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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9/겨울)/신작시/소슬꽃문을 짜는 외 1편/김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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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강
소슬꽃문을 짜는 외 1편
그들의 대패와 그들의 톱이 탐나네
노인과 손주 쪼그리고서 유치원 차 기다리는 길바닥이
집이 서고 집이 앉는 자리
노인은 무릎에 손주를 배 태우고 문짝을 짜네
노인과 손주가 한 채의 문짝이네
노인의 무릎으로 어린 손주가 소르르 불어넣어주는 꽃숨
중화요리집 중국성 앞 희끗한 소슬연꽃 문살이 태평양아파트 대문 같아라
환하네 어린 손주의 무릎과 노인의 무릎은 무슨 못 없는 못질처럼
부드러운 고리로 서로 붙잡고
노인의 한 팔이 툭 손주 다리 위로 비뚜로 꽂히네 이게 또 꽃살
범어사 독성전 어칸 꽃문이 길 모퉁이 공양 중이네
휘어청 휘어지는 꽃 門
치대는 손주 몸이 꽃 門
저 門은 참이나 야물어 부서지지 않겠네
모래시계 같아라 저 부드러운 고리 속 모래알
어룽어룽
꽃 門
잠잠한 영혼 같네
나비가 날아간 입구
어느날 각시멧노랑나비가 날아든 곳은 한창 수업 중인 초등학교 교실 창유리
나비는 사뿐 날아 꽃가지에 내려안듯 열린 창으로 팔랑 날아들었다
어 나비다
일제히 환해진 꽃나무 만개한 아이들이 나폴거렸고 나비는 생애 처음 보는
꽃송이 꿀을 빨듯
비누방울 같은 몸을 돌돌 날아 올랐다
그러나
나비가 선풍기 쪽으로 날아든 1초
바닥은 혼절한 나비를 느닷없이 받아 안는다
샛노란 몸뚱이 한 벌 주인에게 반납하듯 고이 벗어놓고 나비는 어디론가 날아간다
지난 삶을 고스란히 벗어놓고 날아간다 삶을 담았던 그릇은 告解처럼
샛노랗고 선명하다
아 따뜻하고 둥근, 지구의 배꼽이 지금 쭈글하겠다
이 둥근 것이 배태한 눈 달린 것의 줄이 지상에서 나비를 끌어올린 것이다
“나비가 죽은거지예”
“으응 너무 놀라 기절했는가 보네”
더 이상 바람을 켤 수 없는 날개가 놓인 자리
그래도
깊고 둥근 나비가 날아간, 여기가 입구다
김예강∙2005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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