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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단편/권영임/도마뱀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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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신작단편/권영임/도마뱀 작전
권영임
도마뱀 작전
“어제 떠나셨어요.”
기꾸찌木口 회장이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박 이사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비서인 내가 모른다는 게 더 이해되지 않았다.
“김희정 씨 자리는 영업부로 옮겼으니 그리 아시요.”
박 이사가 가리킨 자리는 화장실 옆이었다. 컴퓨터도 없는 빈 책상을 바라본 순간, 발아래 카펫이 흥건하게 고인 핏물처럼 붉게 보였다.
“제 자리가 왜…….”
“나도 모르지 인사부에서 낸 발령이니까. 개인 물품만 챙겨서 바로 옮기도록 하세요.”
아침저녁 눈을 마주치던 동료들도 생판 모르는 사람 대하듯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었다. 씹다버린 껌 딱지처럼 바닥에 붙어 있어도 좋다, 손톱으로 시멘트 바닥을 파헤쳐서라도 떨려나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이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도우미 김희정이었습니다.”
악몽에 시달리다 꿈을 깰 때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던 말이 입속에서 맴돌았다. 텔레마케터를 그만 둔 뒤에도 가끔씩 꾸던 악몽을 대낮에 꾸고 있었다. 그 시절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퇴근하고 나면 부어오른 목 때문에 물도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부은 목보다 더 아픈 건 아무리 고운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를 외쳐도 이따위를 물건이라고 팔아먹느냐며 욕부터 들어야 하고, 성희롱 섞인 말을 들을 때조차도 상냥한 말투로 응대해야 하는 지옥 같았던 시절 말이다.
하루가 가는 시간만큼 뻘 속으로 한 발이 빠져들고, 또 하루가 지나면 다른 발이 빠져 들었다. 잠결에도 죽을 것만 같아 뻘 속에 빠진 발을 허우적거렸다. 안간힘을 쏟으며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관절염이 악화되어 더 이상 청소 일도 할 수 없는 엄마의 치료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팍팍한 생활은 넌덜머리가 났다. 가난은 뻘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아귀였다.
보석가게를 둘러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재형과 함께 보석 가게에 들러 예비부부로 대접을 받고 나면 고객에게 받았던 모멸감이 위로가 되었다. 목걸이를 골라 목에 걸면 환하게 드러난 목덜미가 한층 우아해 보였다. 반지를 끼고 눈앞으로 손가락을 활짝 펴 보일 때만큼은 초라해지지 않았다.
보석가게를 나와 액세서리 가게로 갔다. 재형의 호주머니를 털어 반짝이는 머리핀을 사서 꼽으면 그 다음 날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이미테이션은 이제 그만 사자. 결혼할 때 진짜 보석 해줄게.”
“지금 해줘.”
그에게 돈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늘 그렇게 말했다. 시무룩해지는 그의 표정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수석 주임인 재형은 내가 힘들어 하는 날이면 커피를 사준다, 밥을 사준다, 맥주를 사준다…… 온갖 제스처를 취하며 우울한 기분을 달래주려 노력했다.
텔레마케터 일은 잠시만, 정말 잠시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엄마의 희생으로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토익점수도 기업에서 원하는 만큼은 올렸고, 해외 연수도 다녀왔다. 갖출 건 다 갖추었다. 내가 원하는 대기업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나는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력서를 오십 번쯤 내고, 대여섯 번의 면접을 보러 갔지만 통과하지 못했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배경 좋은 아이들의 취업을 보면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없겠다는 막연한 불안이 밀려왔다.
눈높이를 낮춰 취업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선택한 이유는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눈을 낮추어 취업을 하게 되면 영원히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한몫을 했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때까지만 아르바이트로 견딜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되면서 절망은 깊어 갔다. 재형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인 건 그렇게라도 위안을 받고 싶어서였다.
