 써서 만드는 음식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있다면 평범한 음식은 아닐 것으로 짐작은 된다. 더하여 '대맹이'의 진위를 잘 구별해야 한다는 전언 속에 궁극적으로 김수열이 의도한 전언이 은폐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폐결핵 악화로 삶을 마감한 작가는
사망 열하루 전 편지를 보냈다
나이 서른이었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내가 돈 백 원을 만들어볼 작정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돈, 돈, 슬픈 일이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3월 18일 김유정으로부터
봄봄 동백꽃 금 따는 콩밭
고향인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작가는 콩설기 열두 개를 쪄냈다
그러나 그 시루떡은
닭 서른 마리가 되지 못했다
나이 서른이었다
―채풍묵, 「시루떡」 전문(≪문학 선』, 2009. 여름호)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는 편지, 봄, 동백꽃, 고향, 실레마을, 콩설기, 김유정 등이 있고, 얻은 것은 돈이라고 위 시는 묵언으로 말하고 있다. 때문에 잃어버린 것을 환기하는 일, 그 자체가 서정으로 작용하는 현대의 쓸쓸한 풍경을 확인하게 한다. “필승아/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내가 돈 백 원을 만들어볼 작정이다/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돈, 돈, 슬픈 일이다/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고 김유정이 보낸 편지는 내용 그대로가 탁월한 서정적 모티프가 되어 우리를 그의 세계로 유인하고 있다.
그리운 것은 시루떡이요 김유정이며 실레마을이고 편지다. 닭 서른 마리는 희생물이요 돈은 폐결핵이며 현실이다. 더불어 우리는 이제 ‘편지를 쓰지’ 않고 ‘메일을 보낸다.’ ‘메일’도 편지고 ‘편지’도 편지나, 우리는 ‘편지’와 ‘메일’을 구분하여 칭한다. 지금은 편지 시대가 아니라 메일, 곧 이메일 시대인 까닭이다. 그리운 그대는 그리운 그때를 동반하는 것이 상례이나, 위 시에서 우리는 그리운 그대와 상처가 있어서 잊고 싶은 그때가 결합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잊고 싶은 그때는 지금의 현실이라는 곧 '지금'이 된 그때임을 반추하게도 된다. 시는 ‘잊고 싶은 그때’와 다르지 않은 지금이 그리운 그대를 향한 그리움을 부각시키는 아이러니한 시대임을 지시하고 있다.
1.
대한통운 벌교지점장 아들이 그리는 그림은 우리와 차원이 달랐다
해수욕장의 비치파라솔 따위야 우리도 알았다
그는 바다 저 편에 빨간 깃발을 그려 넣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이 깃발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우리 가운데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지점장 아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위험 표지판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2.
벌교등기소 소장 딸이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은 우리와 차원이 달랐다
꼿꼿한 자세를 수업 시간 내내 한 번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가끔 어머니가 찾아와 선생님을 만나고 가기도 했다
첫 월말고사를 치르고 우리 반 일등은 소장 딸이었는데
선생님은 다음 달에 전교 일등까지 하면 한턱낸다고 하였다
우리는 환성을 질렀지만 다음 달 일등은 하필 가난한 집의 내가 되고 말았다
3.
지점장 아들은 2학년이 되기 전에 전근 가는 아버지를 따라 전학을 갔고
소장 딸도 아버지를 따라 3학년도 마치기 전에 떠났다
우리들의 차원은 급격히 추락하여 더 이상 높아지지 않았다
4.
5학년 실과 책 표지에는 5학년짜리 같은 계집애가
한강 인도교 육중한 아치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내 가슴에 박힌 별들은 지금 어디에서 빛나고 있는지 말해 다오
다리를 지나노라면 나는 언제나 5학년이다, 오십 줄의 5학년이 아니라
실과 책의 표지 속으로 지점장 아들이 찾아오고
어느새 소장 딸의 안부를 듣는다
―고운기, 「별아, 내 가슴에」 전문(≪시작≫, 2009. 여름호)
대한통운 벌교지점장 아들과 벌교등기소 소장 딸이 있어서 차원 높았던 초등학교 시절을 그리며 반추하는 위 시는, 비록 그 아들과 딸이 있어서 '인위적으로 높아진 차원'이었을지라도,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다시 올 수 없는 순수한 시절의 보편적 차원이 ‘가슴의 별’이 되어 고운기의 상처를 치유하는 그리운 그때를 그리고 있다. 세월 속으로 가버려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의 차원은 그리움의 별이 되어 생명과 치유의 샘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그것은 고운기만의 별을 넘어서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수 십 년이 넘은 우리 모두의 별이 되어 살아있는 그리움의 샘인 것이다. 비록 고운기와 같은 벌교가 고향이 아니어도 서울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여타 모든 지역이 벌교와 다르지 않은 우리들의 고향으로 자리한 까닭에 그러하며, 이는 고향을 상실한 우리 모두의 고향의 모습인 까닭에 그러하다. 그리운 그대는 그리운 그때의 별로 살아서 시대를 건너는 우리들의 외로움에 동반자로 함께하는 것이다.
