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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10년/봄) 특집-1960년 4월, 젊은 그대에게/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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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詩解題
―김수영 선생께
김안|시인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
첨단의 노래가 넘쳐납니다. 첨단의 노래가 넘쳐나니 이제 첨단은 없습니다. 겉으로 새로운 것은 어느 시대이건 있어왔습니다. 나는 차라리 낡고 오래되고 싶을 뿐이고, 황량할 뿐입니다. 스스로 더 이상 노래할 것이 없어졌음을 느끼는 나날들입니다. 노래할 것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불화가 있지 않다는 것. 이는 리얼리스트의 피부병처럼 나약한 도시거주자가 걸릴 수밖에 없는 첨단의 괴질입니다.
지금 나는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편지, 라뇨, 당신한테, 그해 4월을 기념한 편지, 라뇨, 나는 실은 우스울 뿐입니다. 이제 이 세상은 혁명이 일어나기엔 너무나 많은 첨단이 넘쳐납니다. 혁명은 낭만이 되고, 낭만은 3류 로맨틱 막장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코트 깃, 입술 사이에서 타오르는 담뱃불. 어쩌면 이것도 낭만일 뿐입니다. 예, 하지만 나무는 흉하지 않은 가지를 뻗치고 햇빛은 정수리로 박혀 떨어지고 머리칼은 꾸불텅 자라나고, 한겨울에도 여자들의 치마는 짧아집니다. 치마가 짧아지는 이유가 세상 모든 정부의 지지율을 좌지우지하는 이 첨단의 시대 속에 과연 그나마의 첨단의 시는 어디 있습니까? 그나마, 그나마, 그나마, 라고 되뇌다 보면 세상은 풍요로울까요? 이 말 속에 들어 있는 모든 강압과 폭력의 희생들. 포식자가 되는 법만을 배운 사람들은 늘 말합니다. 그나마, 그나마. 그렇게 되뇌면 이 방은 방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 방은 사방이 천장일 따름입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나는 차라리, “아우, 캬아악, 어흥” 소리 내며 동물의 입을 흉내 냅니다. 이 밤 나는 천장에 누워 펜을 굴리는 지능 있는 동물입니다.
나는 정지의 미에 너무나 등한하였다
나는 최근에야 인간과 짐승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단 하나의 차이라면 인간은 복제품이고 짐승은 진품이라는 것. 복제품인 인간이 진품인 짐승을 복제하고, 복제품인 인간이 복제품인 인간을 복제하는 이 첨단의 시대 앞에서 모든 생명은 하찮아질 뿐입니다. 결국에 나는 이 첨단의 시대에 적응할 수 없고, 온종일 머리를 싸매고 기억의 시제時制를 바꿀 뿐입니다. 시인의 일이라는 게 이것 외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실, 인간이 꿈꾸는 희망의 과녁은 미래가 아니라 시원始原에 가닿아 있었습니다.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시원始原에 말입니다.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시원始原은 환幻이고, 허구이고, 그리하여 희망은 가능성이라는 탈을 쓴 망령입니다. 한때 그것은 유럽을 떠돌던 유령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희망의 패권은 이제 누구에게 있습니까. 국가와 민족의 미래, 중흥이 우리를 정신병에 들게 하고, 브로드스키는 정신병은 국가의 재산이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그럼에도, 그럼에도, 라고 우리는 되뇌고, 오늘 저녁 고깃국을 먹고 배불러 하며 만족할 뿐입니다. 레온 골럽의 그림을 한 번 보고, 고기를 씹고, 또 한 번 보고 고기를 씹습니다.
레온 골럽, <심문‧Ⅲ>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고기를 씹습니다.
미래는 시원이고, 과거는 폐허이고, 현재는 첨단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정지의 미 따위는 내겐, 우리에겐 없습니다.
차라리, 짐승이 될 뿐.
나무여 영혼이여
가벼운 참새같이 나는 잠시 너의
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
일요일, 친구와 친구 녀석의 다섯 살배기 아들과 목욕탕을 갔습니다. 셋이 세수를 하고 셋이 등을 밀고 셋이 달걀을 까먹고 셋이 냉면을 먹었습니다. 친구 녀석의 아들 손을 잡고 목욕탕 이곳저곳을 구경했습니다. 과자를 사서 먹이고 물을 따라 먹이고 또래 아이들과 뛰놀게 하고. 아이들은 사람들 사이로 뛰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웃습니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가 곧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엄마를 찾다가, 과자를 건네니 다시 웃습니다.
목욕탕 안을 뛰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다 보니 아이들의 눈 속에는 영혼이 없더군요. 영혼 따위 필요 없더군요. 영혼, 이라는 말 속에는 왜 이리 많은 망설임들이 있습니까. 나는, 나의 영혼은… 흉치 않은 데 없고, 술에 취한 밤 몸을 눕히는 이 방은 사방이 천장이고, 천장이 천장에게 달라붙어 나는 그림자만 남습니다.
