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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미니서사/박금산/그 남자가 국경수비대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우리는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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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83회 작성일 20-01-1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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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미니서사/박금산/그 남자가 국경수비대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우리는 모르죠


박금산


그 남자가 국경수비대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우리는 모르죠



그는 이웃집 남자와 주차장 앞에서 만났다. 그가 말했다.
“저희 가족은 이곳을 떠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행복하게 사십시오.”
이웃집 남자가 말했다.
“떠나다니요?”
“이사를 합니다.”
“어디로요?”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러시군요. 돌아가는 것이니까 출국심사는 간단하게 진행되겠군요. 그렇겠죠?”
“아마도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나가는 것은 쉽지만 들어오기는 어려운 곳이 이 나라입니다. 다시 돌아올 계획이 있습니까?”
“휴가를 보내고 싶으면 올 수 있겠지만 살기 위해서 올 수는 없습니다. 직장 때문에 말입니다.”
“그렇군요. 조심히 여행하시기 바랍니다. 멕시코 쪽은 위험하니까 조심하셔야 합니다.”

“왜 위험하죠?”
“국경을 침범하는 자들이 많잖습니까. 그 사람들을 막는 게 제 직업이었습니다.”
“아, 그랬다고 하셨죠. 도움말씀 감사합니다.”
“그 근처에는 아예 접근하지도 마십시오. 여권 항상 잘 가지고 다니십시오.”
“네.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악수를 청했다. 이웃집 남자는 껌을 씹으면서 악수에 응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차가 마을 어귀를 벗어났다. 아들이 그에게 말했다.
“왜 옆집 아저씨와 말을 섞었어요?”
“마지막이니까.”
“절대로 말 안한다고 하셨잖아요. 너무 쉽게 태도를 바꾼 거 아닌가요?”
“나도 그러려 했는데 좀 안쓰럽더라. 이제 볼 일이 없잖니. 내가 쪼잔해 보여서 마음을 바꿨어.”
“무엇 때문에 마음을 바꿨어요?”
“알리 아저씨네 강아지가 마당에 들어오니까 그 집에 가서 초인종을 누르더라. 강아지가 왜 마당에 함부로 들어오게 만드느냐고 따지면서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더라고. 그것 보고 반했다.”
“반하다니요? 강아지한테 화를 내는 게요? 강아지한테는 관대한 게 여기 이웃들 특징이잖아요. 그런데 강아지가 들어왔다고 화를 내면 어떡해요?”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을 모두 동등하게 대하는 걸 보니까 기분이 풀리더라고. 나만 당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하니까 공평해서 감동적이더라.”
