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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고전읽기/권순긍/양반의 위선과 권위에 대한 신랄한 풍자, 『배비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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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고전읽기/권순긍/양반의 위선과 권위에 대한 신랄한 풍자, 『배비장전』
권순긍
양반의 위선과 권위에 대한 신랄한 풍자, 『배비장전』
요즈음 강남의 ‘버닝 선Burning Sun’ 게이트와 김학의 별장 성접대 사건, 장자연 사건들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그 종착점을 알 수 없게 권력과 돈과 성性이 타락의 덩어리가 되어 질주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여성의 육체가 도구화 되어 마치 물건처럼 거래되는 추악한 실태가 그들 권력인사나 인기연예인들의 모임에서 ‘민낯’으로 드러나고 있다. 진정한 영혼의 만남에 수반되어야 하는 성이 왜 이렇게 추악한 모습으로 변질된 것일까? 분명한 것은 아름다운 남녀의 성이 너무나 가볍게(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처럼) 도구화 되고 대상화되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유흥과 ‘성접대’의 추악한 자리가 있었으니 새로 부임한 지방관들이 기생들을 동원해 벌이는 이른바 ‘도임연到任宴’이었다. 요즘으로 보면 ‘부임환영회’인 셈인데, 예전 지방관이 새로 부임하면 관아에 속한 기생들과 질탕하게 놀고 마음에 드는 기생을 골라 수청을 들이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다고 한다. 환영식 치고는 희한한 경우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도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창기들과 방탕하게 노는 것은…… 백성의 수령된 자는 결코 창기와 친해서는 안 된다.”고 할 정도로 비난했지만 “관리가 창기를 끼고 노는 데 대해서는 법률이 지극히 엄하다. 그러나 이미 기강이 해이하고 어지러워 습속이 굳어진 지 오래 되었으므로 이제 갑자기 이를 금하는 것은 소동을 일으키는 일이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방관의 기생놀음은 권력을 이용해 욕망을 쫓는 당시의 관행이었다. 판소리로도 불렸던 『배비장전裵裨將傳』은 바로 여기에 얽힌 이야기다.
경직성을 교정하기 위한 웃음
『배비장전』은 판소리 열 두 마당 속에 포함 돼 있던 판소리이며, 여색을 멀리 한다고 장담하다가 기생에게 망신당하는 내용의 세태소설이다. 현재 창唱은 전하지 않고 소설만 전한다. 애초 『배비장전』은 구대정남(九代貞男, 집안 대대로 9대에 걸쳐 외간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남자)이라고 자처하던 배비장이 제주 기생 애랑의 계교에 빠져 온갖 조롱을 다 당하고 궤 속에 갇혀있다 벌거벗은 몸으로 동헌마당에 나와 여러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는 이야기로, 여색女色을 멀리한다고 했다가 오히려 기생의 계교에 빠져 망신을 당한 작품들은 이외에도 「정향전」, 「지봉전」, 「종옥전」, 「오유란전」 등이 더 있다. 대부분 감사(혹은 목사)와 기생이 공모하여 여색을 멀리하는 남주인공을 아주 여자에 푹 빠지게 하여 호색적 성격을 폭로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여자를 가까이 하고 안 하고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를 멀리하고자 하는 사람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을까? 이는 어쩌면 어떤 사회나 집단이 요구하는 관례에 비추어 보아 ‘경직성’을 교정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른바 뻣뻣한 인물에 대해 “손을 좀 본다”는 것이다.
『배비장전』을 보면 새로 제주목사가 부임해서 기생들과 같이 질탕한 도임연을 거행해야 하는데 이 자리에 행사를 주도해야 할 ‘예방비장’인 배비장이 ‘구대정남’을 자처하면서 불참하겠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더구나 예방비장의 자리는 관아의 기생들을 관장하는 자리여서 가장 앞장서서 질탕한 분위기로 이끌어야 할 주모자가 빠진 것이니 문제가 심각하다. 그 행위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집단을 위해서 이런 경직성은 교정돼야만 했다. 자신들의 행위가 공식적으로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경직성은 어떻게 교정시킬까가 제주목사와 관인들의 과제가 된 것이다.
