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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기행산문4/유시연/수녀원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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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71회 작성일 20-01-1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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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기행산문4/유시연/수녀원과의 인연


유시연


수녀원과의 인연



십자가의 길


산 지오반니 로톤도에서 보낸 나흘. 아침에 잠깐 비가 왔다. 예수의 일생을 담은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 14처 양각 청동부조는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로마의 유대총독 빌라도는 자신이 역사에 어떤 이름으로 남을지 잘 아는 인물이다. 그는 유대교 원로들과 군중에게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며 자신의 책임을 떠넘긴다. 이로써 예수는 동족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십여 년 전 정찬 작가의 장편소설 ‘발라도의 고백’을 읽은 적이 있다. 빌라도의 인간적인 고뇌를 그의 입장에서 잘 그려낸 수작이다. 그 시대 범죄자를 처벌할 때 십자가형은 보편적인 형벌의 일종이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 여인들의 눈물, 안타까운 것은 어머니 마리아와 만나는 지점이다. 조각가는 이 장면에서 고통과 슬픔의 극대화를 표현하는데 옆에 서 있던 제자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장면은 압권이다. 십자가의 길은 산 둘레를 따라 완만한 곡선으로 이어져 있다.
신의 나무라 부르는 사이프러스가 하늘을 찌를 듯 뻗어 있는 길은 인적 없는 정적에 싸여 있다. 한 시간 동안 그 길을 걷는다. 멀리 평원 끝으로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드러난다.


묘지


해가 저무는 시각, 아오와 손잡고 공동묘지로 간다. 시외버스 안에서 스쳐 지나간 공동묘지 양식이 궁금해서다. 시 외곽지역에 이들의 조상대대로 살다간 영혼들의 묘지가 모여 있다.
가족묘로 보이는 건물들이 잇대어 서 있다. 건물 안에는 대리석 벽에 고인의 이름과 사진이 있고 때때로 어떤 집은 제대와 성모상 예수상 조각이 있다. 넓은 묘지 중간쯤 장례미사를 하는 성당이 있어서 들어가 본다.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는 소박한 공간이다. 태국의 무덤양식과 비슷하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에게도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은 이들에게 집을 지어준다. 규모는 작지만 기둥이 있고 벽이 있고 지붕이 있는, 그런 집이다.
오래 전 경주에서의 3박4일 여행 기간에 무덤만 찾아다닌 일들이 떠오른다. 아오의 선배 경주부시장 소개로 문화원 사무국장을 소개 받아 인사를 나누고 그의 안내에 따라 독특한 체험을 했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무덤과 가족묘 체험이다. 둥근 봉분 위에 소나무가 자라고 잡초가 우거져 있어 무덤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는 그런 가족묘였다. 출입구는 육중한 돌문으로 세워져 있고 안에는 차례로 영혼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맨 위쪽 공간에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상석이 있고 그 아랫단에 두어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방 같은 느낌이 났다.
이번 여정 중에 가는 곳마다 석관을 보고 유해를 만나면서 삶과 죽음을 묵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잠시 이 세상에 육신을 빌려와 숨을 쉬다가 자기도 모르는 시간에 영과 육이 분리되는 순간을 맞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유서 깊은 성당 앞에는 어디나 거지가 앉아 있다. 중년 여자가 아이를 안고 손을 벌리면 외면하지 못한다. 속는다 하더라도 그런 것까지 감안해서 동전을 준다. 멀쩡한 흑인 청년들이 손을 벌리는 일이 많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먹고살기가 만만치 않음은 이해하지만 사지육신 멀쩡한 청년이 구걸을 하는 건 좀 그렇다.


