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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9/겨울)/신작시/혼자서도 잘 논다 외 1편/김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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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혼자서도 잘 논다 외 1편
―선문답禪問答 놀이.1
아파트 엘리베이트 안에서 마주치게 되는 이웃 아가엄마
“혼자서 외롭지 않으세요?”
여럿이면 더 외롭지.
아파트 현관에서 만난 중년부인
심심하지 않으세요?
내 나이 77
행운목이 두 그루씩이나 청청히 자라고 있는데 심심할 새가 있나.
혼자 계시면 무섭지 않으세요?
여럿이 있으면 안 무섭나?
친구들은 나를 하루가 바쁘게 살 거라고 상상들 하는데
나는 노는 시간과 한통속으로 잘도 논다
시간이 바빠할 때는 일부러 늑장을 부리며
‘느림’을 꼭꼭 곱씹어 시간의 단물을 목줄기로 서서히 넘기며 즐긴다
베란다 창틀에 앉아 나에게 말을 거는 날벌레
창문 밖으로 나를 태우고 유유히 흐르는 구름
환한 미소로 내 갈비뼈 사이에서 나풀거리는 나뭇잎들을
따뜻한 혀로 핥아 주는 햇살
뭐 손 꼽자면 한이 있나,
내 마음이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이니
그냥 그렇게 나는 혼자서도 잘 논다
혼자서 잘 노는 것이 재미있어 혼자서 잘도 노니
부처님 하느님도 재미있어 보이는지
사이좋게 나란히 같이 와 놀아 주신다
사계절 밤낮으로
하늘에 땅에 강물에 마음가는대로 내 그림이나 그리며
혼자서 노는 재미 참 재미있어 재미있다
갈기에 억겁의 시간을 휘날리며 달리는 말
―선문답禪問答 놀이.2
신라 천 년의 시간 위를 천마天馬가 갈기를 날리며 달린다
하늘 초원 위를 준마駿馬가 갈기를 날리며 달린다
바다 파도 위를 백마가 갈기를 날리며 달린다
영혼 속을 시詩의 천마가 갈기를 날리며 달린다
갈기를 날리며 달리는 말馬들의 발굽소리가 천지에 울린다
갈기를 날리며 달리는 말詩들의 말발굽소리가 영원에 울린다
말馬이 말詩을 태우고 달리는 두 말의 갈기가 빛의 우주를 낳는다
말이 천길 울림의 광휘光輝이고 천상天上 침묵의 기도이다
김여정∙196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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