휴일이면 보석가게를 들러 머리에 꽃핀을 꼽고 재형의 옥탑방을 오르면 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한 발을 빼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한낮의 태양이 달구어 놓은 옥탑 방은 선풍기를 아무리 세게 틀어도 흐르는 땀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미끈거리는 몸으로 재형과 몸을 섞었다. 고객이나 관리자로부터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은 날이면 보상이라도 받듯이 재형의 옥탑방을 올랐다. 그럴 때면 재형은 조금만 참으면 적금 타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을 거라며 희망의 말들을 선풍기 바람에 날려 보냈다. 적금을 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그의 어깨에 매달린 가족들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재형도 나도 피차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재형이 내 가슴에서 얼굴을 들었다. 돌아눕는 방바닥에 재형이 읽다만 신문이 펼쳐져 있었다.
- 미래의 문화산업에서 당신의 꿈을 펼치십시오. 다른 삶을 살겠다는 의지 하나면 당신은 이미 미래의 가족입니다. 세계로 나가는 기업, 한일문화공동기획사.
그때 신문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박스 광고였다.
재형이 팔을 뻗어 목을 감싸 안으려고 했다.
“비켜봐.”
그를 팽개치며 일어나 앉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재형이 물었다.
“왜 그래?”
그의 앞으로 신문을 내밀었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산업을 꿈꾸는 한일문화공동기획사! 도전하는 여러분의 패기만 보겠습니다. 연봉 오천만 원!>
“이력서를 내봐야겠어.”
“꿈도 야무지다. 넌 이 광고를 믿니? 신입한테 연봉 오천을 줄 정도의 회사면 이미 내정이 돼 있을 거야. 그렇게 당하고 아직도 모르겠어?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걸.”
*
재형이 말했던 짜고 치는 고스톱, 나만 모르고 저들만 아는 것들, 저들은 무엇을 짰을까.
빈 책상에 앉아 일하는 사람들을 멍한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도 기꾸찌와 박 이사가 짠 그물의 한 코일까, 무심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손가락 위에 볼펜을 올려놓고 빙빙 돌리는 것도 한계에 도달했다.
할 일도 없는데 정시에 출근하여 빈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쳐 들었다. 비서실에서 박 이사가 손짓을 한다. 장미꽃이 좍 깔린 듯한 붉은 카펫의 폭신한 느낌에 가슴이 저릿해진다.
“아직도 모르겠나? 회사에서 이만큼 해줬으면 알아서 나가줘야지.”
“뭘 해주셨는데요?”
“일도 안 하는데 월급을 주고 있잖아.”
“저는 일이 하고 싶거든요.”
“나원 참, 회장님도 안 계시는데 비서가 왜 필요해요?”
“그럼 애초에 사람을 왜 뽑았나요?”
“김희정 씨를 비서로 발탁한 것을…… 회장님도 나도 후회하고 있어요. ”
면접을 보러 오라는 문자메시지가 왔을 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서 볼을 꼬집어 볼 때처럼 후회한다는 박 이사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 볼을 꼬집었다.
기대하지 않은 합격통지서를 받고 히죽히죽 웃음이 비어져 나와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다. 마지막 면접까지 올라온 사람은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이었다. 마주잡은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실력에서는 꿀릴 것이 없었지만 집안 배경에서 밀려날 것만 같은 불안이 다시 엄습해왔다. 재계에도 정계에도 소위 말하는 배경 없는 내가 또 밀려나는 건 아닌지 대기실에 나란히 앉은 면접자가 신경이 쓰였다. 짧은 커트머리에 명품의 세련된 옷차림을 한 그들에 비해 풀어헤친 생머리와 할인마트에서 사 입은 바지 정장이 초라해 보였다. 실력에서는 꿀릴 것이 없다는 자신감으로 가슴을 죽 내밀고 턱을 치켜들었다. 재형이 감탄한 내 몸매는 그들 옆에서 기죽지 않아도 될 만큼 빼어났다. 내가 보아도 두 사람보다 외모에서는 뒤지지 않았다. 누가 봐도 잘 빠진 몸매와 하얀 피부에 성형하지 않은 자연미 넘치는 미모였다.
피 말리는 면접이 끝나고 최종 합격자로 결정이 났을 때 박 이사가 질문을 했다.