걸리버를 생각하는 시간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과 거인국 이야기는 실제로 정치권력을 풍자한 것이다. 주인공이 겪는 이상한 나라 사람들 이야기는 같은 언어, 같은 문화권에 살면서도 이해하지 못해 전쟁을 하고 불신하고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낯 선 나라 시골 마을, 산 지오반니 로톤도 시내는 오후 2시부터 4~5시 무렵까지 상점마다 불이 꺼지고 셔터문이 굳게 닫힌다. 숙소에 있기가 지루하여 광장에 나왔더니 적막이 감돈다. 성당 문도 평소와 다르게 나무 대문이 굳게 닫혀 있다. 광장 의자에 앉아 투명한 하늘을 쳐다보다가 지붕에 시선이 꽂힌다. 굴뚝이 많은 걸 보면 화덕을 통해 빵을 굽거나 요리를 하는 것 같다. 아오와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긴 의자에 앉아 빈둥대다가 간혹 문 열린 BAR를 찾아 들어간다. 이곳에서는 BAR가 카페나 레스토랑 개념이다. 에스푸레소나 카푸치노를 시켜마시면 1~1.5유로 한국돈 12~1500원이다. 이들도 커피를 수입하는데 커피값은 저렴하다.
오후 3시 무렵 청소차가 거리의 쓰레기통을 비우며 지나간다. 가게 앞을 청소하는 여자도 보인다. 이들은 오후 5시나 6시에 가게문을 열고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한다. 식당도 자정까지 영업을 한다. 사람들이 거리와 광장에 쏟아져 나온다. 적막이 감돌던 시내 중심가에 활기가 찬다. 흑인계 청년이 다가와 알 수 없는 소리로 구걸을 한다. 성당 마당과 광장에서도 흑인 청년이 손을 내민다. 멀쩡히 걸어오다가 이방인인 우리에게 손을 내밀면 속이 편치 않다. 물론 거지 중에는 백인도 있다. 성당 앞에서 양복을 입은 노인은 백인이었는데 정중하게 평화 인사를 하며 구걸을 해서 거지인 줄 모르고 같이 인사를 하고 나온 적이 있다. 이들 사회가 흑인에게는 교육이나 일자리, 기초 복지에 장벽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프리카의 기름지고 너른 땅에서 살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서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한 사람들, 내전과 전쟁통에 가족을 잃거나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제국주의 시대가 낳은 비극이다. 서구 강대국이 그들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자원과 노동력을 자기네 나라로 가져가고 겨우 독립이 될 무렵에는 갈등과 분열로 내전을 겪는 현상은 슬픈 일이다.
이제 낯 선 시골마을에서의 나흘간 여정을 접고 내일은 로마로 회귀한다.


