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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9/겨울)/신작시/가을이 도사리고 있다 외 1편/이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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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채
가을이 도사리고 있다 외 1편
가로등 불빛 내려앉은 한강 둔치에 하늘이 펄럭이고
코스모스 축제로 북적이던 그림자만이 남아
스산한 바람으로 강물이 출렁인다
조깅하는 바람 따라 코스모스는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데
일찍 나온 달이 이 강물 저 강물에서 모여들어
사랑을 나누느라 어깨동무를 하기도 하고 얼굴을 부비기도 한다
낮술이 아직 덜 깬 해바라기는 고개를 떨구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립스틱을 지우지 못한 칸나의 입술이 붉게 타오른다
백일홍 사루비아로 단장한 하우스 안에서는
호박과 수세미가 고래고래 밤을 밝힌다
어둠 속에서 한들거리는 것은
코스모스냐 길 잃은 밤새냐
강 너머 고층 아파트는 저 홀로 키를 키우고
어둠 속에서 밤낚시에 몰두하는 갈대에 다가가 귀를 기울인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긴 허리를 허청거리며 삶의 무게를 건져 올리는 것은
어둠인가 허공인가
별 하나 없이 허우적거리는 사연들을 가슴에 안은 채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파 놓은 긴 터널로 들어간다
낮달
이제는 앙상한 나뭇가지만이 남았네요
바람이 가지 위에서 튜닝 하니
내 가슴이 먼저 음을 고르는
이른 아침
차를 몰고 가다가
해장국집 간판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버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그냥 지나친 것을 후회하며 다시 차를 돌리네요
이맘때면
독산동 우시장을 다녀오시곤 했던 아버지
간, 쓸게, 내장, 고기, 선지를 사와
손수 깨끗이 씻은 다음 우거지를 넣고 폭 끓여
한 그릇씩 퍼 주었지만
그때는 입에 대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그 해장국이 먹고 싶어지네요
문을 열고 들어서니
티브이에서는 아침드라마가 나오는데
그 동안의 생이 모두 티브이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아
찡해지는 눈자위를 훔치며
"여기 아버지표 해장국 한 그릇 주세요"
의아한 듯 바라보는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오늘 하루
내 가슴에 묻어둔 티브이 드라마 속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서 흔들리네요
이현채∙2008년 ≪창작21≫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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