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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9/겨울)/신작시/왕년의 스타 외 1편/김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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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11회 작성일 09-12-21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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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우
왕년의 스타 외 1편


그는 날개 잘린 새다
열흘쯤 붉다 시들어가는 꽃이다
고공비행을 시도하다 불시착한
그는 없는 길을 산책하는 방랑자다

숨바꼭질하다 사라져버린 달을 찾아 헤매는 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던 어제를 뒤돌아본다
일천 개의 강물에 일천 개의 달로 우러러지던 한때
어제는 영화가 시작되면서 보여주던
예고편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방 한 귀퉁이에서 울렁울렁 기도문을 외고 있는
오늘 혹은 가늠할 수 없는 내일이
뚜껑이 열리지 않는 피아노처럼 무겁다

당도하는 순간 출발해버린 버스의 꼬리를
망연히 바라보듯 허망한 날들
촛불집회 현장에서 날아오는 돌에 맞아 죽는 죽음처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사람들 기억 속에서 그는 무대에서 내려온
발레리나의 발등을 스치고 간 바람같이
흔적 없이 사라져갔다

 

 

 


달의 정원


어스름한 당신이 다녀가는 걸 바라보는
깊은 밤 새하얀 백합이 피어 환합니다
멀리서도 금방 알아차릴 당신의 그림자로
정원은 한결 넓어집니다

백합의 독한 향기가 당신을 불렀나요
당신을 꿈꾸었지만 가 닿을 수 없는
오랜 시간동안 한결같던 교교한 당신의 눈빛처럼
서늘하게 한잎 두잎 지는 흰 꽃잎들 사이로
어둠이 지나갑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그곳에 떠도는 흰빛보다는
그 흰빛 속에 흐르는 어둠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만발한 백합과 당신 사이의 어둠을 통과하는
아득한 시간이 뚝뚝 지는 소리
밀려왔다 밀려가는 출렁이는 물결 같은
자욱한 당신 눈동자에 고이는 환멸
사랑한다는 건 용서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일 거라는
생각이 언뜻 스쳐갑니다

온통 여백인 지나침 혹은 머무름의 시간 위로  
첫 만남의 휘영청 눈부신 순간의 아찔함과
한 번도 나를 향한 적 없는 당신의 눈빛이

세상에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 흘러갑니다

잊혀진 길을 따라 휘어지며 추운 곳으로
기차가 사라지듯 지구의 뒤편으로 홀연히 사라져가는
기우뚱 기울임체로 가는 휘청한 당신 뒷모습만
오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김은우∙1999년 ≪시와 사람≫으로 등단.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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