버스는 오지 않고


버스는 오지 않았다. 아침 6시 5분 포쟈행 버스를 기다리며 추위에 떨었다. 1시간이 그냥 지나간다. 로마행 기차는 탈 수 있으려나. 그 다음 버스가 6시 55분에 있다. 한참 추위에 떨다가 스카프로 얼굴을 히잡처럼 두른다. 다행히 다음 버스가 왔다. 버스는 시골길을 달린다. 포쟈 기차 터미널 대합실 BAR에서 카푸치노와 빵을 먹고 8시 22분에 떠나는 로마행 기차에 오르니 졸음이 쏟아진다.
초록 평야가 끝없이 펼쳐진다. 밀밭에 바람이 지나간다. 밀대궁이 청녹빛으로 흔들리다가 희게 반짝인다. 가지런히 정돈된 포도원의 어린 순들이 윤기를 낸다. 저 너른 평야를 가꾸려면 기계가 필요하다. 한국의 농촌은 선진농업기술 수준이다. 농사는 기계가 한다. 작년에는 드론이 논에 농약을 살포했다. 흰 깃발을 논에다가 경계표시로 꽂아 놓은 곳에 드론이 날아다녔다. 정부지원 70~80프로, 개인 부담 20~30프로인데 농협이 업체를 선정하여 시범 운영한다.
올리브 밭을 지나 포도밭을 지나 언덕을 지나 능선에 붉은 지붕과 흰벽이 오밀조밀 이마를 맞대고 모여 사는 마을의 집들이 정겹다. 제초제를 쓴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농촌은 풀뽑기에 지친 농부들이 일손이 모자라면 쉽게 제초제를 뿌린다. 연로한 노인들이 농사를 짓는 곳은 좀 더 심하다. 철로변에 아카시아 꽃이 가득 피어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루비콘 강을 건넜다. 고교 퀴즈 대회에 자주 인용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인뒤 쓰곤 하는 문장이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로원에 대항하여 로마로 말머리를 돌린 사건은 인구에 회자되며 명언이 된다.
혼잡한 시가지 중심 곳곳에 산재한 고대 제국의 유적들, 아시시에서 만난 이후 로마에서 다시 만난 미카엘 신부님과 깜삐 돌리오 언덕을 거닌다. 로마제국의 발상지이며 황제가 충성스러운 군인들로부터 승리의 전장으로부터 돌아온 장군들로부터 사열을 받던 곳이다. 언덕 중심의 광장에는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동상이 우뚝 서 있다. 먼 후대 인물인 미켈란젤로가 만든 기하학 무늬가 광장 바닥에 새겨져 있고 언덕을 오르는 계단 또한 그의 작품으로 계단은 직각이라는 개념을 깨트린 파격적인 발상이 엿보인다.
깜삐 돌리오 광장에서 의미 있는 시간은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갇혔던 감옥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돌로 된 지하 감옥은 어둡고 추웠다. 벽면과 바닥에 깔려 있는 돌에는 녹색식물이 자라고 있다.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는 벽화에는 베드로와 바오로, 예수와 성모마리아를 표현한 장면이 있는데 거의 지워지고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다. 직원이 아이패드를 가져와 벽화 시뮬레이션을 보여준다.
로마제국의 유적이 1, 2차 세계 대전을 겪었음에도 남아 있어서놀라웠다. 시내를 걷다보니 베네딕또회를 세운 성 베네딕또가 초기에 머물며 기도한 성당이 소박하게 보존되어 있어서 마음이 따뜻했다. 베네딕또 성당을 나와 골목을 걷는다. 검은 돌로 된 바닥은 반들거리고 윤이 났다. 저녁이 오고 있다. 노을이 지는 시내 골목을 걸어 성 체칠리아 성당에 발길이 머문다. 성가를 시작하기 전, 성녀 세실리아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하는 음악의 주보성인이 묻혔고, 그분의 유해 위에 세워진 성당이다. 저물어가는 하늘 아래 성당 문이 열려 있다. 성당에는 수녀들이 촛불을 밝히고 저녁기도를 바치고 있다. 제대 밑에는 박해 당시 카타콤베에서 발견된 체칠리아 성녀 유해를 본 떠 만든 모형 조각상이 있다.
다시 골목을 걷다보니 성녀 아녜스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을 만난다. 아녜스 성당은 바깥에서 잠시 바라다보고 그냥 지나친다. 젊음의 광장과 유대골목 게토를 지나 원형이 보존된 1800~2000년 된 다리 위를 지나 테베레 강을 사이에 두고 귀족들의 건물과 서민들이 살던 골목을 지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골목은 축제분위기다.
미카엘 신부가 마지막 전철을 타는 것을 보고 아오와 걸어서 호텔로 돌아온다. 이탈리아는 늦은 밤 시각에도 영업을 하는 바가 있다. 호텔에 돌아오니 밤 1시다.