“김희정 씨가 뽑힌 이유, 뭐라고 생각하세요?”
실력, 외모, 몸매, 성격 수많은 단어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획 지나갔지만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최종 합격자 두 사람에 비해 김희정 씨는 어떤 청탁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응시한 점을 높이 샀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경제적으로 적당히 부족해서 그 안에 뭔가를 채우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 우리 기업하고 맞아 떨어지는 부분도 있고!”
역시 세상은 공정하고 공평하다는 생각에 그동안의 불만이 사라졌다.
“나, 합격했어.”
목소리가 떨려 재형에게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광화문 대로에 나가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눈요기로 만족하던 메이커 정장을 첫 출근 기념으로 사줄 만큼 재형에게도 내 취업은 기쁨이었다.
재형과는 토닥거리며 몸을 섞고, 화해를 하고, 결혼 얘기를 하면서 평온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며 사는 게 쉽지는 않았다. 기꾸찌가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은 출퇴근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마음이 고달프니 몸도 따라 고단했다. 신경이 예민해져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기 일쑤였다. 나 없는 지하방에 그가 와서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싫었고, 무슨 일로 늦느냐며 무심하게 건네는 말에도 짜증이 났다. 편안히 쉬고 싶어 돌아가라는 말에 섭섭함을 드러내는 재형이 귀찮았다. 재형은 내 얼굴만 보고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가 요구하는 대로 몸을 맡겨보지만 내 몸은 이미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반응하던 때와는 달랐다. 그가 하는 대로 몸을 맡긴 채 빨리 끝내라고 성화를 부렸다.
“너, 요즘 왜 그래? 맘 변한거야?”
“웬 트집? 피곤하니까 그러지.”
“전에는 안 피곤했니? 이제 알겠다, 왜 그러는지 그 사람 때문이지?”
허둥거리며 몸에서 내려온 재형은 기꾸찌를 들먹이며 억지를 부렸다. 기꾸찌 회장과 출장을 간다는 말에 회사를 그만 두라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해외출장을 단둘이 간다고?”
“비서니까 당연한 거지.”
“아, 내가 들은 말들이 괜히 떠도는 게 아니었어. 돈 많은 일본 사업가들이 비서를 구하는 게 아니라 현지처를…….”
순간적으로 재형의 따귀를 갈기고 말았다.
그가 먼저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헤어지자는 그의 선언에 가슴이 후련해지기까지 했다. 벌레 보듯 나를 바라보며 지하방을 나서는 재형을 예리한 면도날로 가차 없이 잘라냈다.
잠 못 이룬 눈으로 출근을 했다. 차를 들고 기꾸지 방으로 들어갔다.
“긴상, 어디 아픕네까?”
미스 김이라고 부르던 기꾸찌는 ‘김’자 발음에 어려움을 겪더니 ‘긴상’으로 불렀다. 아니라고, 좀 피곤해서 그렇다는 말을 남기고 회장실을 나왔다.
곧바로 박 이사가 뒤따라 나오며 요모조모 얼굴을 살폈다. 목덜미에 재형의 키스마크라도 있나 싶어 순간적으로 목을 감쌌다. 박 이사도 기꾸찌와 같은 질문을 할까봐 내가 먼저 변명을 했다.
“출장을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서 그렇죠.”
눈빛으로 몸을 훑어 내리는 박 이사의 눈초리보다 그의 웃음소리가 더 기분 나빴다.
출장을 떠나는 날까지 재형의 옥탑방을 찾아가지도, 재형이 내 지하방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보석가게를 순례하는 일도, 액세서리 목걸이를 살 일도 없었다.
