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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9/여름)/서평/휴머니즘을 위한 사색/강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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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冊․크리틱|
■김재균, <장수풍뎅이를 만나다>(시와사람 2009)
■김영산, <게임광>(천년의시작 2009)
휴머니즘을 위한 사색
강경호|시인
1. 서정시의 길
서정시는 궁극적으로 휴머니즘을 추구하지만 휴머니즘은 인간중심의 이념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며 조화를 이루는 일을 오늘날 휴머니즘이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환경은 모순과 불화로 가득 차 있다. 자아와 타자, 혹은 자아와 세계 사이에 불화가 존재한다. 이 불화를 해소시켜 동일성을 이루는 일은 서정시의 본령이며 인류가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특히 오늘날 서정시의 가치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인류사회가 갈수록 갈등이 심각해지고 자연과의 불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 이래 인류는 끊임없이 영토분쟁, 인종분쟁, 종교분쟁 등을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들이 더욱 악화 확대되는 한편, 인류의 욕망은 근대 이래로 자연을 정복대상으로 삼아 그 가치를 물질적으로 계산하고 있어 자연과의 불화 또한 심각하다.
더불어 기술자본시대의 문을 연 인류는 모든 정보를 컴퓨터를 통해 기억하고 컴퓨터를 앞세워 자본과 욕망의 숲을 기르며 탐욕을 무성히 키워가고 있다. 이제 컴퓨터는 인류의 충실한 노예이며, 더불어 주인이 되어 정신세계까지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컴퓨터 뇌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임기능은 인류의 생각과 감정까지 지배하고 통제한다. 게임 속의 서사는 인류의 탐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서정시가 추구하는 것과는 상반된 반휴머니즘의 세계이다.
2. 생명과 상생의 길
김재균은 첫시집 <달빛 아래 찔레꽃>에서 소외계급 및 갖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위무하였다. 또한 5․18의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지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상처받은 생명들을 따스하게 껴안는 김재균 시인의 품을 느낄 수가 있다. 이번의 시집 <장수풍뎅이를 만나다>는 보다 섬세하게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각성을 보여준다. 이는 첫 번째 시집이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생명에 대한 성찰을 보이고, 구체적인 인간의 삶의 모습을 통해 연민과 성찰을 보였다면 이번 시집은 인간의 삶 뿐만 아니라 자연에게까지 따스한 손길을 확장시켰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 그것은 자연의 위기를 극복하지 않고는 인간만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이 상생함으로써 생명의 순환이 조화를 이루어 더불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작품에서는 하찮은 미물인 장수풍뎅이를 대하는 화자의 뜨거운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산사로 가는 외길 서서히 오르다
우연히 만난 소나무 껍질처럼 생긴 물체
하마터면 밟아 버릴 뻔했다
순간 그 놈이 보낸 은밀한 신호를
나뭇잎사귀들이 알아들은 것일까
고요한 숲을 울리는 소리들의 파장
숲의 느낌은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소나무 조그만 살점이 살아서
보도 위를 살며시 움직이고 있지 않는가!
자동차 바퀴에 깔려 죽을지도 몰라
측은하여 그 놈을 자연에 넣어 주려는데
흑갈색 투구에 가랑이진 돌기를 우뚝 세우다
그래 너나 나나 아마도 순례자일 거야
흙길이면 좋을 텐데 딱딱한 시멘트 포장길
방향 잃고 정처 없이 헤매는 갈증의 구도길
내 마음대로 그 놈을 집어 도롯가에 놓아
바람과 풀잎과 매미소리와 놀게 하였더니
백암산은 흐뭇한 미소로 반겨 주었다.
―「장수풍뎅이를 만나다」 전문
근대 이후 인류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로 각성하고 발전하였다. 이로 인해 인류는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중심적인 사고는 자연을 물질적 가치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자연은 인격적인 존재로 대접받지 못했다. 오늘날 이러한 풍조는 더욱 심각해졌다. 거대한 공룡 같은 포크레인이 하루에도 엄청난 식성으로 산을 파헤치고 아파트 단지나 공장부지를 조성하고 있다. 이렇듯 모든 것을 인간을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생각하는 냉혹한 자본주의의 눈에 비친 ‘장수풍뎅이’는 그냥 발로 짓밟아도 거리낄 것이 없는 하찮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서정적 자아는 “산사로 가는 외길 서서히 오르다/우연히 만난 소나무 껍질처럼 생긴 물체/하마터면 밟아 버릴 뻔했다.” 그것은 조그마한 생명체가 “보도 위를 살며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로 두면 차에 치여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내 마음대로 그 놈을 집어 도롯가에 놓아/바람과 풀잎과 매미소리와 놀게” 했다. 생명에 대한 실천적 모습을 보여주는 「장수풍뎅이를 만나다」는 선언적인 말보다는 직접 행동으로 자연과 인간의 마음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문학의 테두리 안에서 머무는 것보다도 직접 실천할 때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김재균의 작품은 시집 곳곳에 눈에 띈다. “행여 한 마리 벌레라도 짓밟을까/조심조심 흙을 밟았던 일이 있었네”(「그 어느날」), “바위 틈에 기어오르던 달팽이 밟아버릴 뻔했는데”(「꽃밭에서 올리는 기도」),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밟아버리지 않기를 모르고라도 밟아버리지 않기”(「꽃밭에서 올리는 기도」), “모진 바람에 한켠으로 무너지면서도/바다를 살리자는 한 마음 한 뜻으로/버티고 서 있는 수십 만의 인파들”(「기적 같은 일」),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지상의/모든 미물들을 하늘처럼 받들어 모시는/신년 정월의 무등산 산신제”(「무등산 산신제」) 등 곳곳에서 생명에 대한 애틋한 모습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김재균의 뜨거운 생명의식을 읽을 수 있다.
