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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9/겨울)/신작시/동물병원 외 1편/이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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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동물병원 외 1편
누군가에게 뺏길 수 있는 꿈은 진짜 꿈이 아니야 달고양이는 꿈이 없어 난처해지면 찢어져라 하품을 한다 하품을 할 때마다 달을 토한다 달고양이는 꿈이 없으면 잠을 잔다 깨어나기 싫지만 자는 것도 고통이다 사납운 희망을 쳐다본다 시끄러운 희망은 슬개골이 탈구되었다고 한다 아픈 다리를 번갈아 들고 다닌다 발이 시려 그런 줄 알았다는 주인의 삶이 시려 보인다. 시련을 겪고 있는 건 그 옆의 이름이 목줄이 된 녀석이다 뱅글뱅글 제 꼬리를 쫓아 싸우고 있다 달고양이는 비둘기를 보아도 잡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뺏기지 않는 꿈은 스스로에게 뺏기고 만다 동물병원의 창에는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수
빈 그릇을 떠먹고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접시를 닦고 빈 컵을 들어 마신다 없는 계단을 오르고 나오지 않는 티비를 보고 없는 등을 끄고 눕는다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 마지막은 흐릿하다 몇 번은 애매하다 나는 예닐곱 번은 태어났을 것이다 태어난 적이 있는 나는 전부 죽었다 마지막으로 죽을 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만 태어난 적 없는 내가 살아있어 마른 세수를 하고 비치지 않는 거울을 본다
이수정∙서울 출생. 200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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