기꾸찌는 한국의 게임시장을 석권하는 것은 물론 동남아의 시장까지도 넘보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기꾸찌가 한국에 거주하는 동안 그의 스케줄에 맞추어 생활하는 것이 내 임무이며 그가 없는 날에는 채택된 시나리오를 보완하거나 시나리오 공동작업에 참여하여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한국 지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기꾸찌에 대해 박 이사는 비서로서 알아야 될 정보라는 단서를 달아 좋아하는 음식, 음악, 취미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한국을 알고 싶다는 기꾸찌의 요청에 따라 고궁 나들이를 나섰다. 탑골공원을 거쳐 인사동으로 가는 길에 일본문화원 앞을 지났다. 그날은 수요일이었다. 노란색 조끼를 입은 할머니들과 마이크를 잡은 젊은 여성, 피켓을 들고 있는 남자들이 일본문화원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눈발이 흩날리는 11월초였다. 젊은 여성이 마이크를 잡고 구호를 외쳤다.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 사죄하라!
-전쟁범죄 사죄하라! 사죄하라!
-일본 정부는 국제법에 따라 배상하라! 배상하라!
기꾸찌는 발길을 멈춘 채 숙연하게 서 있었다.
“긴상?”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며 돌아보았다.
“나, 일본 사람으로서 한국 여성에게 사죄하므니다.”
“아!”
“전쟁 중에 끌려가 위안부를 지냈던 한국 여성들에게…….”
가슴이 뭉클했다. 일제강점기에 아시아 여러 나라에 저지른 죄에 대에 깊은 사죄를 하는 일본 학자도 있고, 양심적인 시민단체가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한다는 보도를 언론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소녀상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과 강제 동원이 없었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수요 집회에 참여하지는 못해도 그런 주장을 들을 때마다 분노하는 마음은 집회에 참여하고도 남을 만큼 컸다. 사죄한다는 기꾸찌의 발언을 듣고 나니 그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
고궁을 돌아 이른 저녁을 먹고 인사동을 지나 종로 쪽으로 걸어갔다. 기꾸찌를 바래다주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끝낼 시간이었다. 재형과 자주 가던 보석가게를 지날 때였다. 기꾸찌가 보석가게로 발길을 돌렸다. 기꾸찌가 가리키는 목걸이와 반지를 걸어보고 손가락에 끼워보았다. 기꾸찌는 내게 하나쯤 사줄 것 같은 제스처를 취했지만 재형이 그랬던 것처럼 눈요기만 하고 나왔다.
기꾸찌와 함께 보낸 다음 날이면 박 이사는 어디를 갔는지, 몇 시간 동안이나 함께 있었는지, 몇 시에 헤어졌는지까지 세심하게 확인을 했다. 보석상에 들렀다는 말에 액세서리 머리핀을 사듯이 가볍게 내뱉었다.
“하나 사달라고 하지 그랬어요.”
“사 달라고 하면 사주나요?”
나도 가볍게 되물었다. 내 물음에 박 이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태국 출장 스케줄이 잡히고 가장 바쁜 건 박 이사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일정을 살폈다. 출장 당일에는 인천공항으로 가겠다는 말에 회장님 아파트로 가서 모시고 가야지 무슨 말이냐며 비서로서의 자질을 운운하기도 했다.
기꾸찌의 아파트에 도착하니 박 이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사는 아파트가 오십 평도 넘어 보였다. 차나 한 잔 하고 가자며 박 이사는 기꾸찌와 마주 앉았다. 처음 방문한 집에서 커피 잔을 챙겼다.
“회장님, 김희정 씨가 꼭 이 집 안주인 같습니다.”
“아하! 그렇스모니까.”
기분이 상하고 불쾌한 발언인데 모른 척 흘려들었다. 유난히 하얀 피부, 약간 튀어나온 앞니 탓만은 아닐 게다. 일본인이라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외모였다. 기꾸찌가 아무리 영양 좋은 얼굴에 젊어 보이는 동안이여도 사십이 넘었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씩 웃을 때는 수줍은 소년처럼 순수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짝이었다.
“긴상, 긴상도 오세요.”
나는 내 몫의 커피를 타서 기꾸찌의 맞은편에 앉았다.
박 이사는 안주인을 대하듯이 정중하고 깍듯했다. 공항에 도착한 박 이사는 회사에서 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
“이번 출장에서 희정 씨가 해야 할 일은 회장님 모시는 일이라는 건 알죠?”
“귀에 못이 박히겠어요. 그만 하셔도 다 알아들었어요.”