「고슴도치」에서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는 고슴도치의 본능적인 생명의식을 엿볼 수 있다.
가시 많은 동물이라지만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날카로운 본능의 생명력
이 가시는 순수 방어용
만약 어느 누구도 공격하려면
상당한 피해를 입어야 할 걸
살아남기 위해서
모든 무기에 날을 세우고
웅크린 몸에 긴장하는 고슴도치
―「고슴도치」 전문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외부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해 왔다. 진화에 실패한 생명체는 모두 멸종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 ‘살아있다’는 것은 거룩하고 빛나는 일이다. ‘살아있음’ 그 이면에는 눈물겨운 시련을 극복한 그 생명체만의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생명을 가진 축복받은 것들 중에 흔히 ‘못 생긴’ 고슴도치는 “가시 많은 동물”이다. 가시가 많으므로 상대에게 ‘찌른다’는 공격적인 선입견을 주지만, 그러나 고슴도치 입장에서는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생명의 본능을 통해 진화한 것이다. 서정적 자아는 고슴도치의 “이 가시는 순수방어용”이라고 이해를 하고 있다. “만약 어느 누구도 공격하려면/상당한 피해를 입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고 “모든 무기에 날을 세우고” 고슴도치가 “웅크린 몸에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고슴도치의 몸에 난 가시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방어수단임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알맞게 진화하며 수억 년 동안 생명을 유지해 온 고슴도치의 끈질긴 생명력이 말해주듯 생명이란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므로 모두가 소중하다는 것을 「고슴도치」는 우리에게 깨닫게 한다.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노래하고 있다. 즉 생물학적인 의미로써의 ‘생명’의 소중함은 인간과 자연이라는 구분을 초월하여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동등한 가치를 인식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다음 작품은 어려운 처지에서 인간정신의 아름다움이 피어낸 끈질긴 생명성을 노래하고 있다.
꼴찌로 결승선에 들어서는 여전사
마리아나 시메네스
아무도 예기치 못했던
거룩한 완주에 감격해
한반도 동쪽 끝에서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은 더욱 빛났다
절뚝거리며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고통과 눈물 속을 달려온 어린 여자
오랜 슬픔을 딛고 갓 일어선 나라
그의 조국 동티모르를 닮았다
전사 사나나 구스마오처럼
민족의 혼을 일깨우는 타는 눈빛
연약한 숨결로 대륙을 흔들어
영혼을 떨게 하는 끈질긴 생명이여
타고 남은 재에서 불꽃이 피어
우리에겐 뜨거운 희망 심어 주었다.
―「헌사」 전문
「헌사」는 부산 아시안게임 마라톤에 참여한 동티모르의 여자마라토너 마리아나 시메네스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마리아나 시메네스는 부산 아시안게임 마라톤에서 꼴찌로 들어왔다. 꼴찌라면 박수를 받을 처지가 아니지만 서정적 자아는 오히려 “부산 아시안게임은 더욱 빛났다”고 찬사를 보낸다. 그것은 “절뚝거리며 결코 포기하지 않고/고통과 눈물 속을 달려온 어린 여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오랜 슬픔을 딛고 갓 일어선 나라/그의 조국 동티모르를 닮”은 까닭이기도 하다. 즉 티모르는 포르투갈에게 400여 년간 식민지지배를 받은 후, 1945년 인도네시아로부터 서티모르가 강점되었다. 이후 티모르는 인도네시아의 한 성으로 편입되었다가 2002년 인도네시아로부터 동티모르만 독립을 했다. 티모르는 인도네시아군으로 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역사를 갖고 있다. 위의 작품에서 독립을 위해 겪은 시련을 상징하듯 부산 아시안게임 마라톤에 참여하여 비록 꼴찌를 하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를 한 어린 선수의 불굴의 의지는 “민족의 혼을 일깨우는 타는 눈빛”으로 아직도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반쪽만 독립을 쟁취한 티모르인의 “영혼을 떨게 하는 끈질긴 생명”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므로 마리아나 시메네스라는 어린 마라토너가 비록 꼴찌를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결승선에 이른 힘은 티모르인에게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인류의 역사에 수많은 민족이 명멸했지만 오늘날 민족의 이름으로 살아남은 민족은 소수일 뿐이다. 그런데 수백 년 동안 이민족의 지배를 받다가 반쪽뿐이지만 독립을 쟁취한 동티모르가 이렇게 살아남아 있는 것은 끈질긴 생명력이다. 화자는 이 생명력의 힘이 존재를 인식시켜주는 실존의 원동력임을 말해주고 있다.