그래서 드디어 제주목사는 기생들을 불러 들여 배비장을 혹惑하게 하라고 지시하기에 이른다. 관장이 앞장서서 타락의 길을 주도한 셈이다.
배비장이 (행수기생인) 차질예 불러 분부하되,
“네 만일 지금 이후로 기생 년들을 내 눈 앞에 비추었다가는 엄한 매로 다스리리라.”분부할 제,
이런 곡절을 사또가 잠깐 들으시고 일등명기들을 다 부르신다...
사또 분부하시되,
“너희 중에 배비장을 혹하게 하여 웃게 하는 자 있으면 상을 크게 줄 것이니, 그리할 기생이 있느냐?”(현대역 필자)
여색을 멀리하겠다는 배비장의 태도는 관아를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동원될 수 있는 것이 경직성을 교정하는 ‘웃음’이다. 뻣뻣한 성격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웃음은 내키지 않는 행위일수록 더욱 더 그것을 수용하겠다는 긍정의 표시이며, 동참하겠다는 서약인 셈이다. 그래서 사또는 기생들에게 배비장을 한 번 크게 웃게 하라고 지시하게 된다.
그 뒤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은 제주목사와 기생 애랑의 공모에 의해 진행된다. 화창한 봄날 한라산 꽃놀이를 가서 목욕하는 애랑의 모습을 배비장의 눈에 띄게 하여 혹하게 한 다음 제어할 수 없이 여색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배비장을 웃게 하여 집단으로부터의 이탈이나 경직성을 제거하고자 하는 제주목사의 의도는 애랑과 방자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어긋나기 시작한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배비장은 웃는 것이 아니라 만신창이로 전락해 웃음거리가 되어 간다. 말하자면 웃음의 주체가 아니라 웃음의 대상이 되어간 셈이다.
배비장의 경직성을 교정시키고 관인사회에 잘 맞게 길들이기 위해서는 신랄한 풍자가 개입될 필요가 없다. 배비장의 행위가 심각한 위선이 아니며 굳이 우스갯거리로 만들지 않아도 되기에 그렇다. 그저 한번 해프닝으로 웃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방자와 애랑의 적극적인 주도로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제주관아의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거벗은 몸으로 궤에서 나와 헤엄치는 시늉을 하는 배비장에게 사또가 놀라 “자네 저 것이 웬일인고?” 하는 것은 의도대로 경직성은 제거됐지만 그 정도가 지나침에 대한 당혹감을 나타낸 것이다. 뒤에 배비장이 제주목사의 주선으로 정의현감으로 제수되는 부분은 교정된 것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작품에서도 사람들이 “이 번에 배비장이 정의현감으로 부임하기는 모두 제주목사가 주선한 것이지. 한 번 몹시 속은 후에 저와 같이 높고 귀하게 되면 속지 않을 사람이 뉘 있으리?”라고 입을 모을 정도였다.
양반의 위선에 대한 풍자
그런데 애랑과 방자는 목사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사건을 주도하기에 목사의 의도와는 어긋나 버린다. 사실 제주목사의 지시가 있기 전에 방자는 배비장과 내기를 했던 것이다. 가지고 싶은 것은 다 빼앗고 정비장의 이빨까지 뽑아가는 애랑을 보고 배비장은 절대 여색과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면서 방자와의 내기가 시작된다.
“우리야 만고절색 아니라 양귀비.서시라도 눈이나 떠 보게 되면 덜 떨어진 사람의 아들이다.”
방자놈 코웃음치며 여쭈오되
“나으리도 남의 말씀 쉽게 듣지 마옵소서. 애랑의 은은한 태도와 아리따운 얼굴을 보시면 치마폭에 움막을 짓고 게다가 살림을 차리리다.”