방콕의 돈무왕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태국의 지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 가방을 차에 실은 채 기꾸찌 회장과 도착한 곳은 게임사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55층 건물의 국제 보석 중개상이었다. 사인을 하고 검색대를 통과해서 안내를 받은 곳은 보석 가게였다.
기꾸찌는 다이아몬드 세트를 꺼내 보라고 했다. 매장 직원은 내 손가락을 잡아 당겨 반지를 끼워주었다. 나는 자동인형처럼 반지 낀 손가락을 기꾸찌 앞으로 펼쳐 보였다. 기꾸찌는 뷰티풀을 외치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민소매에 깊게 파인 옷을 입어 훤하게 드러난 목을 바라보던 매니저가 기꾸찌 앞으로 내 몸을 돌려 세웠다.
“한번 채워 보세요.”
머릿결을 옆으로 돌려 목걸이의 고리를 채우며 스치는 그의 손이 끈끈했다. 어쩜,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 세트를 차례로 걸쳐 보았다. 목에 걸어보고 손가락에 끼워보고 사줄 것처럼 온갖 폼을 다 잡아놓고는 한국의 보석상에서처럼 기꾸찌는 보석상을 그냥 나왔다.
“긴상이 원하면.”
기꾸찌의 혼잣말이었다. 사지도 않으면서 보석상에는 왜 자꾸 가는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내가 원하면 사준다는 것인지도 묻지 않았다.
호텔에 도착한 지사장은 깍듯한 인사를 남기고 돌아갔다. 기꾸찌 회장과 내가 묵을 룸은 나란히 있었다.
양치질을 하고 나니 피곤이 몰려왔다. 나는 머리를 쳐들고 샤워기 앞에 섰다. 쏴아! 물줄기가 얼굴을 때리고 모아진 가슴 사이를 스쳐 배꼽으로 흘러 내렸다.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 한 매장에서 보았던 보석들은 내 것일 수 없었다. 보석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것들을 휘감으며 손가락을 펴 보이고 가슴을 내밀며 살 수 있는 날들이 있을까. 옥탑방에서, 지하방으로 다시 전세방으로 전전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샤워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얼굴에 스킨을 톡톡 두드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긴상, 건너 오시겠스무니까.”
나는 옷차림을 어찌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 편한 옷을 입은 채 그의 방으로 갔다. 나이트가운만 걸친 기꾸찌가 맥주와 안주를 차려 놓았다.
낮은 소파에 마주 앉은 기꾸찌의 나이트가운 사이로 털 하나 없는 허연 다리가 드러났다. 목이 뻐근하면서 침이 말랐다.
“긴상? 남자 친구 있습네까?”
“네?”
“오후! 곤란한 질문 했습네까?”
잠시 재형의 마지막 모습이 스쳐갔다.
“없습니다.”
“그렇스모니까? 누구랑 삽네까?”
“혼자 살아요.”
관절염에 고생하는 엄마를 한동안 찾아가지 못한 자책감이 잠시 들었다. 자수성가한 기꾸찌가 집안 좋은 경쟁자 대신 나를 발탁했다는 박 이사의 말이 생각났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했다. 대뜸 야! 시팔, 너 똑바로 해, 알았어? 욕부터 쏟아내는 거친 남자로부터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로 듣기만 해야 하고, 억지 부리는 사모님에게 온갖 굴욕으로부터 날 해방시켜 준 기꾸찌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긴상이 나를 많이 도와주세요. 하면서 맥주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얘기를 하는 동안 술기운이 올랐고, 어느 정도 긴장도 풀렸다.
“긴상, 돌아가는 길에 보석상에 들릅시다.”
“아!”
그만 자야겠다며 기꾸찌가 일어섰다.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사말에 그가 가볍게 어깨를 안았다. 그 짧은 순간에 귓불에 닿는 그의 입김은 뜨거웠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지사장을 통해 기꾸찌가 저녁 때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정장을 차려 입고 기꾸찌를 기다렸다. 해질 무렵 돌아온 기꾸찌는 고리 신발에 무릎까지 내려 온 헐렁한 바지, 앞 단추를 풀어헤친 원색 셔츠의 차림이었다. 나에게도 간편한 차림을 요구했다. 핫팬츠와 가슴이 드러나는 끈만 달린 탑으로 갈아입었다.
