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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9/가을)/신작시/바람의 본적지 외 1편/박섭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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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섭례
바람의 본적지 외 1편
바람의 본적지는 바다이다
바람이 본적지를 떠나는 일은 썰물 때뿐
시차는 다르지만 썰물 때면
마을에 있는 느티나무 꼭대기가
까치들의 거주지고 바람의 임시거주지다
가금씩 까치들과 바람의 세력다툼이 격렬하면
마을은 꼭꼭 문을 닫고 두문불출
오늘은 출타중이라는 명패가 걸려있다
소란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웬걸
혼자 있는 법을 도무지 모르는 바람은
악동처럼 장난기가 발동한다
이집 저집 기웃거리면서
빨랫줄에 빨래들을 팽개치고
채전 밭 장다리꽃도 팽개치고
마을도 팽개치고 순식간에 엉망진창
다급해진 대기리 이장 알려드리겄습니다
바람을 잡어야한께 연장들을 가지고
싸게싸게 나오시기 바랍니다
빈집
마당에 서있는 복숭아꽃은 봄이 되면
국기를 계양하듯 조등을 내 걸었다가
봄이 지나가면 조등을 내린다
조등이 꺼진 빈집의 고요는 뱀처럼 똬리를 틀고
새끼를 또 새끼를 치고 있다
발라먹은 생선처럼 뼈만 앙상한 문짝과
환관의 무덤처럼 등이 굽은 집
마구 버려진 질그릇과 짐승의 배설물이 썩어가는 집
대문도 없는 빈집을 드나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쩌다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처럼 유혹에 빠져
복숭아를 따 먹으려 들어갔다가 뱀에 물려 죽고 나서
금단의 열매가 된 고개도 돌리지 않는 집
빈집에 혼자 남은 복숭아꽃만 제 몸을 키우며
주인의 기일을 위해 집을 지키고 있다
박섭례∙2008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내 작은 뜰에 뿌리를 내리고>, <찬란한 목련의 슬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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