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35호(2009/가을)/신작시/빙하기 외 1편/임경섭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416회 작성일 09-12-21 00:31

본문

임경섭
빙하기 외 1편


움직이는 방, 배경은 사선으로
창에 달라붙는다 미리 매설된 도로를
붙잡고 있는 견고한 말뚝은 없다
한 번에 쏟아진 계절에 감춰진 길은
스스로 몸을 꺾어 메마른 절벽으로 우리를 데려간 적 없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의심스럽다
덜컹이는 방에 앉아 기우뚱거리는 머리들
녹아 없어질 것들을 의심한다

죽은 시간은 이미 췌장을 녹이며 몸 밖으로
눅눅한 비명을 흘려보낸다 유기당한 한 잔의 시간
젖은 손으론 시간의 혈흔을 감식할 수 없지
돌아온 계절이 온 몸 던져 대지를 얼리고 있는데
좁은 방 수런거림으로 존재하는 것들은
흔들면 흔드는 대로 간극을 배회하는 얼음처럼
차곡차곡 잠겨있다
깊이 잠긴 것들부터 녹는 법은 없다
똑같이 녹은 얼음들은 표면을 부유하다가
되는대로 씹혀 없어진다

창밖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새로운 역을 지날 때마다 듬성듬성 사라지는 사람들
기차가 멈출 때마다 찌―익―

빙하가 갈라지는 소리가 난다
갈라진 틈새에서 각자의 방을 찾고 그 안에 녹았다가
정착하지 못한 입들은 둥둥 떠다니며 주변을 배회할 것이다
온갖 것들이 섞이어 집에 돌아가는 길들은,

 

 

 


꿈꾸는 인큐베이터*


잠결에,
천장에 핀 곰팡이 보았을 때 문득
물방울들 작은 틈을 비집고 비집어
방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눅눅한 이불 위에 누워
곰팡이처럼 납작하게 번져가는 내가 보였다
폭우 속에 수장된 옥탑 안에
태아처럼 누워 무엇인가 한 겹 한 겹 몸을 저미어
벽 틈을 비비고 들어왔다 나가는 소리,
2층 주인집으로 새서울미니슈퍼로 김밥집으로 정육점으로
학성초등학교 정문으로 빗물들은 흘러가는데
왜 방문은 쉽게 제 틈을 벌려주었을까
곰팡이는 아래로 허공으로
텅 빈 시간으로
느긋하게 자라나다가 가끔씩 툭― 툭―
비릿한 내음을 떨구고,
주섬주섬 냄새를 받아먹고 석순처럼 키가 자라면서 느껴지는
찌릿한 성장통, 미숙아에게 그러했듯 탄생이면서
탄생이 아닌 고요한 석주!
오늘 이 방은 한 척의 인큐베이터,
나는 육지로 가고 있을 것이다
* 박완서의 소설 제목.


임경섭∙2008년 <중앙일보>로 등단.

추천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