오우! 원더플 예쁩니다.
나는 어깨에 숄을 걸치고 기꾸찌를 따라나섰다.
차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는 지사장의 옷차림은 깔끔한 정장이었다. 적당히 바람이 부는 야외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 두 사람의 유창한 일본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소외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내 존재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럴 것이면 차라리 혼자서 저녁을 먹으라고 할 것이지 바짓가랑이에 붙은 풀씨처럼 달고 와서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대화가 끝나고 나자 기꾸찌가 돌아보며 씩 웃었다. 그 웃음에 서운했던 마음이 일시에 사라졌다.
“긴상, 이제 좋은 데로 갑시다.”
기꾸찌가 구경 가자던 야시장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어질어질 내 정신이 아니었다. Sex dance, Sex Music, Sex, Sex…… 거리는 온통 흥분의 도가니였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은 태국의 여성, 아니 소녀라고 하는 것이 더 옳았다. 노란 털이 가슴팍과 손등에 숭숭 돋아난 서양 남자들과 팔짱을 끼고 쌍쌍이 걸어가거나 배꼽이 들어난 옷차림의 소녀들로 거리는 가득했다. 손님을 잡아끄는 붉은 등의 술집 앞에서 유혹의 몸동작을 하고 있는 소녀들, 이곳은 국가도 민족도 구분하지 않고 오로지 밤을 즐기려는 남자들이면 환영받는 곳으로 보였다.
권투경기를 즐길 수 있는 곳에 지사장은 자리를 마련해주고 맥주와 안주를 가져왔다. 쇼가 분명한 권투를 보면서 나 자신도 거리의 흥분에 휩싸여 상대가 넘어질 때 고함을 질러댔다. 탑 위에 걸쳤던 숄은 이미 어깨를 벗어났다. 기꾸찌의 손이 팔과 어깨와 머릿결을 자연스럽게 스쳐갔다. 지사장은 맥주가 떨어지면 맥주를 가져다주고, 안주가 떨어지면 어디에 있다 나타나는지 금세 안주를 주고 눈앞에서 사라졌다. 캔 맥주를 들어 공중에서 부딪히며, 뱀 쇼를 볼 때는 기꾸찌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기도 했다.
호텔에 돌아와 샤워를 막 끝내자 기꾸찌의 전화가 왔다. 그의 룸으로 갔을 때 전날의 차림으로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놓고 반가운 몸짓으로 나를 맞았다.
“긴상, 피곤하무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야시장에서 느꼈던 흥분으로 기분이 들떴다고 해야 옳았다. 긴상은 어떤 옷을 입어도 예쁩니다. 나, 긴상 좋아요. 그러면서 내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소파는 비켜 갈 곳도 없었다. 그가 나를 안았다. 침대에 눕히더니 이마에서부터 혀를 내밀어 더듬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의 입술은 배꼽 주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거부하는 내 몸짓이 오히려 그를 더 감질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은 내 배꼽 아래까지 내려왔다. 나는 보석상의 보석들과 그것들을 넘어 더 큰 미래를 생각했다. 내 몸 위에서 숨을 헐떡이는 신음소리를 들으며 잠깐 재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샤워를 마치고 기꾸찌의 옆자리에 누웠다. 기꾸찌는 이마에 입술을 살짝 대더니 속삭였다.
“긴상, 나는 둘이서는 잠을 못 잡네다. 돌아가세요.”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거역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그의 목에 감았던 팔을 풀고 민망해진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내 방으로 돌아와 혼자서 잠들었다.