찻집에 가면 창가 좌석이 제일 인기가 있다.
큰 통유리 옆에서 얘기를 나누고 싶은가 보다.
그런데 창밖을 골똘히 내다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밖이 훤히 보이는 공간을 곁에 두고 싶은 것이다.
늘 명쾌하지 못한 마음.
끈적거리는 뭔가에 붙들려 있는 듯한 기분.
내일 일을 확연하게 알 수 없고
마주 앉은 사람의 속마음도 알 수 없으며
내마음 어떻게 흘러갈지
좀처럼 예견할 수 없는 이 세상을
숨 쉬는 일상이니.
그나마 창가에 앉으면
밝음에 노출된 몸을 마음 또한 닮아갈 것 같아
창가로 창가로 몸은 이끌리는 것이다.
그런데, 탁 트인 창가보다
그대 쪽으로 몸이 거듭 숙여지는 것을 보면
귀 기울이는 그대만한 창문이
이 세상에는 없는 모양이다.
바람 거센 날은 마음의 물결이 흔들리기도 하여
그 마음 종잡을 수 없다 해도.
그 종착점을 알 수 없다 해도.
―설태수, 「그대만한 창문이」 전문(≪시와세계≫, 2009. 여름호)
그리운 그대는 “늘 명쾌하지 못한 마음./끈적거리는 뭔가에 붙들려 있는 듯한 기분./내일 일을 확연하게 알 수 없고/마주 앉은 사람의 속마음도 알 수 없으며/내마음 어떻게 흘러갈지/좀처럼 예견할 수 없는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독려해 주는 생명의 샘이자 치유의 샘이다. 찻집의 제일 인기 있는 창가 좌석에 앉아서도 창밖은 내다보지 않고, ‘그대 쪽으로 몸이 숙여지는 것’은 ‘그대만한 창문’이 이 세상에는 없는 까닭인 것이다.
이때의 ‘그대’는 ‘마주 앉은 그대’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마주 앉은 사람의 속마음도 알 수 없는’ 일상에 지쳐서 찻집의 제일 인기 있는 창가 좌석에 ‘홀로’ 앉아서 마음 속의 그대를 ‘그대만한 창문’에 그리며 독려의 샘에 빠진 설태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리운 그대’일 수도 있을 것이나 보다 합당한 사실은 그리운 그대가 그대만한 창문으로 곁에 있는 것이며, 찻집의 창가에서 설태수는 삶의 상처를 치유하는 기회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그리운 그대, 곧 부재중으로 존재하는 그대가 ‘그대만한 창문’이 되어 찻집에 있으므로 설태수의 외로움이 외로움을 넘어선다.
그곳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
그리고 봄에 대한 의심
그곳에 별이 빛난다는 소식
그리고 밤에 대한 의심
당신의 소식은 늘 당신보다 앞서 있다 나보다 앞서 있는 나의 의심처럼
나는 당신 소식을 봄밤에 들었다
그곳에서 귀는 뜨거울 때마다 붉어지는 장미의 한 잎이라
깨물면 저녁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지
나는 호수로 가 당신의 귀를 만진다 당신의 입술을 잘라붙인 물수제비들
소식들의 수평이 구멍을 열면
장미는 빛깔로만 피었다 지지
마침내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
꽃들의 형장에서 소식은 온다 당신의 귀와 당신의 입 사이에서 꽃들이 목을 잃고 쓰러질 때 꽃잎처럼 호수는 폭발하고 꽃잎처럼 입을 열고 귀를 열고 꽃잎처럼 온몸 구멍을 모두 열면 다시 온몸의 구멍마다 꽃잎처럼 의심이 피어나는 봄밤의 축제로부터
피 토한 흔적처럼 장미꽃을 무는 저녁마다
나는 밖을 잠글 수 없어 안을 잠그고 잔다
모든 생활은 드디어 반복되고
모든 사랑은 드디어 중첩된다
―신용묵, 「타자의 시간」(≪시안≫, 2009. 여름호)
타자의 시간이라는 제목처럼 「타자의 시간」은 타자의 시간이 돼버린 시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누가 타자이며 무엇이 타자인가? “그곳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그리고 봄에 대한 의심//그곳에 별이 빛난다는 소식/그리고 밤에 대한 의심” 앞에서 ‘의심으로 오는 봄, 의심으로 빛나는 별’을 타자의 시간의 은유로 읽을 수 있다. 타자가 돼버린 ‘우주 혹은 자연’이라는 지시는 새로운 지적이 아니듯이, “당신의 소식은 늘 당신보다 앞서 있다 나보다 앞서 있는 나의 의심처럼/나는 당신 소식을 봄밤에 들었다”에서 타자의 시간은 사실적 봄이거나 별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봄밤과 별과 같은 ‘당신 내지는 당신의 소식’은 “나보다 앞서 있는 나의 의심처럼” 의심 같으나 의심 아닌 사실이었다는 지적에 있다.