성장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들이 하여온 일
정리는
전란에 시달린 20세기 시인들이 하여놓은 일
현대에 대한 수많은 논의들은 여전합니다. 당신이 본 현대는, 당신이 산 20세기는 지금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승자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그 지독한 민족의식은 승자 없는 20세기에 대한 반어적 표출입니다. 승자가 아니었다는 열등감들이 폭력을 낳습니다. 폭력과 강압의 나날입니다. 그리하여 바닷가에 펼쳐진 기름을 거두며, 희생자들에게 실시간 ARS로 송금을 하며 우리는 면죄부를 삽니다. 미디어들이 신탁을 받고 면죄부를 팝니다. 면죄부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행했던 폭력을 잊고 지우고 잠시잠깐 현인이 되고 시인이 됩니다. 우리의 죄가 사라지고, 미디어는 따뜻한 무덤이 됩니다.
당신이 말한 ‘성장’과 ‘정리’라는 말 사이에 가로놓인 ‘전란’이란 말. 이제 모든 곳이 전장이어서 나는 어디에서도 시인을 본 적이 없는 것만 같을 때가 있습니다. 때론 그저 모두들 살기 위한 짐승, 잡아먹기 위한 포식자들만 같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전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달리지 않기 위해 시를 쓸 뿐입니다. 전란에 시달리고 있는 21세기 시인들의 일입니다.
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영혼은
그리고 교훈은 명령은
나는
다음 주 토요일에는 친구의 아들놈 돌잔치에 가 있겠지.
1년 만에 전화한 친구 녀석, 결혼 후 근 십 년 만에 낳은 아들이라 꼭 가봐야 되겠는데, 자꾸 이십대 때부터 듬성듬성 해지던 그녀석의 머리가 생각나서, 그녀석의 머리숱이 많을까 그녀석의 아들놈 머리숱이 많을까 생각하게 되어, 실없이 피식 웃다가, 이제 나도 친구들도 늙기 시작하는구나, 그러고 보니 이미 몇몇 놈들은 조금씩 흰 머리가 나기 시작하는데, 왜 나는 흰 머리는 아직 없고 흰 코털 한 가닥이 뽑아도 자라고 뽑아도 자라는지, 이상한 몸이라 생각하다가, 이제는 결혼한 한 해 연상이었던 헤어진 애인에게서 흰 머리를 보았을 때의 심정이 떠올라, 실은 이미 그때 애인과 헤어져야 되겠다고 생각했는지도, 애인의 흰 머리를 보았을 때 머릿속에 떠올랐던 아직 갚아야 할 빚들의 총액과 그 숫자만큼 애인의 흰 머리가 늘어날 때까지도 애인이 그저 애인일 수밖에 없도록 남겨둘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이미 헤어져야 되겠다고 여겼는지도, 다음 주 토요일에는 친구 녀석의 휑한 머리통을 보면서, 혼자 키득거리다가 돌아오겠지만, 쓸쓸하고 가난하게 늙어가고 있는 나는, 나의 영혼은, 머뭇머뭇거리다가, 내가 외우고 있는 유일한 영어 문장,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중얼거리다가, 성장은 무슨 빌어먹을 성장, 퉤, 침을 뱉고 당신을 한번 떠올렸다가, 이 몹쓸 편지도 아닌 잡문을 보낸 걸 후회하다가, 될 대로 되라지, 하고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귀여울 친구 녀석 아들놈 얼굴 한번 떠올려보고, 반지는커녕 밥만 축내고 온 내 신세를 이해해 줄 친구 녀석에게 고마워하겠지.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이지만
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
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
명령의 과잉과 투쟁하기 위한 명령과, 명령의 과잉과 투쟁하기 위한 노래 사이의 간극을 생각합니다. 아마 그 노래는 눈이 밝겠지요. 눈이 밝은 노래는 짙은 어둠 속을 날아 누군가의 귓바퀴를 돌고 돌아 감긴 눈을 뜨게 만들겠지요. 누군가의 다물어진 양 입술을 벌리겠지요. 그리하여 노래가 닿는 곳은 눈동자와 입술입니다. 노래는 시인의 일. 그러한 노래를 찾는 것은 시인의 일. 나의 속물성과 패배감과 열등감의 동지들의 일.
저녁이 내려와 무릎까지 차오릅니다. 저녁을 바라보며 책상 아래에 웅크려 지내던 시절을 생각합니다. 책상에 귀를 대고 온종일 나무의 소리를 듣던 시절을 생각합니다. 아무 노래도 들리지 않던 시절을 생각합니다. 왜 지금의 나는 ‘시인’이라는 낯 뜨거운 가면을 쓰고 노래를 하고 싶은 걸까요. 어쩌면 그것은 내가 노래를 부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지한 노래를
더러운 노래를 생기 없는 노래를
아아 하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의 눈과 입술에 닿을 부엉이의 노래를. 이제는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그 노래를 기다리기 위해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을 견디는 것, 그것만이 현생에 살아 있을 동안 해야 할 나의 일인지 모릅니다.
김안∙1977년 서울 출생. 2004년 '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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