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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10년/봄) 젊은시인집중조명 해설/신이 꿈꾸지 않는다/박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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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61회 작성일 10-08-18 19:15

본문

|해설|

신이 꿈꾸지 않는다

―이정모 시인의 아포리즘들

박찬일|시인



봄날 꽃잎처럼

하르르

소리 없이 떨어지기만 하면

좀 좋아?

―이정모



1.

삶이란 무엇인가. 소멸로 이르는 도정이다. 간단하다. 그러면 왜 삶인가. 휩쓸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부모의 품으로, 학교로, 친구로. 무엇보다 욕망에 휩쓸렸기 때문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사랑에도 휩쓸렸기 때문이다.

바람도 없는 강가에서

표류하는 신기한 뱃멀미는

오래 전에 내린 줄 모르는 탓일 뿐

사랑에 젖었던 자 젖는 것을 두려워하랴

삶이란 미망未忘의 세월이

역풍을 꿈꾸며 흐르는 강이다

―「낙화, 고개 들다」 부분


“바람도 없는 강가에서/ 표류하는 신기한 뱃멀미”? 사랑에 대한 멋진 정의다. 다시 한 번 발음해 보자. 사랑은 바람도 없는 강가에서 표류하는 신기한 뱃멀미! 멋진 아포리즘이다. 사랑을-신을 ‘자기 원인 causa sui’이라고 하는 것처럼 - 인과관계에서 벗어난 ‘절대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바람이 없는 강’과 ‘뱃멀미’가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있다. ‘사랑’이 절대적 존재가 ‘물론’ 아닌 것은 사랑이 ‘물론’ 변하기 때문이다. 변하기 전까지 사랑은 ‘물론’ 절대적 존재다. “사랑에 젖었던 자 젖는 것을 두려워하랴”라고 외칠 수 있다. ‘사랑의 뱃멀미’로 뱃전에서 ‘떨어질 수 있다’[투신할 수 있다]. ‘영속적 사랑’을 보장하기 위하여. 죽음으로써 영속적 사랑이 보장된다면!

화자는 뱃전에서 결국은 뛰어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삶이란 미망未忘의 세월이/ 역풍을 꿈꾸며 흐르는 강이다”로 시를 끝내고 있기 때문이다(역시 아포리즘이다). ‘미망未忘’은 더 이상 ‘절대적 존재’의 표현이 아니다. ‘꿈’ 역시 더 이상 절대적 존재의 표현이 아니다. 신은 꿈꾸지 않는다.


2.

인과관계에서 벗어나게 하는 절대적 존재 ‘사랑’. 그래서, 다시 휩쓸리고 싶은 ‘사랑’? 사랑이 마약과 같다? 인간은 인과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오늘의 바람은 어제와 손길이 달라

사랑이 될 것 같은 예감 보았나

때때로 안개는 숨겨진 사원이라

그 속으로 일탈하여 숨고 싶었나

제 꼬리를 끊고 산으로 들어가네

―「귀가」 부분


“사랑이 될 것 같은 예감”을 느끼는 자는 ‘인과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다. “안개” 속에서는 인과관계를 보기가 쉽지 않다. “안개”의 보조관념 “숨겨진 사원” 역시 인과관계에서 벗어난 곳이리라(신이 인과관계에서 벗어난 존재이듯). [세상의] 인과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화자의 현상학’인 것은 “일탈”이라는 기표/기의 때문이다(일탈이라는 기표에는 정말 일탈이라는 기의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화자’는 일탈하고 싶다. ‘우리’가 일탈하고 싶은 우리라면 ‘개별적 경우와 보편적 경우의 균형’에 도달한 것이 된다. “산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맞장구친다. “나도요” “나도요” “나도요”


3.