배비장 안색을 바로하고 방자를 꾸짖는 말이,
“이 놈, 네가 양반의 격조와 멋을 어찌 알고 경솔히 말을 하느냐.”
“그러하오면 황송하오나 소인과 내기를 하옵시다.”(현대역 필자)
방자는 아름다운 여자를 대하면 혹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말하는데, 배비장은 양반의 격조와 멋을 들먹거리며 꾸짖었다. 여기서 풍자가 발생할 수 있는 요건이 성립된다. 바로 ‘위선’이다. 속으로는 원하지만 겉으로는 양반의 처지를 내세워 아닌 척하는 위선적 태도가 문제되는 것이다. 이런 위선적 인간은 마땅히 그 정체가 폭로돼야 한다고 느끼기에 풍자가 발생한다. 숨길 것 없는 악인은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위선자는 모든 걸 숨겨야 하기에 풍자의 대상으로 적합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단순히 인간 본성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소위 ‘양반’의 신분을 들먹거리며 위세를 떠는 데 대하여 신분적 대립이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애랑의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는 대목에서 방자와의 신분적 대립이 날카롭게 드러난다.
“예, 나는 나리께서 무엇을 보시고 그리하시나 하셨지요. 옳소이다. 저 건너 목욕하는 여인 말씀이오니까?”
“옳다! 보았단 말이냐? 쌍놈의 눈이라 양반의 눈보다 대단히 무디구나.”
“예, 눈은 양반 쌍놈이 다르니까 소인의 눈이 나리의 눈보다 무디어 저런 예의가 아닌 것은 아니 뵈옵니다마는 마음도 양반과 쌍놈이 달라 나리 마음은 소인보담 컴컴하고 음탐하여 남녀유별 체면도 모르고 규중처녀 은근히 목욕하는 것을 욕심내어 눈을 쏘아 구경한단 말씀이오니까? 근래 서울 양반들 양반세력 빙자하여 계집이라면 체면 없이, 욕심 낼 데 아니 낼 데 분간 없이 함부로 덤비다 봉변도 많이 당합니다.”(현대역 필자)
이 대화는 『춘향전』(완판 84장본)에서 춘향이 그네 뛰는 장면을 보고 이몽룡과 방자가 주고 받는 부분과 비슷하지만 대신 통렬한 풍자가 들어 있다. 양반의 눈보다 쌍놈의 눈이 대단히 무디다고 하는 말을 되받아 눈이 다르니 마음까지 달라 당신은 컴컴하고 음탐하냐는 반문은 단번에 양반의 위세를 거꾸러뜨리는 묘미가 있다. 풍자가 무엇인가? 적어도 풍자의 상대보다 도덕적 우위를 차지했을 때 가능하다. 양반의 지위를 들먹거리다 여색에 혹하여 정신을 못 차리는 상전에 비해 하인인 방자의 태도는 훨씬 당당하다.
이는 프랑스의 극작가 보마르세P.A.C. Beaumarchais(1732~1799)의 희곡 「피가로의 결혼」에서 하인인 피가로의 행태와 유사하다. 피가로는 주인인 알마비바 백작에게 “백작나리, 나리는 사람들이 나리를 받들어 준다고 해서 정말 자기가 훌륭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귀족, 재산, 훈장, 지위, 이러한 것들로 의기양양해 있으시겠지요? 그러나 그만한 보배를 얻기 위해서 나리는 대체 무슨 일을 했습니까? 단지 태어날 때 들인 수고뿐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인간으로서도 지극히 평범하고요.(5막 3장)”라고 대들 정도로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친다. 이에 반해 백작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여자나 탐하는 형편없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묘하게도 프랑스 혁명 전야인 1784년 4월에 파리에서 공연되어 혁명의 기운이 팽배한 프랑스 시민사회의 전형으로서 급부상하였다. 쥘르빌르는 “이 날부터 대혁명이 시작되었다.”고 했고, 나폴레옹도 “ 「피가로의 결혼」, 그것은 이미 대혁명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프랑스의 대표적인 일간지도 바로 『르피가로Le Figaro』지가 아닌가. 물론 이렇게 인기 있는 이 작품은 연극뿐만 아니라 모차르트에 의해 1786년 오페라로 만들어져 상연되기도 했다.