그는 말을 끊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1년 해외출장으로 나와서 ‘잘’ 살았다. 높은 나무와 깨끗한 호수가 일품이었다. 나쁜 기억이라고 한다면 이웃집 잔디밭에 반 발짝 들어섰다가 남자로부터 당장 꺼지라는 말을 들었던 것 하나가 가장 컸다. 도착했을 당시 친근하게 맞아주고,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사람이어서 고마웠기에 이웃집 남자의 반응은 황당하고 열 받았다. 그러나 아웃사이더로서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하는 처지에 보복할 방법이 없어서 매일 집을 나가고 들어갈 때마다 차안에서 이웃집 남자가 볼 수 없는 각도에서 중지를 세워 ‘퍽큐’를 날리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이웃이어서 가끔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인사를 피했고 가족들에게 남자를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남자가 신경질 내는 장면을 목격했다. 날이면 날마다 정원을 손봤는데 그날은 옆집 알리네 집 마당에 꽂힌 깃발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터넷 수리공이 마당에 매설한 선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꽂은 깃발이었다. 인터넷 회사 로고가 박혔고 어린애 장난감처럼 작았으며 색상은 눈에 띠게 알록달록했다. 그 중 하나가 이웃집 남자의 마당에 들어선 것이었다. 남자는 신경질을 부리며 깃발을 향해 퍽킹, 퍽킹, 삿대질을 했다. 삿대질에 열중하느라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는 삿대질의 끝이 어떻게 풀려나갈지 호기심이 일었다. 인터넷 회사에 전화를 걸어 사유지 침해 사실을 알리며 고소를 하겠다고 윽박지를 것인가? 정식으로 고소하는 문서를 법원에 보낼 것인가? 남자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처리할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잠시 후 남자가 행동을 취했다. 허리를 숙이고 깃발에 손을 뻗었다. 더러운 벌레를 잡아 패대기치듯이 던질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남자는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주위의 눈치를 살피면서 살며시 깃발을 뽑았다. 그것보다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깃발을 들고 선에 맞춰서 꽂았다. 그리고 남자는 모든 깃발이 한 방향으로 향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방향을 틀어 재배열했다. 입으로는 ‘퍽킹’을 연발했다.
그가 아들에게 눈으로 보았던 것을 이야기해 준 다음 이렇게 말했다.
“그런 것 보면 그 아저씨는 선에 강박이 있는 거야. 선을 넘어오면 안 되는 거지. 국경수비대에서 근무했던 것이 그 사람한테는 천직이었을 거야. 선을 보호하면서 그 사람은 행복했겠지.”
“정신병인가 보네요?”
“그런 것 같더라. 제일 힘든 사람은 당사자일 거야. 세상에 있는 선을 다 지키고 살아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니?”
“어쩌다가 그게 병이 됐을까요?”
“모르겠다만, 충격적인 일을 겪었겠지. 트라우마가 있을 거야.”
“고치면 되잖아요.”
“트라우마는 고칠 수 없으니까 병인 거야. 한번 만들어지면 없애기 힘들어. 그러니까 트라우마는 안 생기도록 조심해야 하는 거야. 한번 만들어지면 평생을 간다.”
“병원에서 못 없애요?”
“내 생각에는 못 없앨 것 같아.”
“돈 내고 병원에 가는데 의사가 못 해주면 안 되죠.”
“고칠 수 없으니까 큰 병인 거야.”
“사람들이 병원에 돈을 많이 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의사들은 치료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정신과 의사 선생님한테 연락해 봐야겠다. 누구 생각이 맞는지.”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
“아무튼 물어볼게.”