‘산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말과 ‘고향에 가고 싶다’는 말이 대체의 관계에 있다. ‘고향’도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말’,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곳’일 것이다. “나에겐 고향이 없다. 술 마실 때 혼자 술 마셔야 하는 고향이 없다”라고 읊은 자는 불행했다. “고향은 떠나 있다가 죽기 전에 몇 번쯤 눈물 흘리는 곳이다”라고 읊은 자는 불행했다. 인과관계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인과관계에서 벗어난 ‘原고향’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도

구들같이 푸근한 고향의 아랫목엔

여섯 살 까까머리로 자고픈 잠도 수북하고

오래된 연인처럼 나를 견인해 가는

미인이 누워있다

―「미인이 누워 있다」 부분


고향에 대한 메타포: ‘고향은 “오래된 연인처럼 나를 견인해 가는/ 미인”’(역시 아름다운 아포리즘이다). 메타포를 둘로 나누면 ‘고향은 오래된 연인’, 그리고 ‘고향은 나를 견인해가는 미인’이 된다. 오래된 연인이 인과관계에서 벗어난다. 미인이 인과관계에서 벗어난다. 미인이 인과관계에서 벗어난다? 헬레나가 원로원에 입정했을 때 원로원 의원들 모두가 기립하였다. 미인은 법 위에 있다. 불의/정의 코드 위에 있다. 미인은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있다. 미인은 성형할 곳이 없다. 원인을 만들지 않는 존재다. 미인에게는 “혐의”가 없다.


새는 성형 할 게 없어서

무혐의가 거의 확실하다

―「새는 늙지 않는가」 부분


4.

사랑은 스스로가 원인인, 인과관계에서 벗어난 ‘절대적 존재’라 하였지만, 그래서 사랑은 마약과 같은 존재라 하였지만, 자꾸 떠올리게 하는 고향도 이와 같은 것이라 하였지만, 고향도 - 무의지적 기억에 속한 곳이므로 - 인과관계에서 벗어나있는 존재라 하였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가장 깊숙이, 휩쓸려 있는 곳은 그런 데가 아니[었]다. 우리는 ‘인과관계’에서 살고 있다. 인과관계를 용인할 수밖에 없다. “새 노래는 공으로 드르랴오”? 꿈일 뿐이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꿈일 뿐이다. 새 노래를 공으로 들을 수 있고, 강냉이를 함께 먹을 수 있는 ‘사랑’과 ‘고향’은 대개 ‘꿈 같은 짧은 현실’에서 존재한다.

인과관계를 ‘건너가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결과지상주의, 업적주의를 건너가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내가 바란 건 하나도 이뤄진 게 없지만

자식에겐 세상을 공짜로 주었으니

이만하면 잘 버틴 것 아닌가요

철길은 기약만 사이에 두고

인생의 기차에서 듣는 당신의 말은

등 두드리며 내리는 안녕 뿐이니

내릴 역이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그러니 간이역을 지날 때라도

외롭거나 지겨움을 푸는 방식을 배워요

―「버티는 방식」 부분


“내릴 역”이 중요하지 않다고 한 것은 목적합리주의에 대한 위반! “간이역”이 중요하다는 것 역시 목적을 위해서는 모든 [합리적․효율적] 수단·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는 목적합리주의에 대한 위반! ‘원숙한 화자’의 발언이다. ‘간이역’이 사랑이고 고향이라는 것(역시 아포리즘이다). 간이역이 “외”로움을 잠시 풀어준다는 것. 간이역이 “지겨움”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



박찬일∙춘천 출생. 1993년 ≪현대시사상≫으로 시단 데뷔. 시집 <화장실에서 욕하는 자들>, <나비를 보는 고통>,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모자나무>, <하느님과 함께 고릴라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와 함께 나타샤와 함께>. 시론집 <해석은 발명이다>, <사랑, 혹은 에로티즘>, <근대: 이항대립체계의 실제>, <박찬일의 시간 있는 아침>. 연구서 <독일 대도시시 연구>, <시를 말하다>, <브레히트 시의 이해> 등. 박인환문학상, 젊은시인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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