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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9/겨울)/신작시/정방폭포正房瀑布* 외 1편/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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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정방폭포正房瀑布* 외 1편
1.
숨죽이며 폭포의 영역에 든다
수 만년의 곧은 소리가 멈춰있던 피를 깨우고
투명한 물의 속내에
단단한 오기가 허옇게 부서진다
날선 사상을 깎아 내리는
직립의 노래
표류하던 몸에 죽비로 쏟아진다
2.
배후엔 섬이 있다
한 생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어부의 혼이
전설의 물고기가 되어 폭포를 거슬러 오르면
섬은 황홀하게 몸을 연다
산 자가 죽은 자를 바람에 품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섬에 묻고
한꺼번에 쏟아진다
고일 수 없는 물의 생리가
한 없이 한 없이 바다를 끌어당긴다
파닥거리는 사랑이 우주까지 헤엄쳐 간다
*정방폭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심가에서 1.5km 동남쪽에 있는 폭포로 폭포수가 바다로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 폭포이다.
태양물고기
우주를 향해 낚싯대 던져라
미끼는 팔딱거리는 상상력
직녀와 견우가 사라진 은하수 안에
유행 지난 서편제를 밑밥으로 풀어 넣어라
너에겐 세월을 납득시키는 그리움이 있다
묵직한 입질이 온다
뜨거운 파도가 일고
팽팽한 줄이 블랙홀 쪽으로 쏠린다
애인을 보낼 때처럼 줄을 풀어라
목젖이 걸린 태양이 요동친다
배고픈 건 거짓사랑을 이해시키는 집착
줄을 감아라
태양 물고기를 얇게 썰어 한바탕 잔치를 벌이자
월급처럼 어분을 받아먹던 사육의 시간
바늘에 꿰여 이리저리 끌려 다니던 굴욕의 시간
모두 태우는 화형식을 치루자
더 이상 쓸쓸한 배경으로 남지 말고
상처뿐인 사랑 안에 폭탄을 투하하자
삶을 길들이는 건 오직 태양의 결론
비린내 나는 아침이 오기 전에
구차하게 미끌거리는 지느러미를 자르자
하린∙2008년 ≪시인세계≫로 등단.
추천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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