‘장미가 빛깔로만 피었다 지는 것’처럼 비록 의심 앞에서도 봄은 다시 오고 별은 다시 빛날 것이나, ‘마침내 돌아오지 않겠다’는 ‘당신 그리고 당신의 그 말’은 의심이 아니라 사실이 된 타자이자 타자의 시간이라는 지적이다. 때문에 ‘당신’과 일체였던 신용묵의 시간도 타자의 시간으로 남아, ‘밖을 잠글 수 없어 안을 잠그며, 반복되는 생활, 중첩되는 사랑’ 속에 머무는 시간이다. 이제 그리운 그대와 그리운 그때는 타자이자 타자의 시간이 되어서 현재를 반추하는 거울로 작용한다.
그때는 좋았다
모두들 가난하게 태어났으나
사람들의 말 하나 하나가
풍요로운 국부國富를 이루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무엇이든 아무렇게나 말할 권리를 뜻했다
그때는 좋았다
사소한 감탄에도 은빛 구두점이 찍혔고
엉터리 비유도 운율의 비단옷을 걸쳤다
오로지 말과 말로 빚은 무수하고 무구한 위대함들
난쟁이의 호기심처럼 반짝이는 별빛
왕관인 척 둥글게 잠든 고양이
희미한 웃음의 분명한 의미
어렴풋한 생각의 짙은 향기
그때는 좋았다
격렬한 낮은 기어이 평화로운 밤으로 이어졌고
산산이 부서진 미래의 조각들이
오늘의 탑을 높이 높이 쌓아 올렸다
그때는 좋았다
잠이 든다는 것은 정말이지
사람이 사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사람이 사람의 여린 눈꺼풀을
고이 감겨준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심보선, 「호시절」(≪시인세계≫, 2009. 여름호)
과거는 그 시절이 과거가 되어서야 ‘호시절’로 판명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곧 그 시절이 과거가 된 현 시점에서 현재의 양태가 어떠하느냐에 따라서 그 시절은 호시절로 남거나 오히려 ‘악시절’로 남거나 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그러할 것이다. 심보선의 「호시절」은 심보선 개인의 호시절을 은유하기도 하겠고, 사회적, 시대적, 역사적 호시절을 은유하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심보선의 「호시절」에는 지금의 나의 타자인 과거의 내가 있는 그리운 그때로 보이지는 않는다. 때문에 심보선의 「호시절」은 그리운 그대가 있는 것은 틀림없으나, 그리운 그대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사회적 혹은 역사적 호시절을 은유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호시절이 사실로 호시절이어서 호시절이거나 사실로 호시절은 아니었으나 호시절로 기억되는 호시절일 수도 있을 것이나, 중요한 것은 그 시절이 그리운 그때라는 사실이다. 그리운 그때인 호시절이 지금의 어둠을 건너는 다리로 작용한다는 사실인 것이다.
곧 ‘그리운 그대와 그리운 그때’는 과거이자 호시절이며 창문·시루떡·봄·별·편지·동백꽃·고향·콩설기·김유정이자 동반자이며 생명의 샘으로 현대인의 가슴 속에 머무는 타자이자 타자의 시간이다. 이와 같은 타자 내지 타자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우리의 개인적이며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치유제라는 데 ‘그리운 그대와 그때’를 향한 시의 동시대적 의의의 깊이가 깊다.
진순애∙전남 고흥 출생. 1993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저서 <한국 현대시의 모더니티>, <아니무스를 위한 변명> 외. 성균관대학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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