아무튼 세비아의 하인인 피가로는 『배비장전』의 방자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방자가 배비장을 애랑에게 혹하게 하여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고 조롱당하도록 일련의 사건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점에서 『춘향전』의 방자보다 훨씬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거의 연출자인 셈이다. 처음 배비장과 내기를 제안한 것도 방자이거니와 풍자·조롱하는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제주목사가 주도하는 방식과는 달리 방자와 같은 수많은 민중들이 참여하는 길이 열린다고도 할 수 있다.
애랑 역시 방자와 마찬가지로 배비장을 풍자하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방자가 연출자라면 애랑은 주연인 셈이다. 이미 앞부분에서 서울로 떠나는 정비장을 “물오른 어린 소나무 속껍질 벗기듯 하려는데, 가지고 싶은 대로 달래라 하니 불한당 같은 마음에 피나무 껍질 벗기듯 아주 홀딱 벗”기고 심지어는 ‘상투’나 ‘양다리 사이의 주장군朱將軍(남성의 성기)’까지 요구하여 ‘알 비장’을 만들 정도로 풍자의 주체로서 철저함을 보인 바 있다.
그리하여 대대로 절개를 지켰다는 ‘구대정남’ 배비장을 ‘배걸덕쇠’로 전락시키고, 거문고를 만들어 조롱하며, 결국에는 궤 속에 가두어 발가벗은 몸으로 동헌 마당을 뒹굴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궤를 동헌 마당에 놓고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그 진상을 관아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지켜보게 했다는 점이다. 다른 작품처럼 규중에는 은밀히 이루어지는 풍자와 조롱이 아니라 이를 만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행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궤 속에 갇힌 배비장으로 하여금 스스로 “여자를 밝히다 망신당하고 죽게”되었다고 고백하거나 “유부녀와 간통하다가 저 지경이 되었”다고 인정하게 했으며, “한양 서강사람 배걸덕쇠”라고 자신을 비하하게 만들었다. ‘구대정남’을 자처하다 이 지경이 됐으니 자기 스스로를 풍자 조롱한 셈이다. 그 만큼 풍자가 통렬하며, 그 풍자는 당연히 거들먹거리는 양반의 위선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배비장이 정의현감에 임명되고 애랑을 첩으로 맞아들였다는 신구서림본에 드러난 화해의 결말을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가 된다. 제주목사가 주도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경직함을 교정하기 위한 것이기에 화해로 매듭짓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양반의 위선을 통렬하게 공격하고 나서 애랑이 배비장의 첩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풍자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한다.(그래서 애초 「배비장전」을 펴냈던 김삼불은 이 뒷부분을 교주본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방자가 사라진 점에 유의하여 애랑의 이중성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배비장을 발가벗겨 만인의 웃음거리가 되게 하고 방자는 무대에서 사라진다. 내기에 이겼으니 애초 약속대로 말을 달라거나 하지도 않고, 아예 무대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애랑은 제주목사의 배려로 해남으로 가는 부인으로 위장하여 “기생오입 잘못하다가 예방소임 자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배비장”을 만류하여 정의현감에 까지 이르게 하고 그 첩으로 들어간다. 원래 기생은 그 신분의 예속성으로 인하여 지속적인 풍자가 어려운 바, 사람을 어찌 그다지 속였느냐는 배비장의 말에 “소첩이 그 때에는 제주목사에게 매인 몸이 되었사오니, 사또께서 시키시는 일을 어찌 거행하지 않사오리까?”라는 대답에서도 그 진상을 알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오히려 방자가 풍자를 주도하고 애랑은 그 처지가 목사와 방자 사이에 걸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제주민들의 수탈에 대한 저항과 냉소
이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자. 신구서림본을 보면 동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한 배비장은 서둘러 서울로 도망간다. 제주목사는 “이 일로 혐의 두지 말고, 애랑을 첩으로 들여 여기 있는 동안 잘 지내”라고 하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위선이 폭로된 터라 당연히 머무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작품에서도 “구대정남이라 자칭하고 남 노는 것을 비웃으며 빈 방에 홀로 앉아 고고한 체 자랑하던 배비장이 이 지경을 당하고 나니, 상하노소가 모두 이를 보고 들은 바이라. 얼굴을 어찌 들며 잠시인들 어찌 머무를 수 있으리요?”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위급한 도망길에서 제주의 해녀와 사공을 만나 또 다시 양반을 들먹거리다 호되게 혼이 난다.
