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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제6회 전국계간지작품상 다층|석정호·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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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제6회 전국계간지작품상 다층|석정호·수상작
석정호
메롱 말매미 외 1편
그날 눈먼 말매미 한 마리
검은 탄환처럼 날아와 가슴에 퍽, 부딪고
뒤따르던 강물도 놀란 사이
다시 도망치듯 메롱, 날아간 것은
암만해도 어느 날의 변심 혹은
부끄러움만 같습니다
연극배우가 돼라
밤마다 문전에서 울던 부엉이는
넌 소질이 없어 한마디가 그 멱을 땄고
날짜까지 잡아놓고 기다리던 머리맡에
쟤보다 예쁜 애는 깔렸어
문득 귀를 다 빼앗아간 뻐꾸기
그날의 부엉이, 뻐꾸기가 환생하여
말매미로 치고 간 것만 같습니다
죽어있던 그 슬픈 눈이
쳇바퀴를 돌려온 시간들의 따귀를 갈기고
메롱 날아갔을까요
점점 더 끓어대는 지붕 아래의 늪지대를 엿보고 사라졌을까요
얼얼한 가슴에
땅을 치는 나뭇가지에
어룽어룽 눈물이 매달려 있습니다
부용
달호는 바보 그의 누이는
부용, 홀어미와 살았습니다
참새를 날리고 꽃을 피우고 무릎을 덮고 팔꿈치를 감추던
그녀의 바늘이 참 날랬더랬는데
노인의 병수발로 팔려간 뒤
소주에 농약을 타서 마신
달호의 상여가 골목을 누벼도
오지 않았습니다
더욱 번득이는 날을 감추는
오늘, 당신이 뚫은 과녁이 날아다닙니다
부용의 바늘이 새와 꽃을 피울까요 지금도
어쩌면 나도 당신을 날리기 위해 준비될까요
참새들 날면서
꽃의 따귀를 갈겨도
꽃대만 휘청, 넙데데한 얼굴은 그뿐
다시 웃습니다
바보에게 돌을 던지면 고스란히 대신 맞던
언제나 먼저 환하게 웃던
부용꽃이
지하철역 앞 돌 틈 사이에 곧 지워질 듯 피었습니다
■신작시
어쩌죠 봄
날아가는 봄을 붙잡았어요
흩날리는 깃털과 같아서
나도 하롱하롱 뒤도 없이
가 버릴 것만 같아서 이판사판
마음 허공에
실그물을 던졌어요
글쎄 수천 갈피로 찢어져 날리는
내가 화인 찍히듯
걸렸지 뭐예요
■선정평
눈치 보지 않는 당당함
올해의 계간지문학상 수상자로는 석정호 시인이 선정되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떤 작품이 우수한가, 어떤 면이 좋은가 하는 지점은 독자마다 다를 수가 있다. 《다층》에서 석정호 시인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결정하게 된 까닭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시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늘 꿋꿋하게 외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있다. 시인 중에는 전통적 서정과 현대적 실험성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가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석정호 시인의 작품이 독자에 따라서는 현대적 감성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가 보여주는 시세계는 그의 시적 노력이 자신의 시적 고집을 밀고 온 결과라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석정호 시인이 지난 1년 동안 발표한 시들 중에서 「메롱 말매미」와 「부용」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두 편 모두 작디작은 일상의 소재를 깊은 시적 사유를 바탕으로 시적 성취를 이룩한 시라는 데 동의한 결과이다. 「메롱 말매미」는 여름을 울어대는 말매미를 통해 삶을 반추하고 있고, 「부용」은 부용꽃을 시작 상상력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입혀 보여주고 있다.
과묵하고 소탈한 시를 고집스럽게 밀고 온 시인의 당당함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석정호 시인의 문학 여정에 더욱 아름다운 일들이 있기를 기원하면서 전국계간지우수작품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다층》 편집실
■수상소감
요동치는 흔들림을 되찾을 계기
흔들리지 않는 것이 있을까? 세상에, 물리적 정신적 흔들림 현상으로 생명은 성장하고 결실에 도달한다. 나뭇잎에 올라탄 청개구리는 바람의 흔들림을 이용하여 더 높은 나뭇가지로 도약한다. 옛날 까까중머리 학창 시절에 동네 여학생을 향한 끝없는 흔들림 현상을 어쩌지 못해 미친 듯이 일기장에 부려놓던 그 마음과 지금 내가 애써 붙잡으려는 시심이 다르지 않다.
달빛이어서
나무를 본다며 나섰더니
놀라워라 그런 나를 보고 너는 놀라네
언제나 나무는 햇빛으로 보는 거라며
아니야 끝없는 들판에 나는 섰어 아무리 말해도
네 옆의 더욱 쓸쓸해지는 나를 모르네
꽃이 지기에
나비 따라 털레털레 왔더니
그런 나를 보고 너는 또 놀라네
할 일도 없다 두세 정류장 전에 내려서 걸어오냐며
아니야 나도 ‘찰나’야 아무리 말해도
네 눈가의 시간에 우는 나를 모르네
수없이 많은 것들에서 흔들려왔지만 갈수록 내면의 흔들림 현상이 약해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도서관 서가에서 연애소설만을 눈을 닦고 찾아보던, 사랑의 주제가가 없으면 아예 관람할 영화 목록에서 재껴버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다. 가끔 고달프게 힘을 써야 하는 배낭여행으로 시들어가는 생명력을 극복하기도 한다. 가뭄의 고춧대 같이 메말라가는 내 안의 생명력이, 장기간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오면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있음을 느끼곤 한다. 요동치는 흔들림을 되찾아야겠다.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모든 크고 작은 일들이 요란하게 흔들어주기를……./석정호
*석정호 200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다층문학동인. 시집 『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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