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36호(2009/겨울)/신작시/천수관음 외 1편/최승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426회 작성일 09-12-21 00:51

본문

최승헌

천수관음 외 1편
 
 
담불라*석굴사원이 앉아있는 
가파른 바위산 오르는 길에 
맨발의 여자가 연꽃을 들고 있다
종일 강한 햇볕을 받은 탓인지 
연꽃이 약간 시들긴 했지만 
시궁창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어온 
정갈한 기품이야 어디 가겠는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붉게 물든 노을빛 사이로 
살짝 연꽃 한 송이를 내민다 
온갖 허드렛일로 세상에 길들여왔을 
부르트고 갈라진 시커먼 손,
자신의 생애를 알리듯 손바닥에 
커다란 티눈이 박혀있다
날마다 뜨거운 바위산을 맨발로 다지면서 
중생*들을 어루만져주는 그녀 마음이 
관음의 손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내 시선이 그녀의 손바닥에 머물자 
수줍은 듯 슬며시 감춰버리는 손
이미 내게 천千의 마음으로 
다가와 있다는 걸 눈치챘나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스리랑카 동굴사원.
*세상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것.
 



 

전화 속에 바다가 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내 귀는 바다가 흐른다

 당신 말에 물집이 잡혀 
 푸른 수의 같은 바다가 전화 속으로 흘러들어 와 
 물고기가 되기 때문이다
 당신과 나, 이미 서로의 경계는 허물어졌기에 
 이제 몸을 바꾸는 일만 남았다 
 힘줄이 불거지듯, 
 당신 말이 자주 불쑥 튀어나와 내 귀 안으로 들어온다
 내 귓속은 번식이 빠르다
 어떤 것이라도 걸려들면 재빨리 변종하는 습성이 있다 
 귀속에서 떠도는 물고기가 
 지느러미로 부드럽게 내 귓속을 어루만지거나
 날카로운 등뼈로 콕콕 찌르면서 겁 없이 들락거리는 건
 당신 말이 언제나 낯설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 당신의 전화를 받으며 
 내 귓속에서 물고기가 되어 나를 뜯어먹는 당신을 본다
 최승헌∙1980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추천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