그 계집이 한참 물끄러미 보다가 대답도 아니하고 고개를 휙 외면하고 돌리니, 배비장이 그 중에도 분하여 목소리를 돋우어 다시 책망 겸 묻는다.
“이 사람아, 양반이 말을 묻는데 어찌하여 대답이 없노?”
“무슨 말이랍나? 양반, 양반, 무슨 양반이야? 품행이 좋아야 양반이지. 양반이면 남녀유별, 예의 염치도 모르고, 남의 여인네 발가벗고 일하는 데 와서 말이 무슨 말이야? 싸라기밥 먹고 병풍 뒤에서 낮잠 자다 왔습나? 초면에 반말이 무슨 반말이여?”(현대역 필자)
양반의 권위를 내세워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거들먹거리다 해녀들에게 당하는 모습이다. 해녀는 얘기 끝에 “요사이 세력이 빨랫줄 같던 배비장도 궤속 귀신이 될 뻔한 일”을 못 들었느냐며 오히려 으름장을 놓는다. 그 만큼 양반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서울 가는 배를 구하려고 사공에게 반말을 하다 창피를 당하기까지 한다.
“어, 이 배의 사공이 누구여?”
사공이 반말에 비위가 틀려,
“어, 사공은 왜 찾어?”
“말 좀 물어보면.”
“무슨 말?”
“그 배가 어드로 가는 배여?”
“물로 가는 배여”(현대역 필자)
배비장이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 양반의 알량한 권위를 내세우지만 이것마저 허용되지 않는다. 양반에 대한 집단적 저항마저 느끼게 한다. 그래서 배비장도 “허, 내가 그저 춘몽春夢을 못 깨고 또 실수를 하였구나.”라고 한탄하고 만다.
이들 해녀나 뱃사공은 배비장 개인이 아니라 배비장을 포함한 경래관京來官, 곧 서울에서 온 양반관리들에 대하여 공격과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말하자면 민중들의 집단적 분노로, 거들먹거리는 양반의 권위를 인정치 않으려는 저항의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이는 배비장이 정의현감이 되어 부임할 때도 고전소설의 공식대로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엊그제 피나무 궤속에서 고생하던 배비장이더니, 어찌 저렇게 되었나? 참 희한한 일이로구.”라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어찌해서 이를 제주도민들은 서울 양반들의 위세에 분노하며 냉소를 보낼까? 그 단서를 찾아보면 작품의 서두에 정비장이 가져가는 뱃짐에 다음과 같은 품목이 등장한다.
