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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10년/봄) 특집-1960년 4월, 젊은 그대에게/고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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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03회 작성일 10-08-1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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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의 비평, 4.19를 넘어서는 혹은 갇혀 있는
―김현 선생께
고명철|문학평론가



선생님께,
간혹, 어떤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서생으로서 가진 습관 중 하나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의 이름을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죽 훑어보곤 하는 겁니다. 그 때마다 눈에 밟히는 책이 있는데, 선생님이 세상을 뜬 후 이듬해에 발간된 '김현전집'(1991)입니다. '김현전집'을 구입할 목돈이 없던 학창 시절에 선생님의 비평집 낱권을 사보면서, 문학비평이 무엇인지, 문학비평은 창작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 비평가는 어떤 존재인지, 비평적 글쓰기의 매혹은 무엇인지 등을 시나브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국문학과 4년을 다니는 동안 숱한 문학이론서와 비평집, 그리고 시와 소설을 탐식하면서, ‘문학비평가 김현’이란 존재를 에워싸고 있는 문학적 아우라가 지핀, 문학을 향한 신열身熱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습니다. 비평가 김현은 비평가 지망생인 제게 비평의 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흔히들 선생님의 비평을 ‘공감의 비평’이라고 불렀습니다. 비평의 대상을 향해 보듬어 감싸 안는 따뜻한 비평, 하여 촘촘한 텍스트의 틈 새로 절로 스멀스멀 텍스트의 오묘한 비의성秘義性을 발산하도록 하고, 그 비의성으로부터 인간의 삶의 저 깊숙한 근원에 자리하고 있는 그 무엇의 진실을 궁리하고, 비루한 일상 너머의 또 다른 삶을 꿈꾸도록 하였습니다. 논리적이되, 논리의 굴레에 구속되지 않으면서, 감각적이되, 감각의 순간에 중독되지 않는 비평의 언어를 선생님은 연금술사처럼 자유자재로 부렸습니다. 
선생님의 비평에 대한 본격적 관심은 제가 대학원에 진학하여 1960년대 이후 비평사를 공부하게 되면서였습니다. 선생님의 비평집 낱권을 마구잡이로 읽다가, 대학원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비평사 공부를 하게 되면서부터, 선생님을 비롯한 일군의 젊은 비평가들이 1960년대에 등장하게 되었고, 그들을 이른바 4.19세대로 범주화하여 그 비평 세계를 파악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는 4.19세대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부터 비평이 작품만을 대상으로 분석하여 문학적 의미를 해석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평도 사람이 하는 일이듯, 비평가가 역사 속에 놓인 지반과 무관할 수 없으며, 특정한 역사 국면과 부딪친 비평가의 존재는 해당 역사의 자장磁場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비평가로서의 비평 행위의 합목적성을 쟁취한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과 함께 범주화된 4.19세대 비평가들은 4.19혁명의 역사성을 괄호 안에 넣고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특질을 지닌 셈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세대들을 역사적으로 규정한 ‘4.19세대’라는 호칭은, 한편으로는 역사에 대한 무한한 자긍심을 획득하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의 틀에 규정되어지고 구속된 것을 동시에 포괄합니다. 
바로 여기서 선생님의 비평에 대한 이해와 함께 비판적 문제제기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선생님의 경우 스스로 4.19세대라는 자부심을 갖고, 4.19세대의 책무와 역할에 대해 다른 동료들보다 뚜렷한 자의식을 지니고 있던 것을 상기해볼 때, 4.19 50주년을 맞이한 2010년의 시점에서 선생님의 비평과 비판적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그리 소모적인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4.19는 한국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사의 진전에서 중요한 몫을 다 하고 있으며, 여전히 미완의 혁명으로서 현재 진행중에 있다는 것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 한, 4.19를 기념한다는 게 과거로 회귀하는 게 아닌, 미완의 과제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 문제의식을 정교하게 다듬어 현실의 구체성을 확보하면서 미래의 새 지평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서 선생님의 비평과 비판적 대화를 나누는 일은, 4.19세대 및 4.19와 미래적 관계를 새롭게 궁리하는 것과 전혀 무관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도 4.19세대로서 선생님의 비평적 자의식이 충만해 있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목도할 때마다 ‘결별의 수사’에 대해 생각해보곤 합니다.