길 위의 인연


가브리엘 신부님은 광주교구 소속으로 로마신학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다. 그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인데 가까운 지인의 소개로 건너, 건너 알게 된 분이다. 이번 여정에 초석을 놓아준 인연으로 로마 시내 꽃의 거리에서 처음 만났다. 그와 약속을 잡고 나서 일찍 나가 꽃의 거리 주변을 둘러본다. 가죽 제품을 파는 소규모 시장이 펼쳐져 있고 장신구, 각종 치즈나 유제품, 햄, 소시지 등이 다양하게 나와 있다. 시간이 되어 이탈리안 레스토랑 앞을 주시하며 찾아간다. 멀리서 갈색 양복 상의에 선글라스를 쓴 동양인이 서 있다. 직감으로 그가 가브리엘 신부임을 알아본다.
“익스큐즈 미.”
“안녕하십니까.”
그의 등 뒤에 대고 조심스럽게 확인을 하는데 그가 뒤돌아서며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악수를 하고 그가 안내하는 대로 미리 예약한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식당 종업원이나 호텔 청소를 하는 분에 대한 팁 문화를 많이 신경쓰느라 항상 긴장한다. 그렇지만 식당에서는 대부분 서비스료가 따로 붙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음식값에 따라 3유로나 4유로를 빈 접시에 두고 나오기도 한다. 호텔에서 청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히스패닉이나 아프리카 제3세계 시민이 담당하는 예를 보아온 터여서 팁은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편이다. 커피 한 잔 덜 마시고 청소하는 분을 위해 1유로를 놓아두는 것, 그것이 여행자의 낭만이나 우월감이 아니라 함께 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1유로가 쌓이고 쌓여 경비가 늘어나면 여행 이후에 지불해야 할 부담이 커지므로 결코 낭만이 아닌 현실인 것이다.
로마 3대 커피숍에서 에스푸레소를 마시고 골목을 한참 걷다가 지칠 무렵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 앞에 멈춰 선다. 긴 줄의 행렬 끝에 서서 줄이 줄어드는 짜릿함을 맛보면서 인내와 기다림의 열매인 아이스크림을 맛본다. 부드럽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맛을 뭐로 표현할까?  악마의 혀? 오래 걸어서 다리가 아프고 갈증이 난다. 이번에도 유명한 커피점에 줄 서서 기다린다. 에스푸레소를 한 잔 씩 마시다보니 수녀님과 약속한 시간이 지나 있다. 가브리엘 신부가 수녀원에 전화를 해준다. 오후 6시 30분까지 들어가겠다고 하고 한시름 놓는다.
아오와 함께 수녀회 저녁식사에 초대받아 그들과 같이 식사를 한다. 그런데? 오래 전 청원기를 같이 보낸 막달레나 수녀가 와있다. 일본에서 몇 년동안 소임을 맡았는데 잠시 관구 본원에 다니러 온 거다. 식사 도중에 이냐케 수녀가 일어나 마이크를 잡고 아오와 나를 소개한다. 내가 일어섰더니 막달레나 수녀가 같이 일어나 내 옆에 선다. 전 세계에서 모인 자매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꽂힌다. 아오는 내 뒤에 저만치 물러나 서 있다. 인도, 미국, 스페인, 필리핀, 베트남, 폴란드, 일본, 한국, 헝가리, 남아프리카공화국, 파키스탄 … 세계 80여 곳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사는 그녀들이 모여 식사를 한다. 간간이 웃음꽃이 핀다. 한국에서 20년을 산 스페인 이냐케 수녀는 한국인이 다 되어 있다. 아오와 먹으려고 샐러드 한 접시만 담았더니 그러면 안된다며 아오 몫의 샐러드를 손수 접시에 담아 갖다 준다.
다시 돌아온 수녀원에서 하루가 저물어간다. 흰시트, 깨끗하고 쾌적한 숙소, 흰 벽에는 프란치스코회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걸려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서


수녀원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한다. 지나간 인생이 한순간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이십대는 예민하고 고민이 많은 나이였다. 이십대 중반에 다른 삶을 꿈꾸었다. 삶에의 환상성과 현실과의 괴리감에서 오는 부조화는 심신을 허약하게 만들기도 하고
병약한 섬세함과 예민성은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로버트 푸르스트의 ‘가지 않은 길’, 키에르케고르의 ‘단독자’,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서’에 심취하고 매몰되기도 하며 청춘을 낭비하기도 한다. 원장 수녀의 허락으로 점심 저녁을 수녀님들과 같이 한다. 식사가 끝나고 원장수녀의 요청으로 방명록 노트를 작성한다. 예전 한솥밥을 먹던 신분으로 몇 줄 글을 쓰고 끝 부분에 다음과 같이 넣으라고 이냐케 수녀님이 옆에서 거든다. 노老수녀가 부엌을 마무리하는 가운데 옆에서 기다리는 이냐케 수녀와 막달라마리아 수녀, 아오가 신경이 쓰여 숨도 쉬지 않고 한 장을 채운다.


하느님, 찬미 영광 받으소서. 오래 전 하느님의 신부新婦로 살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FMM으로서 프란치스칸의 정신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저에게 다른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청원기간이 끝나고, 저는 제 뜻이라 생각한 그 길을 갔습니다. 긴 시간 돌고 돌아 이제 로마 관구 창립자 어머니의 영혼이 숨쉬는 수녀회에 왔습니다. 아침에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하는데 짧은 순간 제 인생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세속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제 인생의 허리를 지나는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이십 대는 예민하고 저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에 몰입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더욱 단단하고 성숙한 인격체로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이끌어주셨구나, 하는 것을요. 로마 FMM 수녀회에서 33년 전의 이냐케 수녀님을 만나 얼마나 기쁜지요. 친정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고 푸근합니다.

