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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9/겨울)/신작시/우주의 손 외 1편/장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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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기
우주의 손 외 1편
―DNA IN MY MIND, 신이라는 날개 잃어버린 크로마뇽인
보라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대 어둠의 근본은 빛이었나니
잔혹의 계절이 우리를 침몰시켜도
저 어둠의 끝을 지나 무한으로 뻗어가는 우리의 손길 보리라
우리를 만드는 유일의 것은 우리 안에 격렬한 갈등
세상은 언제나 모순의 비탈이었고
우리는 낭떠러지 끝에서 별을 꿈꾸나니
보라. 우리 안에 강렬히 반짝이면서도 방황하는
집요하면서도 동요하는 영혼의 눈
어둠의 잠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유일의 것은
우리 안에 깊고 비밀스런 빛, 빛의 소리뿐
지친 새들이여, 그대 안에 날개를 묻어라
결국 그대의 항진은 그대 안으로 향하나니
우리를 이끄는 항로는
우리의 안, 저 알 수 없는 깊은 섬에서 타오르는 비밀의 날개
밀려오라, 싸늘한 침묵의 은하 물결이여
우리에게는 눈부신 설렘의 파도여
세상은 이제 우리로부터 출항의 깃발을 올리나니
새벽빛은 정녕 우리의 희망, 우리의 영광이구나
저 광막의 우주 속,
희디흰 길을 놓아라, 내 오랜 손길들이여
두려움 없는 비상만이
우리 안의 깊고 투명한 비밀의 강을 지나
새벽 하늘빛에 닿으리라
누가 내 안의 우주 블랙박스를 여는가
―DNA IN MY MIND, 신이라는 날개 잃어버린 크로마뇽인
1.
괴이한 일이요
내 얼굴이 헌 벽지마냥 뜯겨지고 있소
금이 가고 점점 허물어지는
내 머릿속을 내가 들여다보는데
신비로워라. 두개골 안벽마다 촘촘히
비밀의 말들이 벽화로 새겨져 있더라.
‘나의 블랙박스라도 발견한 건가’
세세히 보니
일찍이 내 전 존재가 폭발하는
어둠의 심장, 어둠의 알이었음을 알게 하더라
빅뱅!
그리운 내 맨 처음, 빅뱅의 시절이여
어둠 속에 은하의 씨앗들을 흩뿌리며
캄캄한 암흑류 속 끝도 없이 질주해왔음을 알게 하나니
아, 저 비밀의 말들은 내 안에 태초부터 수백억 광년 번식해온
그 전설속의 우주모어宇宙母語들인가
놀라운데
우주모어宇宙母語들은 두개골 안벽을
스멀스멀 살아 기어 다니며
동공 없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점점 벽속으로 함몰되어
블랙홀이 되어갔소
나를 원망하는 겐가? 그런가? 하는데
갑자기 내 두개골도 졸아들며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소
‘내가, 내가 사라지는 건가. 죽음이란 이런 건가?’
무서워, 무서워 포르말린을
두개골 속에 연신 들이부으니
서서히 멈추면서 우주모어宇宙母語들도
그대로 박제가 되더라
나는 서둘러 내 두개골을 봉합하고
표백제를 발라, 머릿속을 폐쇄시켰소
2.
그런 새벽,
출근용 지하철에 올랐소만
근심은 멈출 수 없소
‘누가, 누가 있어
먼 태초부터 내 안에 봉인된
우주의 블랙박스를 해독하랴’
이 몰락하는 지구의 두개골 표면
평범의 세균들로 그득한 이 일상의 쿨렁쿨렁한 해면층
천년 반복되는 딱딱해진 말들의 누더기 속,
어기적거리고 있는 이, 이 나라는 몰골!
‘누가, 누가 있어
태초부터 봉인된 나를 해독解讀하랴’
봉인된 우주의 블랙박스를
머릿속에 넣고 다니며 오늘도 골몰하는 게요
장경기∙1992년 ≪현대시≫로 등단. 1996년 <멀티포엠 제1선언문> 발표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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