돌아오는 날 보석상에 들르겠다던 기꾸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지사장이 나타났다. 그는 가방을 챙기라는 몸짓을 했다. 짧은 일어 실력으로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그가 어느 식당으로 데려갔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뱃속은 저녁을 먹을 수도 없었다. 식사를 끝내자 공항에 나를 내려놓고 항공티켓을 내밀었다. 그리고 가버렸다.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자 좌석에 앉아 있는 기꾸찌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반가움에 그의 곁으로 쫒아갔다. 그가 웃으며 급한 일이 생겼다고 했다. 어떤 말도 물어볼 수 없었고, 그로부터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
설핏 들었던 잠이 깼다. 발끝까지 파고드는 냉기는 반바지에 민소매를 입고 다닌 지난 삼 일간이 무색할 만큼 혹독했다. 조그만 창으로 보이는 검은 바다는 먹장구름을 몰아가고 있었다. 비행기는 바다 위에 정지한 것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의자의 오른쪽에 머리를 기댄 기꾸찌木口 회장은 명상을 하는지 잠을 자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담요를 목까지 끌어 올리고 기꾸찌의 반대편으로 머리를 기대었다.
회오리바람이 몰아친다면 비행기의 창문까지 파도가 튀어 오를 만큼 바다는 가까이 있었다. 갑자기 몸서리를 치며 비행기가 부르르 흔들렸다. 얼떨결에 기꾸찌의 팔을 잡았다. 기꾸찌가 눈만 살짝 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슬며시 손을 걷어냈다. 지난밤 뜨거운 입김을 귓불에 품어대던 사람이었던가 싶을 만큼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색색거리는 기꾸찌의 숨소리를 들으며 밝아오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바다 위를 날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내 착각이었다. 비행기 아래로 끝없이 출렁이던 검은 파도는 구름이었다. 그래, 구름을 바다로 착각했던 것처럼 서울에 도착하면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가 있을 거야, 괜찮아 질 거야. 가슴을 토닥거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반가운 얼굴로 박 이사가 먼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기꾸찌는 돌아보지도 않고 앞서서 걸어갔다. 내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박 이사는 기꾸찌의 손짓에 쏜살같이 달려갔다. 기꾸찌와 함께 차를 타야 하는지 그냥 알아서 가야 하는지 분위기 파악이 되지 않았다. 기꾸찌가 박 이사를 향해 말을 하고 있었다.
“김희정 씨, 내일 회사에서 봅시다.”
집으로 가는 공항버스 두 대가 내 앞을 지나쳐 가버릴 때까지 칼바람 몰아치는 벤치에 앉아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날 두고 가버린 박 이사가 다시 차를 돌려 행여 내 앞에 나타날까 봐 기다리는 마음으로.
지하방으로 돌아와 씻지도 못하고 차가운 방바닥에 몸을 부렸다. 추운 날씨에 며칠간 비워 놓은 바닥은 보일러의 온도를 최고 수치로 올려놓아도 온기가 돌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빨을 덜덜 부딪치며 나도 모르게 재형의 휴대폰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마지막 숫자를 누르지 못했다.
나와 잠자리를 원할 때만 기꾸찌는 내게 상냥한 미소를 보냈다. 그의 기분에 따라 나는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렸다. 그가 저녁을 먹자고 하는 날은 나를 원하는 날이었다. 아파트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그의 침대에서 일을 치르고 나면 둘이서는 잠을 잘 수 없다는 그의 말에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태국에 언제 가느냐는 질문에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태국까지는 아니더라도 보석가게는 그와 함께 들르고 싶었다. 이 정도면 보석 정도는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형과 함께 들리던 보석가게로 그를 데려갔다. 얼떨결에 따라나선 그가 보석가게 앞에서 몸을 돌려 나갔다. 말이 없어진 그를 따라 저녁도 굶은 채 그의 아파트까지 왔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감탄을 하며 내 벗은 몸을 쓰다듬었다. 사랑받고 있는 여자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일을 치르고 나자 나는 몹시 배가 고팠다. 그 역시 배가 고프지 저녁을 먹자며 옷을 입었다. 그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차를 마시며 보석이 갖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가 웃었다.
“긴상, 보석은 긴상의 월급으로 사세요.”