수녀님들은 수녀님들대로, 저는 또 현실 속에서 각자 다른 길을 걸었지만 결국 하느님의 자녀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X Pre-novice  FMM 1983 부산  Lea Yu
다음날 아침, 수녀들이 교황님을 알현하러 단체로 외출하고 남아 있던 이냐케 수녀님과 작별을 한다. 힘차게 포옹하며 아쉬운 이별을 고한다.
“일생동안 여기를 기억하세요.”
“일생동안 여기를 기억할 거예요.”
이냐케 수녀가 말하고 내가 대답한다. 현관문 앞에서 그녀는 오래오래 미소를 띄며
배웅을 한다. 그녀는 말했다. 로마에 오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레아 이름을 찾으면 여기에 있어요. 내 이름이 수녀원 명부에 있다는 이냐케 수녀의 말에 가슴이 뭉클 미어진다. ‘잃어버린 길을 되찾아서’ 로마에 온 후 나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한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두 길을 다 가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
먼 훗날에 나는 어디엔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
로버트 푸르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읊조리며
잃어버린 내 청춘의 한 모퉁이에 기대어 서 본다.
꿈이었을까.


라떼라노 대성전


군인들의 검색을 통과하여 들어선 대성당 안에는 성인들의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다. 벽면에는 성화가 걸려 있는데 그 중 한 그림에 내 시선이 집중된다. 화가는 젊은 예수, 피끓는 청춘의 예수를 표현하려 함인가. 이전 화가의 그림과 다르게 허벅지와 옆구리, 온 몸에서 근육질 남성미가 풀풀 나는 건강한 청년의 몸을 그려낸다.
호위하는 아기 천사의 통통한 팔과 볼록하게 나온 배, 성모마리아와 붉은 옷을 걸친 젊은 요한, 금발의 아름다운 막달라마리아까지… 화가는 시종 건강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건강한 아름다움은 고귀한 생명이다. 서른세 살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예수와 그를 따르던 젊은 제자들 모두 피끓는 청춘이었다. 정의를 부르짖으며 온몸을 던지는 것은 어느 시대나 청춘의 몫이다. 민주화의 이면에는 대학생, 젊은이들의 투신이 있었고 거기에 시민이 합세하여 이룩해낸다.
베드로를 표현한 그림에는 항상 열쇠가 있다. 바오로를 그린 그림에는 펜과 종이책 혹은 칼이 들려 있다. 성화의 배경은 어두운 암갈색 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것은 르네상스 이전 그림이라는 걸 알려주는 표식이다.
작은 성당 안에서 미사가 봉헌된다. 사제가 신자들과 똑같이 벽면의 십자가를 향해 서서 미사를 집전한다. 제대가 벽에 부착되어 있기도 하지만.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한국에서 라틴어 미사를 드리고 사제도 신자와 같은 방향으로 섰다. 공의회 이후 사제는 신자를 향해 마주보고 미사를 집전한다.
성전은 순례객들이 있지만 고요한 가운데 곳곳에 붙박인 고백성사 박스에 불이 켜져 있고 먼 나라에서 온 신부神父나 신자들이 무릎을 꿇고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과의 화해를 하는 은총의 시간을 갖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시간이다. 천장 돔과 높은 위치의 벽 창문으로 밝은 대낮의 햇빛이 들어온다. 육중한 돌문이 열려 있는 화장실 가는 복도 문이 어느 사이 닫혀 있다. 성물聖物을 파는 곳에서 수작업한 접시와 십자가를 산다. 지나가는 로만칼라 신부를 붙잡고 성물에 축복을 청한다. 그분은 기꺼이 십자가와 접시에 긴 기도로 축복을 해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미소가 환하다. 축복받은 하루의 시작이다.