밤에 그는 메신저로 정신과 의사에게 연락했다. 사는 곳의 시간이 달라서 그에게는 밤이었고 정신과 의사에게는 낮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낮과 밤에 대해 얘기하며 안부 인사를 나눈 후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정신과 의사가 물었다.
--미국에서도 잘 지내시나요? 그곳 생활은 어떻습니까?
--귀국할 예정으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귀국요?
--네.
--귀국을 한다 하시니 벌써 일 년이 흐른 거군요. 시간 정말 빠르네요. 엊그제 가신 것 같은데.
--시간 참 빠릅니다. 종종 대화하고 싶었는데 시차가 있어서 포기했습니다.
--좋으셨겠어요. 주변에 해외에 갔다 오신 분들 대부분 우울증이 나아서 오시더라고요. 정신과 교수님 한 분 중에 지독한 무의욕 만사 귀차니즘에 빠진 분이 계시는데 해외에 갔다 오시더니만 삶의 활력이…….
--잘 쉬고 오셔서 그랬나 보네요. 선생님도 그럴 수 있는 안식년 있지 않나요?
--매년 재계약 비정규직입니다. 늙어 죽을 때까지 일해야 돈 버는.
--트라우마에 대해서 의문이 있습니다.
--네. 말씀해 보세요.
--아들과 대화하다가 ‘트라우마는 한번 만들어지면 힘들어지니까 안 생기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제가 맞게 말한 건가요? 트라우마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방법이 있다고 보시나요? 의학적으로 본질적인 문제일 것 같습니다.
--제거라는 단어는 무언가, 수술적 처치처럼 강제적 힘을 동원해서 떼어내는 건데, 그런 종류를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비슷합니다. 가령 최면 같은 방법으로 떼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거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였는데, 아들에게 트라우마가 안 생기도록 생활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 뒤에 다른 생각이 들었어요.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는 제거하는 것으로 치료를 완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어서 묻는 것입니다.
--정신과 치료에서는 사실 제거라는 말보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지금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덜 끼치게 하는 방법을 찾는다는 것으로 설명해야겠네요.
--트라우마를 없앨 수는 없고 현재에 영향을 끼친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되 영향이 덜 끼치는 쪽으로 유도한다는 뜻인가요? 그게 핵심인 것처럼 들립니다.
--그렇죠. 당사자들은 고통스러우니까요. 의학적인 대상을 벗어나서, 트라우마는 아주 일상이죠. 상처 없는 사람이 없고요. 트라우마라는 것이 결국 과거인데 보통 환자들이 생각하기로는 과거라는 것은 변할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는 고정된 팩트(fact)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과거라는 것은 항상 현재 시점에서의 재해석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만약 10년 전에 실연한 사람이 지금 다른 이성을 만나서 잘 살면 그 사건은 별거 아닐 거고, 지금 잘 못살면 10년 전 사건이 극심한 트라우마겠죠.
--트라우마는 극복하는 거지 지우는 건 아니라는 말이 맞나요?
--극복이라기보다는 이해하고 같이 간다라는 말이 좀 더 적절할 것 같아요.
--미국에서 이상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인가요?
--이민국에서 일했던 사람인데 라인에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는 의사에게 이웃집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의사가 말했다.
--트라우마로 비유해서 말하자면 해외출장 일 년이 그 남자에 대한 기억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겠네요. 그 남자 덕분에 남의 프라이빗 영역에 안 들어가려고 더 조심하면서 사셨다고 하셨는데 나쁜 기억을 통해 경계하고 조심하면서 도움을 받았다고 봐야겠죠. 기억의 중심에 그 남자가 있을 겁니다. 약을 먹는다고 해서 그 기억이 사라지지는 않죠. 이해하고 측은지심을 가졌으니까 용서를 한 것이겠죠. 과거의 트라우마는 그렇게 이해하고 같이 가야 하는 것이죠.
--왠지 작별하는데 엄청 서운하더라고요. 기억의 중심에 있어서 그랬던 것인가 봅니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뭔가요?
--남의 기억의 중심에 자신이 서 있다는 사실을 그 남자는 짐작도 할 수 없을 겁니다. 끝까지 여권을 잘 가지고 다니면서 조심하라고,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하는 걸 보세요. 자기 중심적입니다. 멕시코 국경에 있는 모든 이방인이 그 남자에게는 적입니다. 그 남자가 국경수비대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우리는 모르죠. 선을 지키기 위해 악행을 저질렀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네요. 그 사람한테서 욕먹고 사생활 침해에 각별히 조심하느라 신경 써서 행동해서 무사했습니다. 한편으로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이기적인 생각이었군요. 
--개인적으로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겠네요. 그 남자가 범죄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범죄 상황에서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피해자에게는 평생 고통스러운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인데 가해자들은 모르는 것이죠. 가해자를 죽인다고 트라우마에 해당하는 기억의 중심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 라인을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어떤 위협을 가할지 알 수 없잖아요.
--그렇군요. 저는 그 사람 덕분에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다행입니다. 무사하셔서.


두 사람은 다시 안부를 묻고 잘 지내라는 인사를 하면서 대화를 끝냈다. 그는 방문을 열었다. 여행지의 숙소에서 편히 잠든 가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라인 맨’ 덕택에 일 년을 무사히 보냈다는 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오리라 생각 못했다. 뜻밖이었다. 정신과적으로 보자면 굉장히 이상한 놈이었다. 그는 무사귀환을 축하하는 의미로 맥주를 마셨다. 맥주의 이름은 ‘Night Rain’, 밤비였다. 슈퍼마켓에서 무심코 샀는데 라인 맨을 생각하며 밤에 마시려고 보니 참 이상한 이름인 것 같았다.





*박금산 소설가. 여수 출생. 《문예중앙》으로 등단.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집 『생일선물』, 『바디페인팅』,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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