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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9/겨울)/신작시/블랙커피를 마시며 외 1편/김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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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94회 작성일 09-12-2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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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블랙커피를 마시며 외 1편


나의 모닝커피에는
설탕을 타지 않는다

날마다 마시는 세상의 물은
담즙보다 더 쓰지 않더냐?

혀의 유두를 소태껍질로 문질러야
개미핥기의 혀가 개미탑을 파헤치듯이
세상의 혓바닥에서 단맛 알갱이를 캘 수 있지 않겠느냐?

나의 이브닝커피에는
프림을 타지 않는다

저물 녘 숲속의 나무들 틈 사이는
인도 흑단보다 더 어둡고 촘촘하지 않더냐?

덤불 속 땅굴로 들어가는 뱀
갈퀴 혀처럼 어둠에 익숙해야
저녁 숲길을 두려움 없이 혼자 갈 수 있지 않겠느냐?

눈도 뜨지 못하는 사슴 새끼가
어미 가슴의 젖꼭지를 찾듯이
그대의 캄캄한 입속에서
사탕무 뿌리를 캐기 위함이다.

 

 

 



인연6
―부부

수많은 불면의 그믐달을
식어버린 체액으로 담금질한 칼로
가슴살을 베는 싸움을 했다

삼십 년 간 몸을 섞어
샴쌍둥이처럼 붙은 부위들을 모두 자르고
피딱지가 엉겨 붙은 등짝을 맞대고
적의마저 지쳐서 잤다

아내가 소변을 보려고 일어나는 기척에 깼다
자르지 못한 인연의 끈을 당겨서
상처 난 어깨에 이불을 덮어주었다
숨소리를 죽이고 잠든 척 했다

가슴살 뭉툭 잘려나간
상처의 출혈을
베개로 꾹꾹 눌려 지혈하고
아픔을 참았다

마주 댄 상처의 살이 돋아 다시 붙으면
오래전 운동회 때처럼 다시
이인삼각으로 걸어가야 할게다
백년전쟁의 종전 없는 휴전을 했다

살아온 세월만큼 깊은
늪에서는 진검승부도, 언제나
애꿎은 꽃대의 목만 자르고 말았다
꽃밭만 성글어 갔다.


김세영∙ 2007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강물은 속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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