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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10년/봄) 신작시/빈집 외 1편/장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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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수
빈집 외 1편
한 여인이
가슴 활짝 열었다
내벽에 붙어있던 낡은 수작들을 뜯어내고
우울했던 사건을 구석구석 털면서
심지어 은밀하게 꽉 들어찬 첫사랑까지 몰아낸다
뿐이랴
어구적 거리던 녹슨 추억도
반항하며 역류하던 여자의 본능까지
기분 좋게 바람개비를 달아 날려 보낸다
손끝에 닿는 모든 것들이 신선하고 상큼해졌다
이제 여인은
튼실한 정강이 문턱에 살짝 걸쳐놓고
보송한 속살까지 바람결에 내비치며
갓 분칠한 아모레 향을 솔솔 피운다
기다린다
견고한 매매를
별, 추억에서 꺼낸다
동경 신주쿠
초록빛 야마노데센 역마다 끌어안은 골목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어서 별빛 하나도 누수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처음 그 때의 풍경처럼
눈을 감아도 원형으로 만나는 그리움
추억의 혈관과 신경망 구석구석에서 숨 쉬고 있던
여덟 해의 선연한 빛깔들이 따라 나온다
지하철 선로 따라 길을 찾던 눈물의 이정표가
해와 달과 바람으로 매섭게 발효시킨 인내의 호흡이
앨범으로 압축된 이 사연뿐이랴
아침마다 향기로운 녹차의 미소가
붉은 와인에 젖어 쫀득한 저녁노을이
허기진 날들의 뼈 속을 채우며
내 영혼을 파고드는 빛과 소리다
중년의 그리움에 꾹꾹 찍힌 낙관
그 붉은 인주가 아직 페이지마다 촉촉해서
유난히 반짝이는 별
꺼낸다
장연수∙2008년 ≪펜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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