약속


연휴가 이어지는 바람에 아직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로마에서 만난 베트남수녀는 조심스럽게 한국 수녀원에 있는 베트남 청원자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했고 내 청원기 동기 막달레나 수녀가 중간에서 나에게 부탁하기에 기꺼이 그 일을 맡았다. 막달레나 수녀가 조심스럽게 우표값 이야기를 했고 걱정 말라고 내가 한국 가면 꼭 사서 부치겠다고 약속했다. 그날 밤 막달레나 수녀가 편지와 베트남수녀가 직접 만든 묵주와 조화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레아, 혹시 빨래비누 남은 것 있어? 급하게 오느라고 비누를 못챙겼네.”
막달레나 수녀 말에 한국에서 갖고 가 쓰고 남은 가루비누를 비닐봉지에 꼭 봉해서 호텔마다 다니며 챙긴 일회용세숫비누 대여섯 개와 같이 있는 대로 찾아서 챙겨준다. 수도자는 가난을 몸으로, 삶으로 보여준다. 개인을 위해서는 동전 하나 쓰기가 어렵다. 통장을 지닐 수 없고 저축은 물론 할 수 없으며 개인의 소유물을 공동체에 내어놓고 필요하면 허락받아 구한다. 공적인 외출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교통비를 영수증 첨부하여 제출한다. 스스로 하느님에게 봉헌된 삶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저녁만찬 테이블에 같이 앉아 인사를 나눈 인연으로 편지 심부름을 하게 되었는데 월요일쯤 꼭 부쳐야겠다. 그날 저녁만찬 자리에는 스페인 이냐케 수녀 외에도 폴란드, 파키스탄, 막달레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잠시 다니러 온 한국인수녀가 함께 했다. 파키스탄은 무슬림이 대부분인데 가톨릭인구가 있냐고 물었더니 있다고 대답한다.
잘 생긴 신부님들 얼굴 사진이 실린 카렌다를 사오지 않은 게 무척 아쉽다. 오랜만에 귀가한 집은 해당화와 모란이 졌고 철쭉이 간당간당 지고 있다. 감나무 이파리가 윤기를 뿜어내며 싱싱하게 자라고 있고 산머루와 들메나무 수십 그루가 죽어버렸다. 한쪽에서는 때죽나무 흰꽃이 가지에 오종종 매달려 있다. 죽음과 삶이 함께 손잡고 가는 봄날, 꽃봉오리를 밀어올리는 작약이 피기를 기다리며 먼 데 하늘을 본다. 연초록 물결이 밀려가는 산하, 그 생명의 기운에 눈이 부시다.


등잔


등잔에 불을 붙인다. 비 내리는 아침, 식물의 잎이 더욱 살아나 온 존재로 생명의 푸르름을 드러낸다. 열어놓은 창밖으로 바람이 분다. 커튼이 흔들린다. 등잔불이 흔들린다. 추운 날이면 히터를 틀고 등잔에 불을 붙이고 심리적인 위안을 얻기도 한다. 산탄젤로 동굴성당 조배실에서 조용히 타들어가던 등잔불이 인상깊게 뇌리에 박혀 있다. 문명의 이기에 젖어 살다가 투명 유리그릇에 박힌 하얀 심지가 기름을 빨아올리며 불을 피워 올리던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비오 신부의 지하성당에서도 그랬다. 허공에 늘어뜨려진 긴 줄 끝에 매달린 기름등잔에 젊은 사제가 불을 붙였고 불은 허공에서 노랗게 깜박였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등잔에 불을 붙인다. 한줌의 빛이 추위를 막을 수는 없지만 헛헛한 가슴을 데워줄 수는 있을 것이다. 아시시 기적의 성당 앞에서 열린 아나바다 장터에서 낡은 가방을 샀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 너덜거렸다. 가죽냄새가 물씬물씬 나는 묵은 가방의 디자인과 색상이 마음에 들어 10유로,
1만 2천 원에 선뜻 샀다. 낡은 가방을 펼쳐놓고 꿰맨다. 어느 구석에선가 생전에 노인이 쓰던 삼베꾸러미가 있다. 삼베의 가는 실을 뽑아 굵은 바늘로 헤지고 벌어진 끈을 꿰맨다. 가죽냄새가 물씬 난다. 비를 맞으며 숨죽인 식물들이 단아한 모습으로 자연을 받아들인다.





*유시연 2003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소설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오후 4시의 기억』, 『달의 호수』. 장편소설 『부용꽃 여름』, 『바우덕이전』, 『공녀 난아』. 에세이 공저 『꽃 진 자리에 어버이 사랑』 등. 정선아리랑문학상, 현진건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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