태초와 같은 어둠 속에 우리는 서 있다. 그 숱한 言語의 亂舞 속에서 우리의 全身은 여기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다.
이 천년을 갈 것 같은 어두움 그 속에서 우리는 神이 느낀 권태를 반추하며 여기 이렇게 서 있다. 참 오랜 歲月을 끈덕진 인내로 이 어두움을 감내하여 우리 여기 서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안다. 이 어두움이 神의 人間創造와 同時에 除去된 것처럼 우리들 주변에서도 새로운 언어의 창조로 除去되어야 함을 이제 우리는 안다. 유리아의 얼굴을 발견한 싼타 마리아의 일군이 우리는 기꺼이 된다. 얼어붙은 權威와 구역질나는 모든 話法을 우리는 저주한다. 뼈를 가는 어둠이 없었던 모든 자들의 안이함에서 우리는 기꺼히 脫出한다. 썩은 유리아의 얼굴만을 애완물처럼 매만지고 있는, 이카루스의 어쩌면 절망적인 脫出이 없는 모든 자의 언어와 우리는 결별한다. 새로운 유리아의 얼굴을 발견함이 없는 모든 者와 우리는 결별한다.(「≪산문시대≫ 창간선언」 중에서, ≪산문시대≫ 창간호, 1962. 6)

5.16군사쿠데타(1961) 이듬해 선생님은 4.19세대의 자의식을 표방한 동인지 ≪산문시대≫의 ‘창간선언’을 작성하여 발표했습니다. 후대의 연구자들은 이 창간 선언문을 샅샅이 분석하면서 김현 비평가는 물론, ‘산문시대’ 동인의 문학 세계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한 번, 창간 선언문을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역사감각이 유려한 문체로써 패기 있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특히 “모든 자와 우리는 결별한다.”라는 결연한 의지에서는 젊은 특유의 도전 정신과 새로움을 향한 전위성에 모골이 송연해지곤 합니다. 무엇이 그토록 결연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결별을 선언하도록 부추겼는지요. 이 결별의 선언이야말로 김현 비평의 아킬레스건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선생님은 「한국비평의 가능성」(≪68문학≫ 창간호, 1969. 1)에서 선생님 이전의 선배 세대 비평가들을 가령 ‘55년대 비평가들’이라고 호명하고, 선생님과 동세대의 비평가들을 ‘65년대 비평가들’로 구별 짓기를 시도한 바 있습니다. 물론 구별 짓기의 초점은 ‘55년대 비평가들’에 대한 ‘65년대 비평가들’의 인정투쟁이랄까요. 그 핵심은 “이상주의에의 고취를 캣취 프레이즈로 내걸고, <증언>, <행동> 등의 어휘들로 자신들의 평문을 장식했던 55년대 비평가들이 자신의 문제해결의 과정에서 제기된 숱한 난관들을 파헤치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방기한 데 대한 비난이다.”라는 부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말하자면, 선생님 세대의 비평가들은 선배 세대의 비평가들이 이상주의에 머물렀고, 한국전쟁 이후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극복하는 비평적 노력을 치열히 하지 못했다는 것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어떤 시기든지, 후배 세대가 문학사적 인정투쟁의 과정에서 선배 세대의 문학을 넘어서기 위해 과감히 비판하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인정투쟁의 욕망의 과잉된 나머지 시쳇말로 도매금으로 과거 혹은 선배 세대의 성취를 온통 부정하는 기획, 곧 ‘부정의 딱지’ 붙이기를 통해 후배 세대가 인정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지극히 반문학적․반비평적 행위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선생님은 ‘55년대 비평가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하는 것보다 좀 성급히 그들의 비평을 배제하는 기획을 주도면밀히 전개한 것은 아닌지요. 이러한 문제제기를 하는 데에는, ‘55년대 비평가들’에 의해 촉발된 문학의 순수/참여 논쟁을, 선생님은 논의할 가치도 없는 ‘가짜 논쟁’에 불과하다며, 이 논쟁의 가치를 폄훼하였거든요. 선생님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바 아니나, 분명한 것은 이 논쟁 자체가 한국문학사에서 백해무익한 소모적 논쟁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문학의 현실 참여 문제에 대해 1960년대 내내 설왕설래한 것은, 좁게는 문학에 국한된 일이지만, 넓게는 한국전쟁 이후 현실에서 팽배해진 레드콤플렉스를 논리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면서, 문학의 정치성이란 문제를 어떠한 각도에서 정치精緻하게 논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확산시킨 비평사적 의미를 갖습니다. 이어령과 김수영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에서 문학제도의 문제로까지 그 문제의식이 심화되었으며, 논쟁의 불씨가 1970년대 리얼리즘 논쟁으로 번져감으로써 현재 문학의 정치성에 대한 활발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는 비평사의 맥락 자체를 결코 소홀히 간주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이 논쟁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었다는 것은, 논쟁 밖의 그 무엇, 즉 4.19세대가 자칫 4.19의 역사적 문제의식을 전후세대의 문제의식에 포섭됨으로써 4.19세대의 역사적 존재감이 무화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요. 저는 이와 같은 자기세대의 역사감각에 충실하면서도 그 역사감각을 특권화하려 한 4.19비평가들의 무의식을 문득 마주치곤 합니다. 가령, 선생님의 비평과 상보적 관계를 형성하는 ‘65년대 비평가’인 염무웅은 4.19의 민족적․민중적 문제의식을 전유한 ‘창작과비평’ 에콜의 민족문학의 고고학적 연원으로 임화의 민족문학에 그 뿌리를 대고 있지, 바로 앞 세대 비평가 최일수와 정태용의 민족문학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음을 제게 직접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고명철, 「염무웅 비평의 매혹, 이론과 현실의 밀착」, '칼날 위에 서다', 실천문학사, 2005). 
