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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10년/봄) 신작시/폴리아모리 외 1편/김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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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람
폴리아모리 외 1편
나눠 먹기 좋은 당신의 눈알 쪼갤 필요 없이 10초씩 빨기
망막에 저장된 기억 맛을 즐겨 양식과 자연산을 구별하겠니
내 기억이 네 몸에 좋다면 내 몸이 네 기억에 좋다면
노래하며 사라질 거야 비위에 거슬리는 영상은 싹둑!
‘엄마의 셋째 남친과 놀이공원 가기’ ‘아빠의 둘째 여친과 쇼핑하기’
‘검고 하얀 동생들 숙제 돕기’ ‘고통 없이 죽는 법 찾기’
일기를 교탁에 놓으면 참! 잘했어요 파란 도장 쿡,
나는 퍽 잘 살아왔어 씨발 선생님
눈알을 옮길 땐 마우스 투 마우스 손을 쓰면 입이 잘릴 거야
입이 튀어나온 여자는 과부 팔자래 혼자서는 잠을 못 자던 언니
결혼 후 곧장 치아 교정 착, 감기던 혀가 붙질 않아
운명을 바꾸는 매력적인 반칙이야 떨어뜨린 눈알이 하늘을 굴리면
별들 쏟아져 눈알에 박혀 흙에서는 별사탕 맛 내게서는 네 맛
지금부턴 이혼 금지, 기다리는 입들 이빨 대신 호기심을 믿어
혀를 교환하면 깔끔해 오늘 밤 당당히 녹자구 전달할 준비 됐니?
시간을 끌면 삼키고 싶어지니 주의 당신에게 흡수되려는 게 아냐
맛보고 싶을 뿐 완전한 네 것은 없어 양식된 입양아의 눈이 생각나
깨문 자국 없이 향만 남을 우리들의 연애 닥치고 빨기나 해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 연애.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막창을 구우며 이념 없이도 마냥 즐거웠던
구십 년대와 이천 년대에 대해 얘기했다
그저 사랑 아닌 것들에 단호했을 뿐
덜 익은 고깃덩어리 같았던
이십 대의 냄새가 몸에 배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썰린 청량고추와 실파를
막장에 버무리는 동안
목까지 살 오른 도둑고양이가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왔다
담벼락 뛰어넘던 기억을 잃은 척추에서
삐걱거리는 여인숙 나무계단 소리가 났다
옆 테이블에서 고기 한 점이 떨어져서야
꼰 다리를 풀었다 X는 얼마 전
작곡을 했다며 가사를 써달라 부탁했다
나는 지금 아프지 않았으므로
시 한 줄 쓸 수가 없었다 막창만 뒤집으며
졸업 학기를 남겨두고 학교를 그만둔 A와
박사 과정을 밟느라 술자리에 빠지는 B에 대해
아내와 싸울 때마다 연락하는 C에 대해
화제를 돌렸다 하늘에서는 뒤집지 않아도
달이 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소주 한 잔에 몸만 취한 나는
허공에다 젓가락질을 해댔다
생활고로 자식 입에 약을 털어 넣은 부부와
교육과 정치에 관한 얘기에 이르러서는
막창이 조용히 타고 있었다 우리의 미래처럼
머리 빡빡 깎은 사내가 파인애플 꽂은
칼을 불쑥 얼굴 앞으로 내밀었다
우리는 말이 없었고 바람이
빈 잔을 채우고 비우고를 반복했다
환기통으로 올라가지 못한 연기가
자꾸만 눈 속으로 빨려들었다
김사람∙2008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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