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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책·크리틱/김요섭/물방울의 진폭―김신용 시집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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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29회 작성일 20-01-1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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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책·크리틱/김요섭/물방울의 진폭―김신용 시집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김요섭


물방울의 진폭
―김신용 시집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너도…… 비는…… 하늘에서…… 땅으로만 내린다고 믿고 있지?

-「비의 가시 - 적滴·21」


비가 내리는 밤, 인도를 걷다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던 차가 코너를 도는 순간을 유심히 볼 때가 있다. 내가 걷지 않는 길을 밝히던 불빛이 고개를 돌려 내 걸음 위를 침범하는 순간은, 그 불빛을 위에서 아래로 찢으며 내리는 빗줄기가 유독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수직으로 내려꽂히는 빗방울의 하강을 눈으로 쫓는 순간이 내게 가장 선명한 비의 이미지다. 그 하강의 운동을 비의 속성이라고 여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비는, 비가 되어 내리는 물방울은 아래로 움직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기의 수증기가 물방울로 응결되기까지, 그 물방울이 비가 되어 내리기까지 바람을 따라서 위와 아래로 수없이 움직인다. 이 물방울의 진폭은 비가 단지 하늘에서 땅으로 하강하는, 한 방향으로만 작동하는 힘이 아님을 보여준다. 김신용이 그의 시집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걷는사람, 2019)에서 담아내고 있는 비 역시 그렇다. 하강하며 부딪쳐 무너지지만, 절망으로 떨어져 내리지만은 않게 하는 어떤 단단함을 그는 빗방울에서 발견한다.
물방울의 진폭은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반복되는 움직임 속에서 그려진다. 그 상승과 하강의 움직임은 물방울이 점차 커지다가 더는 바람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순간에 급속의 하강으로 지상에 내려꽂히며 끝난다. 그 추락하는 물방울은 지상에 닿으면 표면장력으로 붙잡아 두었던 자신의 형태가 산산이 조각난다. 그렇게 추락은 스스로를 지켜왔던 뼈대가 무너지며 그 형체를 잃어버리는 경험이다.


고래 뱃속을 다녀왔다 한번 빠져들면 사람의 형체가 지워지는 곳
(중략)사람이 죄가 되고 형벌이 되는 곳이어서, 아직도
가파른 계단에서 사람이 굴러떨어지고, 사람이 굴러떨어져
넋의 척추를 부러뜨리는, 넋의 척추를 부러뜨려
살아 있는 사람을, 살아 있는 시체가 되게 하는……


―「고래 뱃속 - 적滴·3」 부분


고래 뱃속으로 추락하는 사람의 몸은 그 형체가 지워진다. 형벌을 받듯이 추락하며 부서지면서 사람의 몸은 시체가 되고 만다. 사람을 시체로, 그 뼈대를 부러뜨리고 형체를 지워버리는 추락의 운동 뒤에 남겨진 것은 모순적이게도 ‘살아 있는 시체’다. 살아 있는 시체의 모순은 형상의 상실과 죽음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시인은 오히려 추락에 의한 형상을 상실할 때 사람이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굴러떨어진 사람이 사람을 벗”고서 “사람으로 새롭게 사람의 형체를 만드는”(「고래 뱃속」) 곳이 추락의 공간인 고래 뱃속이다. 시인은 추락에서 죽음과 절망의 과정으로 단정하는 대신에 새로운 형체로 돋아나는 가능성을 품은 순간으로 다시 쓰려고 한다.
아무리 떨어져도 끝이 닿지 않는 추락의 순간을 재생의 가능성으로 전복하는 시인의 시선이 그 뼈가 부러지는 고통에 눈을 감는 것은 아니다. 상처 입고 비명 지르게 되는 그 고통의 강도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부러지고 난 뒤에도 여전히 단단한 뼈가 남아 있음을 응시하는 것이다. 추락으로 뼈가 부서진 뒤에도 남는 뼈, 그 뼈가 되어주는 것은 바로 물이다.


