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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제6회 전국계간지작품상 열린시학|김네잎·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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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84회 작성일 20-01-14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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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제6회 전국계간지작품상  열린시학|김네잎·수상작


김네잎


괄호 외 1편



((((((괄호를 치며 걷는다 나의 사랑스런 감옥
 
그날, 새로 생긴 가족들 앞에서 엄마가 나를 어디에 앉혀야 할지 쩔쩔 맬 때, 이상하게 발이 부끄러웠다 불필요하게 누군가를 닮아 있구나
 
괄호는 도착하는 법을 잊어버린 지 오래
 
닫히지 않고 왼쪽으로만 자꾸 늘어나서 되돌아갈 수 없다 나는 걸어서 나이를 먹는다 한 살 두 살 스무 살
 
뒤쪽엔 기분이 너무나 많다
 
오늘 죄다 쏟아낼 것 같은 기분, 누구랑 할까
 
숨을 쉬면 협상이 번식한다 도착지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비밀, 원조와 원조 사이 당신들은 서 있고 목소리는 누워 있다
 
괄호가 닫히기 전에
누군가 오래된 직립을 쓰러트리면 나는 기쁠까 슬플까
 
득실거리는 눈, 눈, 눈,……,……)





거짓말, 혹은



숲을 전개해 나간다*
 
바람의 빽빽한 오해 속에서
우리는 오늘 연한 녹색이고 싶어
 
서로에게 묶인 연리지를 풀고
각자의 이몽異夢을 탕진하며
 
갈림길에서 당신은 산란한 알을 쥐어주듯
예감 하나를 건네주는데
 
나는 일부러 못 들은 척
뜻은 날려 보내고 소리만 품는다
 
왼발 오른발 경쾌한 리듬 속에
수많은 우리들이 증발하고
 
너무나 가벼워 날개가 빠져나올 것 같다
요정의 기분이란 이런 걸까
 
다리를 휘감는 화사에도 놀라지 않고
검붉은 산딸기가 은밀하게 농담해도 유쾌해진다
 
왼발 오른발 목적지에 다다른다
품었던 소리를 확인하는데
 
깨져있다, 흘러내리는 건
곯아터진 거짓말이 아니라 내 자신
 
숲이 완성된다
 
* 이수명의 시에서 차용.





■신작시


블랙스완



객석에 앉아 내가 보고 있는 건
어쩌면 내 발끝


얘야, 무릎을 구부려라
누가 두 번째 백조인지 질문하지 마렴
감촉과 촉감처럼 어감의 차이를 알려 하지 말고
최후의 나머지로만 남을까 봐 전전긍긍하지 마라


생생한


마주르카 춤곡과
네거리에서 멈추지 않던 질주와
서늘했던 아스팔트의 고집이
내 발목을 친친 휘감는데
엄습하는 환상통, 마치 발가락이 있는 것처럼


무희들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탄성
고요한 도약


나는 여전히 꿈속에서 발레화를 벗지 못하는데


내가 산 꽃다발을 내가 안고
빈 발끝을 세워본다
무대 위 너처럼





■선정평


예리하게 포착하는 예지력



제6회 계간지우수작품상에 김네잎 시인의 작품 「괄호」와 「거짓말, 혹은」을 선정했다. 후보자가 여러 명 있었지만 김네잎의 작품들이 탁월해서 우리는 쉽게 결정을 내렸다. 김네잎은 낯설게 하기 능력이 뛰어난 시인이다. 의미나 정서는 뒤에 남고 이미지나 포즈가 앞장서게 만들어 행간의 서린 형상을 감각적으로 조율할 줄 아는 기질을 갖고 있다. 시적 대상이 품고 있는 존재성이나 관계성을 단순화시키지 않고 확장 가능한 지점까지 끌고 가서 예리하게 포착하는 예지력 또한 뛰어났다.
수상작 「괄호」는 가능성과 감옥의 이중성을 띤 괄호를 통해 화자가 지닌 존재론적인 의미를 미학적으로 발현한 작품이다. 왼쪽 괄호는 엄마의 재혼으로 생긴 고통의 시작점을 나타내는 표식이고, 오른쪽 괄호는 선입견과 편견으로 가득 찬 “득실거리는 눈”들을 통과한 후에 도착해야할 아픈 지점이다. 그런데 화자는 끝내 도착할 수 없고 그만둘 수도 없다. 시인은 불모적 상황과 교착 상태에 놓인 화자의 미묘한 정서적 상태를 빼어난 상상력으로 형상화해 냈다. 「거짓말, 혹은」은 ‘이몽異夢’에서 벗어난 연인들이 이별을 맞이한 후 형성된 관계성을 상징화된 ‘숲’과 ‘알’을 통해 솔직담백하게 표출한 작품이다. 연인들은 ‘숲’을 거닐며 이별 후의 감정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이별은 “곯아터진 거짓말”과 그것을 방치한 자기 자신의 무의식만을 드러낼 뿐이다. 그러니 ‘숲’은 각자 만의 이별을 완성하기 위해 만든 상징적 공간이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 상을 계기로 더욱더 깊고 넓은 시세계를 펼쳐주길 바란다./이지엽, 하린





■수상소감



“실패하면 후회하면 되지” 외국 드라마를 보는데 이 문장이 자막으로 지나갔다. 이건 나의 이야기다. 늘, 항상, 언제나 나의 시도는 실패였다. 그리고 후회했다. “최선을 다했니? 정말 죽을 만큼 노력한 거니?” 스스로에게 묻는다. 앞으로도 나는 이렇게 매번 실패하고, 매번 후회하면서 시를 쓸 것 같다.

잿빛 커튼을 걷었을 뿐인데
도착하는 아침
검은 꼬리를 곤두세운 채 슬금슬금 사라지는 잠재몽

때론 몽롱한 것도 빛날 때가 있다

너는 너의 꿈 안에서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다
비좁은 나의 악몽 속에서 예견된 너를 쏟아내야 하는데

모르는 너만 자꾸 흘러 나왔다

내 안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시詩는 불투명하고 불명확하고 불확실한 최악의 존재다. 그런데 나는 이 시詩가 무작정 좋다.  

저를 믿고 지지해 주시는 《열린시학》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김네잎





*김네잎 2016 <영주일보> 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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