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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9/가을)/신작시/노을 외 1편/이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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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62회 작성일 09-12-21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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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노을 외 1편


사막 같은 갈증으로 뼛속까지 물들였어
이제 더 이상의 방황은 없어,
핏빛 선연한 항서를 보고서야
자신을 허락하는 미인.

그러나 엉겅퀴 같이 달라붙은 피곤으로
얼굴 붉힐 줄 모르는 이 시대의 무관심에
분노의 날을 세우는  당신,
아름다움의 끝을 잘라
도시의 황량함도 연민으로 포장하네.

석류빛 과거라도 들쑤셨나
낭자한 내 설움 빙자하여
자근자근 읽고 싶은 그대,
새들은 하늘의 번지를 안다는데
내가 사는 곳은 이름 없는 산동네
고통까지 붉게 태워 연기로 세들고 싶네.

하늘이 자궁을 열고 끝없이
불새를 날리고 있는 이 저녁
코 박고 쉬고 싶은 여체 같은 공간에
저 많은 촉수들이 침묵하는 까닭은
지상의 허물들이 모두 석방되어 승천한 때문일까.

하늘을 한 단계 올려놓은 그대지만
화려한 변신은 지독한 연모인 줄 모르니
사랑을 못 받아 핏발선 눈 사라지기 전에
네 가슴 속으로 쓰윽 손을 넣어
기어이 신음소리 듣고만 싶네.

 

 



겨울 부처


저 겨울바람, 이빨이 없네
잇몸만으로 웅웅웅 밀려다니며  
시려야 씨눈 여물고 통증 터져 꽃이 된다고
칭얼대는 가지마다 목이 쉬도록 얼를 뿐
이 없이 사는 불편 말하지 않네.

웅얼대던 바람도 틀니가 그리울 땐
불 꺼진 절집에서 기억 놓고 동안거 드니
홀로 어두워지지 못해 웅크린 저 나목들은
이젠 정말 쉬고 싶어 이파리 벗는다.

소쩍새 밤새 울어도 달은 기울고
인생은 술잔처럼 비어가니
추억을 얘기할 때 이빨은 감추시라
말 한마디 눌러 참아 더 큰 말씀 들이시라
득도한 바람의 뼈는 깨어나 설법도 하시는데,

보셔요
씨앗처럼 썩을 줄 몰라 생인손 앓는 님들
그물처럼 숭숭 뚫린 가슴이 말을 버리고  
몸으로만 설명하는 까닭을 아시려면
바람의 전화 받아 보세요.

겨울 부처로 환생하여 우우우 우웅
만물이 부처다, 나처럼 없어지면 안다
하시는 소리에
이제 이 겨울바람도 잦아지고
청빈한 가지들은 더욱 꼿꼿할 것이며
바람은 어떤 새에게도 긁혀 울겠지만
청정한 봄의 경전소리는 뿌리를 일깨울 것이니,

아, 내게도 온 것이네
원래는 있었으나 보이지 않은 까닭
찬란한 바람의 말 알아듣는 밤이.


이정모∙ 2007년 ≪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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