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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10년/봄) 신작시/새들의 허기 외 1편/성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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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34회 작성일 10-08-18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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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현
새들의 허기 외 1편


새의 날개는 타고난 양력이다.
뒷걸음칠 줄 아는 새가 있었다면
그새, 세상을 다 움켜쥐었을 것이다
물의 깊이를 재며 수평으로 날던 새 한 마리
물씬 비린내가 진동하자 느닷없이 곤두박질치다가
민둥머리로 망연히 주저앉은 그 새를 보았다

줄의 힘을 빌려, 팽팽하게 당긴 줄에 얹혀서
차디찬 바람벽을 가르다가 과녁의 옆구리 스쳐간 살
갈밭에서 부러진 날개를 펼쳐 보였다
그 많은 새들이 뚫고 갔을 곧은 길에서도
새벽에 뒤바뀐 바람의 빛깔을 구별하지 못한 탓이리라
물밑에서 떠오르는 물고기들의 고달픈 풍문이
다각으로 굴절된다는 것을 그새 잊었으리라
날개 돋친 짐승들은, 돌아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젖은 풀밭에 풀썩 주저앉아서
간발의 차이로 헛짚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날개에 허기가 차면 어디도 관중할 수 없는 법  

가난한 자의 양력은 허기뿐이다
추줌주춤, 몇 발자국 물러섰다가 힘차게 내닫는,
휘청거리는 헛다리 짚고 두 발 뻗어 제 몸을 내던지는
저 허기마저 비운 장대높이뛰기 선수

한 줄의 약력으로 높은 턱을 차고 넘어
그새, 일거에 관중의 허기를 채울 것이다

 





구수회의록


창세기 연대미상. 터어키 아라랏산 부근 흙탕물 위에 홀로 떠 있는 거대한 방주, 궁창의 문이 다 열려 대홍수의 환란이 일어났다 흙냄새에 굶주렸던 노아는 올리브 가지를 물고 돌아온 비둘기를 품에 안았다 종자로 아끼던 옥수수 몇 알을 먹이고 곧바로 구수회의를 열었다 세상의 문이 모두 닫힐 때까지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으로 삼았다. 1988. 09. 17. 한 무리 비둘기들이 서울의 잠실운동장에서 올리브 가지를 물고 하늘 높이 날았다

2009. 03. 20. 서울, 환경부 구수회의에서 전염병을 옮기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원흉이 비둘기라고 규정했다 그러므로 관련법규를 개정하여 비둘기를 유해조수로 분류하겠다고 입법 예고하였다 그날 오후, 비둘기들이 바이칼호에서 신종 조류독감을 물고 왔을 것이라는 소문이 증권가에 떠돌았다

2009. 10. 10. 워싱턴, 오슬로 구수회의에서 비둘기의 눈빛을 닮은 오바마 미국대통령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하였다는 소식을 물고 온 비둘기가 있었다 그 비둘기가 백악관 창문으로 날아든 직후 백악관의 창문이 모두 닫혔다 2009.12.1. 백악관은 닫혔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아프간 병력증파를 공식 발표하였다

2009. 12. 08. 평양, 서울에 살던 비둘기 한 마리가 50만명 분의 타미플루를 물고 3호청사의 비좁은 창틈으로 날아들었다 즉시 구수회의가 열렸으나 그 결과를 두고 사람마다 구구하게 예측하였다 예상과는 달리 다음날인 2009. 12. 09. 신속하게 남측의 제의를 흔쾌히 접수하였다 그날 서울의 보사부 구수회의에서는 신종풀루 위기단계를 심각단계에서 경계단계로 하향조정 하였다. 덩달아서 국방부가 경계태세를 한 단계를 낮추었는지는 군사기밀에 속하므로 회의록에는 빠져 있었다

2054. 03. 10. 터어키 아라랏산 중턱, 하늘의 물길이 터질듯이 차올랐다 한 떼의 비둘기들이 군무를 펼치다가 노을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철새가 된 그들은 지금도 평화의 표상이며 미래에도 평화를 물고 좁은 문틈으로 날아들 것이다 창세기 이후, 명석한 비둘기들의 은밀한 결정 뒤에는 한 번도 뒤탈이 없었다

성태현∙ 2008년 ≪시에≫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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