*
비서실에서 한 여자가 고개를 쳐들고 또박또박 걸어 내 앞을 지나 화장실로 들어가고 박 이사가 회의실에서 얼굴을 내밀더니 나를 불렀다.
“김희정 씨, 회장님이 왜 일본으로 가셨는지 아세요?”
“그걸 제가 어찌 아나요?”
“김희정 씨가 회장님께 부당한 것들을 요구해서입니다.”
아무리 그런 적 없다고 소리쳐도 박 이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김희정 씨가 좋아서 꼬리치고 무슨 말을 하느냐는 거였다. 이쯤에서 그만 두는 것이 좋을 거라며 박 이사가 사진을 내밀었다. 기꾸찌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는 사진, 활짝 웃으며 캔 맥주를 부딪치는 사진, 적나라하게 들어난 내 몸에 바짝 붙은 기꾸찌의 사진…….
“이 사진들은 다 설명할 수 있어요.”
“그럼 이것은 어떻게 설명하지?”
짧지만 강력한 영상이었다.
호텔 침대에 누워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기꾸찌의 뒤통수, 금방 신음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황홀한 표정의 내 얼굴, 침대에 걸터앉아 환하게 드러난 가슴과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기꾸찌…….
“이래도 회장님이 유혹했나?”
그의 음성은 부드러웠지만 한없이 빈정거리는 말투였다.
“회장님이 꽃뱀은 사양하시겠대. 나는 모르는 것으로 하려고 했는데 내 입에서 꼭 이런 말까지 나와야 하겠어? 근데 가슴 하나는 끝내주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박 이사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내가 이쯤에서 하나 말해주고 싶은 게 있는데 김희정 씨가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연봉을 오천이나 주겠어. 회장님 잘 모시는 대가로 주는 돈이라는 걸 모르겠나? 눈치가 없어도 그렇지. 그렇게 앞뒤 분간이 안 되는 거냐고?”
“그게 무, 무슨 뜻인가요?”
“말 그대로 회장님은 이미 대가를 다 치렀는데 자꾸 이것저것 요구하면 곤란하다는 거지.”
온통 붉은 카펫이 깔려 있는 회의실의 넓은 공간에 박 이사와 마주 앉아 있지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김희정 씨가 그만두지 않는 한 회장님은 돌아오시지 않아.”
박 이사는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려버리겠다는 협박을 했다.
“그렇게 하세요.”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내 태도에 박 이사가 정중해졌다. 소리 나지 않게 붉은 카펫을 걸어 나가던 그가 문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추며 돌아보았다.
“얼마면 될까?”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이사님, 이건 어떠세요?”
박 이사 목소리가 내 휴대폰에서 흘러 나왔다.
“뭐야? 이건?”
“혹시 몰라서 녹음했어요.”
“그걸 뭐하려고?”
“뭘 하든 이사님께서 아실 필요는 없으시구요. 이거나 한 번 읽어 보시죠? 틈틈이 써오던 시나리온데.”
긴 회의실 책상 끝에 봉투 하나를 올려놓았다. 일그러지는 박 이사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창문에 햇살이 사라지고 건너편 건물의 불빛이 비칠 때쯤 나는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나왔다.
박 이사에게 건네준 시나리오는 〈도마뱀 작전〉이다. 첫째, 내가 유혹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내 그물에 걸리도록 한다. 둘째, 그물에 걸릴 때마다 점수가 올라간다. 셋째, 상대방이 내 작전을 알아차리고 내게 그물을 던지면 2점이 올라간다. 넷째, 덫에 걸려 빠져 나오지 못하면 게임이 아웃되고, 마지막으로 내 꼬리를 잘라 그에게 덮어씌우면 게임에서 이긴다.
*권영임 2009년 《한국평화문학》에 단편소설 「침묵」으로 신인상 수상. 사무직 여사원의 성차별을 고발한 에세이 『미스 김, 시집이나 가지』. 장편소설 『파가니니의 푸른 일기』. 창작집 『키스하러 가자』. 세월호 참사를 다룬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공저)가 있다. 현재 (사)잡지협회교육원 전임교수. 『도서출판 바람꽃』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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