무슨 추락이듯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물의 뼈가 마치 비상飛翔이듯 생의 척추가 되어주고 있는 상상……, 이 상상만으로 모든 눈빛은 직립한다. 이 직립이 생의 의미라고 생각하는 눈빛 또한 빛난다 추락이 비상이며 비상이 추락인 날개


―「물의 뼈- 적滴·20」 부분


추락하는 비가 그리는 수직의 하강 운동을 생의 척추를 세우는 직립으로 되돌려 놓는 상상이 물의 뼈를 만들어낸다. 추락과 비상의 경계를 흐려 놓는 “상승과 하강의 곡선이 서로 마주치는 곳”(「물의 뼈」)에서 그 진폭의 결과로 단단해지는 그 물의 뼈가 부러진 사람의 뼈를 대신해서 새로운 사람의 형체를 빚어낸다. 빗방울의 진폭에서 시인이 찾아내는 그 단단함은 고통으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을 감내해야만 자라나는 것, “비는…… 사람의 몸속에서/돋아나”는 “날카로운 가시”(「비의 가시」)와 같다. 그 고통을 견디어내는 결단은 “한없이 떨어지고 있으면서”도 “땅에 스며들면 다시/날아오르리라는 믿음”(「나뭇잎 뼈」)에 의해서 품을 수 있다. 그 믿음을 품고 있기에 시인은 “아무도 자신의 불행에 눈길을 주지 않는데도, 세계의 무관심”에도 “그토록 다정하게/마음을 연”(「동태」) 상태로 이를 견디어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단단한 믿음은 대체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가? 그 믿음의 기원은 다시 진폭을 그리다가 물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에 담겨있다.
추락과 비상을 겹쳐놓으며, 상승과 하강의 곡선이 마주하는 순간을 응시함으로써 시인이 이끌어내는 희망의 가능성은 떨어짐의 결단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힘과 관련되어 있다. 추락으로 인해 형체를 산산이 잃고 난 뒤에 다시 새로워지는 그 부서짐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은 다시 비상하리라는 믿음의 힘이다. 상승과 하강의 서로 다른 운동을 겹쳐놓을 수 있었던 것은 물방울이 결코 하나의 얼굴만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안도(?)했었다 은어는 언제나 두 개의 얼굴을 가지므로
거울의 뒷면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또 하나의 얼굴을 숨기고 있으므로
(중략)그래, 그렇게 두 개의 물방울이 겹쳐도, 하나의 물방울이 되는
맑고 투명한 표면장력을 보아라


상처이면서 결코 상처가 아닌 얼굴을 한, 또 하나의 상처를……


―「물방울 유희-적滴·32」 부분


비는 물방울이, 셀 수 없는 각각의 물방울들이 떨어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떨어지는 하나씩의 물방울은 실은 하나가 아니라, 표면장력에 의해서 여럿의 물방울 겹쳐진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의 물방울은 여러 얼굴을 가질 수 있고 “그속에는 결코 놓칠 수 없는 가느다란 희망의 끈이 매달려 있”(「물방울 유희」)는 것이다. 한 물방울의 추락은 한 물방울만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얼굴을 겹치고, 서로의 상처를 겹치는 우리들의 추락이다. 상승과 하강의 진폭을 그리던 물방울의 무게를 바람이 더는 견딜 수 없는 순간은 다른 물방울을 끌어당기는 표면장력에 의해 하나가 우리로 이어질 때 비가 되어 내린다. 그렇게 하나가 아닌 우리가 “추락은 예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단호한 선택”(「멸치들」)으로 받아들일 때 “스스로를 떨어뜨린다는 것, 그것이 어찌 날개가 아니랄 수 있을까”(「마른 꽃」) 그러나 “그러나 나만은, 내 집만은 안전할 것이라는…… 그 어떤 재난도 남의 일이라는…… 결코 내것이 아니라는” 태도로 우리를 품으려고 하지 않을 때는 “한 치 앞이, 낙하”고 “한 치 앞이, 추락”(「허영청에 들다」)일 뿐이다.
김신용이 추락의 순간에서 발견하는 희망의 가능성은 오직 하나의 나로 살아가지 않으려는 신념과 결단에 의해서 단단해진다. 시인은 한 사람, 하나의 얼굴만을 한 물방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속에 여러 얼굴을 품고 있다. 여럿을 품은 하나로써 살아가기 위해서 시인은 “맺힌 자리에 또 맺히는, 저 응시의 표면장력”(「서시」)으로 부서진 형체를 새롭게 만들어 간다. 그래서 하나의 무거운 물방울이 되어 내리는 비의 추락은 결단이 품은 윤리이며, 윤리가 품은 결단이다. 그렇기에 “교환 가치가 없는 것은 것은 아무 쓸모가 없는, 잉여가 되는 시대”에 “시가 저들에게 빵 하나 햄버거 한 개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일까”를 묻는 시인의 “살 한 점 없이 부끄러”(「앵두」)운 마음이 거센 비가 되어 내릴 수 있다. “저 떨어짐의 무거운 질량”(「대추씨에 관한 소고小考·1」)이여.





*김요섭 2015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요즘비평포럼 기획 참여, 과자당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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