이렇게 선생님 세대의 비평가들은 4.19의 역사감각과 문화감각을 자신들 세대의 독특한 것으로 전유하려고 한 나머지 앞뒤 세대들과 그 소중한 것들을 공유하는 데는 대단히 인색하지 않았나 합니다. 
한국문학사에서 4.19세대 비평가들에게 빚진 것은 많습니다. 비평적 에콜의 출현과 그로 인한 미학적 상보관계, 정치권력과 타협하지 않은 문학의 정치성, 비평의 충만된 자의식 등은 4.19세대 비평가들의 성취입니다. 하지만, 선생님도 그렇듯 4.19세대 비평가의 대부분이 외국문학도로서 갖는 한국문화에 대한 우월감, 그래서 상대적으로 한국문화(학)의 왜소성에 대한 콤플렉스는 정당하게 제기되어야 할 문제로 보입니다. 선생님은 「한 외국문학도의 고백」('김현전집' 3권)에서 “나는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라 프랑스 문학을 피부로 느낀다고 믿은 정신의 불구자였다. 정신의 불구자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고 고백한바, 여기에는 선배 세대 비평가들의 정신적 자산인 일제 식민지 시대의 문학을 포함하여, 근대 이전의 문학 유산 전체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근대문학으로서 외국문학의 매혹에 흠뻑 젖은 선생님에게 타율적 근대에 기반한 문학과 근대 이전의 문학은 ‘태초와 같은 어둠’에 갇힌 ‘정신의 불구자’에 불과할 따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점을 선생님의 비평이 갖는 새것콤플렉스의 문제와 결부지어봅니다. 선생님 비평에서 제기되는 새것콤플렉스는 서구문학 편향에서만 그 원인을 규명할 게 아니라, 4.19세대 비평가들이 왕성히 활동하기 시작한 1960년대 중반 이후 한국학 전반에 대한 학문적 토양이 미처 정립되지 못한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선생님, 
앞서 잠깐 말씀드렸듯이, 올해는 4.19 5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입니다. 미완의 혁명과 현재 진행 중에 있는 4.19를 과거의 역사적 기념비적 사건으로 기억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살아 숨쉬는 4.19로 만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4.19의 역사적 가치를 숭배하는 게 아니라, 4.19의 영예에 스스로 갇히는 게 아니라, 4.19로 촉발된 민주회복과 분단극복의 과제를 지금, 이곳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창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우리가 선생님의 비평을 기리는 비평이 아닌, 선생님의 비평이 갖는 문제의식을 예리하게 다듬되, 끊임없는 비판적 대화의 과정 속에서 갱신하는 비평의 길을 걸어갔으면 마음 간절합니다. 
끝으로, 제 학창 시절 비평을 공부하는 노트에 적혀 있는 선생님의 문장을 몇 개 적어봅니다. 

“문학은 이제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문학은 억압 없는 쾌락을 우리에게 느끼게 해준다. 그러면서 그것은 그것을 읽는 자에게 반성을 강요하여, 인간을 억압하는 것과 싸울 것을 요구한다.”

“아무리 불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꿈이 있을 때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 거리를 취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반성할 수 있다. 꿈이 없을 때, 인간은 자신에 대해 거리를 가질 수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에 갇혀버려 자신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행복스럽게 살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스럽게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행복은 불가능한 꿈이다.”

고명철∙1970년 제주 출생. 1998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 저서로는 '뼈꽃이 피다', '순간, 시마詩魔에 들리다', '칼날 위에 서다', '논쟁, 비평의 응전', '비평의 잉걸불', '‘쓰다’의 정치학', 공저로는 '제주인의 혼불', '탈식민주의를 넘어서',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 등 다수. 고석규비평문학상 수상. 성균문학상 수상.




고명철∙1970년 제주 출생. 1998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 저서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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