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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9/여름)/신작시/귀뚜라미 외 1편/김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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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성
귀뚜라미 외 1편
어떤 노래는 유리창에 부딪쳐
부서진다
방바닥에 흩어져
사방으로 구르기도 한다
버려진 것들은
버려진 자리에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자동차 위에 쌓인 낙엽을
털어낸다
초록의 계절 내내 알지 못했던
색깔이 드러난다
창문을 잘 닫아도
찬바람이 새어들어 온다
그 노래로 인하여
나는 풀숲을 기억할 수 있다
풀잎에 물을 주던 구름의 흰 손바닥과
빗줄기 속에서 만난 흙냄새
귀뚜라미야,
잘못 삼켜진 네 노래는
십이지장쯤에 걸려 사리가 된다
여행자
―꽃밭 음계
이제 나의 시계바늘은 생의 외곽에서 달린다
소리보다 빠른 새이거나
바람보다 빠른
구름이었던 나는 지금
진이 다 빠져나간 꽃밭이다
물이 죽어가며 거품을 토해낸다
꽃밭의 폐쇄회로에는 낮은음자리가
없으니
너와 나의
낮과 밤에는 몇 번의 옷깃이 스쳤을까
미치고 싶으나 미치지 못한 자들이
이번 생의 바깥에서 울어야하는 계절이다
꽃들은 심장에 음표를 기른다
금속소리가 지나간 음계를 밟으며
나의 악보는
흘러간 리듬을 기억하려 하지만
이따금 높은음자리에서 은하가
울고
부서진 음계가, 내 것이 아닌 악보에서
불어오는 가락을 따라
떠내려간다
꽃잎의 속무늬도
곤충의 더듬이도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五線 위에서 새가 짖는다
독이 섞인 꽃잎을 따먹은
새가
울부짖으며 꽃보다 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다
지나간 千生은 지워버려야 한다
지구 밖의 시간은 천천히 그러나
위대한 속도로 흐른다
슬프지 않는 것들이 시간의 바깥에서 운다고 치자
시간의 후원에는 출구가 없으니
어찌 다시 가슴에 고도를 품겠는가*
망명할 것이다
나의 노래는
이천삼백 년, 그리고 다시 천 년을 건너
* “又何懷乎故都”-屈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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