굵은 갓 한 통, 곱게 만든 갓 한 통, 탕건 한 죽, 우황 열근, 인삼 열근, 머리에 얹는 다리 서른 단, 말총 백근, 노루가죽 사십장, 사슴가죽 이십장, 홍합·전복·해삼 백개, 문어 열개, 삼치 서 뭇, 조기 한 동, 유자·잣·석류·비자·귤껍질·녹용, 얼레빗·화류 살쩍밀이·삼층 난간 용봉장·이층 문갑·가께수리·산유자 궤·뒤주 각 여섯 개, 걸음 좋은 제주 말 두 필, 푸른 말 세 필, 안장 두 켤레, 무명 한 동, 곱게 짠 삼베 세 필, 모시 다섯 필, 명주 세 필, 편지지 열 축, 부채 열 자루, 담뱃대 열 개, 수복무늬 백통대 한 켤레, 서랍 하나, 담배 열 근, 생꿀 한 되, 맑은 꿀 한 되, 날밤 한 되, 마늘 한 접, 생강 한 되, 찹쌀 열 섬, 쇠고기 열 근, 후추 한 되, 아그배 한 접(현대역 필자)
이들 품목은 제주의 토산물로 국가에 공납으로 바치는 것들이다. 국가에 진상하는 공물 품목의 대종은 전복·말·귤·약재·녹피 등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가에 바치는 공물을 대는 것도 힘겨운 판인데, 성종 이후부터는 서울에서 온 지방관이나 양반관리들이 진상제를 남용해 자신들의 재산을 늘리는 기회로 삼거나, 임금의 선심을 얻고자 엄청난 진상품을 요구하기도 하여 극심한 민폐를 끼쳤던 것이다. 자연 그 고통은 고스란히 제주도민들의 몫이 되었다.
이렇게 수탈당하는 제주도민들의 관점에서 『배비장전』을 보았을 때, 서울로 떠나는 정비장의 뱃짐은 곧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서울 양반관리들의 수탈 품목인 것이다. 국가에 대한 진상은 물론이고 수령이하 양반 관리들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제주도민들의 희생이 강요되는 상황에서 이들 서울 양반관리들의 행태는 반감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배비장이 양반의 권위를 내세우다가 해녀들에게 “양반, 양반, 무슨 양반이야?”라고 호되게 혼이 나거나 사공에게 반말을 하다가 창피를 당한 것은 사실 서울 양반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수탈에 대한 집단적 분노의 표현이다. 이들 해녀와 뱃사공이야 말로 맨 밑바닥에 위치하여 국가권력이나 서울 양반들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했던 사람들이지 않은가!
이 작품이 한창 읽혀졌던 1862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임술민란’은 바로 이러한 진상의 폐단이 원인이 되었던 바, 안핵사 이건필이 국왕에게 건의한 18개 조항 가운데 진상과 관련된 것이 무려 7개항에 이를 정도였다. 바로 해녀와 뱃사공으로 대변되는 제주도민들의 분노와 냉소는 서울 양반관리들에게 당해야 했던 수탈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읽힌다. 그래서 양반의 권위를 내세우는 배비장에 대한 공격과 풍자가 잔인하고 통렬한 것이다.
『배비장전』에는 세 층위의 웃음이 있다. 제주목사가 주도하는 경직성을 제거하기 위한 웃음이 있는가 하면, 방자와 애랑이 주도하는 양반의 위선을 풍자하는 웃음이 있고, 수탈당하는 제주도민들의 싸늘한 냉소가 있다. 판소리가 그만큼 열려있는 문학이기 때문에 여러 계층이 참여하여 이런 다양한 층위의 웃음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신재효申在孝(1812~1884)가 판소리 12마당을 6마당으로 정리했을 때 이 『배비장전』은 제외시켰다. 아무래도 양반들에 대한 지나친 풍자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요즘 세상에도 그런 갑질하는 잘 난 인간들이 많은데 왜 이런 통쾌한 풍자가 없는지 모르겠다.
*권순긍 세명대학교 미디어문화학부 교수. 저서 『활자본 고소설의 편폭과 지향』, 『고전소설의 풍자와 미학』,『고전소설의 교육과 매체』, 『고전, 그 새로운 이야기』, 『살아있는 고전문학 교과서』(2011, 공저), 『한국문학과 로컬리티』등. 평론집 『역사와 문학적 진실』. 고전소설 『홍길동전』, 『장화홍련전』, 『배비장전』, 『채봉감별곡』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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