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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9/겨울)/신작시/뱀굴 드나들기 외 1편/유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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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영
뱀굴 드나들기 외 1편
이 동물의 우리 앞에서는 오래 서있게 됩니다.
눈이 마주치면 묘한 신비감과 두려움이 혼돈되는 사이, 은밀히
무언가를 도모하는 흐름이 서로의 시공을 공유하지요.
이 짐승은 제 몸의 굵기와 길이로 굴을 키우는 데요.
강력한 독이빨이 내 몸에 사유는 읽을 수 없다 해도
동굴이 커질수록 나는 숨을 곳이 많아지지요.
이 짐승과의 동거로 나는 풍성해집니다.
웅크린 나를 기다란 혀가 날름거리면
후닥닥, 도망칠 통로 하나 뚫어놓지요.
이 짐승의 혀로 나는 또 쇠잔해가는 데요.
풍요와 쇠잔 속에서 나는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어요.
내가 동굴로 들어가면 그는 나를 날름 집어삼키지요.
훔치고 싶은 하나, 둘, 셋, 넷……
내 입은 거짓말처럼 거짓말을 줄줄 꿰고 있는 데요.
뒤돌아 나오면 동굴이 한 뼘쯤 더 자라있지요.
사랑
뛰어내려 봐.
비행기 창밖에 몽실몽실 떠 있는 하얀 구름은 분명 포근한 깃털의 유전자가 있겠다.
좌충우돌 들이박아도 올올이 스프링처럼 튕겨져 올라 구름 위에서 또 구름을 타겠다.
처마 끝까지 쟁여진 장작더미 같은 수억의 깃털로 구름보료 속은 온몸이 사르르 녹아들겠다.
마음 좋은 운영자가 깃털마다 심어놓은 플러스, 마이너스, 전류로 새털 같은 날들 솜털까지 짜릿짜릿하겠다.
훨훨, 날고 있는 흰 구름의 비행은 항로 없이도 눈부시다.
풀잎에 맺힌 이슬 속에도 깊이 모를 우주가 있다. 무한대의 허공에서 바닥치기를 한다
나 지금 뛰어내리는 중, 스치는 바람마다 하늘하늘.
유혜영∙2001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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