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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9/겨울)/신작시/블라인드 외 1편/오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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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815회 작성일 09-12-21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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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경
블라인드 외 1편


당신은 좀 더 서정적*이어도 좋다
물론 당신이 젤리처럼
달콤하거나 말랑말랑하리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빳빳한 몸의 재질과는 달리
당신이 취하는 포즈들의 유연함
다만 그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반듯이 서거나 비스듬히 기울거나 모로 눕거나
몸의 각도에 따라 천의 얼굴이 되는 당신
빛을 어르는 당신의 능란함에 기대서서
당신이 온 곳 베네치아로 간다
카사노바의 방랑도 아센바하의 상사도
뭇 가면들 틈에 뒤섞여 광장으로 흩어지고
검은 애수가 도시 골목골목으로 흘러드는 곳
곤돌리어의 노련한 손길이 뻗어와
정박된 시간의 잔등을 더듬는다
꼬리가 돋아나고 지느러미가 돋아나고 비늘이 뒤덮이고
급류를 거슬러 온 한 마리 황금 물고기로
아드리아 해 물살 위를 솟구쳐 오르는 찰나
누군가 당신을 걷어 올린다  
문득 사라진 서정의 거리距離,

도시 베네치아가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

*우리가 서정적이 되는 것은, 정신적 삶이 인간본연의 리듬으로 진동할 때이다―에밀 시오랑

 

 

 


강화유리


―석 달 열흘에 한 뼘쯤 더디게 영혼이 자라지요
나는 그를 돌보거나 애써 성장을 부추기지 않아요
시들어가는 그를 위해 물을 긷지 않으며
웃자란 그를 위해 전지가위를 들이밀지 않아요
방목하듯 대지 위에 그를 풀어 놓아요
이따금 빗물이거나 바람이거나 달빛이거나
야생의 것들이 부드럽게 그를 어루만지며 지나가지요

잊혀진 말 사무친 말, 모호한 말 명백한 말  
어느 한 시절 우리에게도 영혼이 있었을까요
오늘 내게 영혼이 없으니 상처 또한 없지요
보세요, 말짱한 얼굴을
몇 미터 아래로 굴러 떨어져도 흠집하나 없는
오싹 소름이 돋지 않나요
영혼을 팔아 영생을 얻고 싶진 않았어요
쨍 금이 가고 싶었어요
반짝이며 파편으로 흩어지고 싶었어요
더운 피를 품어보고 싶었어요
금의, 파편의, 피의 비명이 사라진 텅 빈 무대
‧‧‧‧‧‧객 석 의 먼 지 소 리
생각해 봐요
끊임없이 양철북을 두드리던 오스카의 광란을
할머니의 네 겹 치마 속으로 달아나던 그 절박함을

이리 와요, 오스카
책 밖으로 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지 않나요
벼랑 끝으로 갈까요 다시 한 번 사다리에 오를까요
손을 맞잡고 우리 세상 안으로 사라지지 않을래요?
금의, 파편의, 피의 비명이 한데 어우러지는 무대
‧‧‧‧‧‧객 석 의 박 수 갈 채


오세경∙2008년 ≪시현실≫로 등단.

추천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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