3.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반성과 사이버공간의 폐해
김영산의 시집 <게임광>은 시인이 시집 제목을 <게임광>이라고 정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이버공간, 혹은 게임에 대한 큰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시집 「게임광」 연작시는 가상공간인 게임세계를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고 사이버공간의 비실재성이 갖는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게임 세계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보다 강한 카타르시즘을 느낄 수 있도록 제작된 경우가 많다. 이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삶의 모습을 반영한 경우보다도 적을 더욱 잔인하게 쓰러뜨려야 하고 보다 선정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게임 속에서는 인간적 사유를 상실하고 정복과 탐욕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다. 이러한 게임 속의 세계에서 드러난 부조리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비판한다. 또한 ‘게임광’의 고독한 실존에 대해서도 사색하기도 한다.
우선 김영산의 「게임광」 연작시를 살펴볼 때 환타지적 수법으로 작품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주지하다시피 게임의 내용은 현실에서는 실재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다보니 게임의 세계가 인간의 경험과 상이한 경우가 많다. 그것들을 통해 인간세계의 부조리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허무맹랑한 세계를 ‘게임광’이 그것을 오락적으로 즐기는 모습에서 비생산적이고 무가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광’이 “한낮에 일어나 또 게임을 한다”(「게임광․4」), “그는 겨우내 게임에 빠져 지냈지 봄이 오는지도 모르고”(「게임광․8」) 게임에 빠져있다. 그러므로 「게임광」 연작시 표면에 드러난 게임광은 자신의 영혼을 소모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자이다. 더불어 ‘게임광’은 현실에서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자이면서 게임에서도 소외된 자이다. 즉 “여자의 몸은 겹겹이 둘러싸인 로랜협곡성보다 깊”(「게임광․6」)을 수밖에 없다.
게임생, 너를 불러본다
고독사한 늙은 계절이 왔다 간다
우리는 늙지 않아 괴롭구나
너는 좋으냐
죽은 지 몇 달이 되어 구더기가 나오는
입을 깁는 생,
창밖에는 여전히
게임의 방을 엿보느라 죽음의 계절이 기웃거리고
―「게임광․1」 전문
「게임광」은 게임에 미쳤으므로 지금껏 “내 청준 바친 게임”이며 또한 “내 청준을 바칠 게임”((「게임광․8」)이다. 그러나 인간은 가상공간에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다. 아날로그적인 사유를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실존이다. 그런데 ‘게임광’은 디지털 세계의 모순에 빠져 비실재의 삶을 살고 있으니 인간다운 실존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게임광」은 연작시를 통해 시인은 게임문화가 보여주듯 허구와 비인간성 그리고 가상현실과 같은 세계를 추구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고 하겠다.
「게임광․1」에서는 “게임생”은 고독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늙은 계절” 주변을 떠돈다. 그는 현실을 도피하여 게임에 빠졌지만 “늙지 않아 괴롭”다. 그러나 “게임 세계에서 죽음은 영구적인 게 아니”다. “묘지에 있는 영혼 치유사에게 소생을 부탁하면/일정한 경험치를 잃고 부활할 수”(「게임광․6」) 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가공의 세계에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해 게임세계에서는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또한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비현실적인 세계이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의 생명성은 ‘생로병사’의 과정을 지나면서 참된 인간의 길을 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자 이치이다.
한편 「게임광」 연작시가 보여주는 또 다른 일면은 게임세계의 비인간적인 승부욕과 무책임한 탐욕과 유희가 비정한 현실세계의 일면을 비유한다.
1층―1.5층:탑의 망령, 절망의 궁수, 절망의 검사, 할라트의 사냥개, 살육의 바딘(파티 몬스터)―바딘의 기사, 바딘의 마법사
2층-2.5층:할라트의 감시자, 처참한 전사, 크랜디온, 할라트의 근위병, 살육의 바딘(파티 몬스터)―바딘의 기사, 바딘의 마법사
3층-3.5층:할라트의 사냥개, 타락한 현자, 심연의 궁수, 에린 에디언스, 엘모아덴의 궁녀(파티 몬스터)―엘모아덴의 호위전사, 엘모아덴의 호위궁수, 엘모아덴의 메이드, 데스로드 할라트(레이드 보스)―데스 메이지 크리샨
4층-4.5층:할라트의 근위병, 할라트의 전사, 할라트의 기사, 할라트의 시녀, 엘모아덴의 궁녀(파티 몬스터)―엘모아덴의 호위전사, 엘모아덴의 호위궁수, 엘모아덴―「게임광․7」 중에서
‘리니지․∐ 오만의 탑’이라는 부제가 붙은 「게임광․7」은 “오만의 탑” 층층마다 수많은 인물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 게임을 해보지 않은 독자들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만의 탑”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14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탑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오만함’으로 규정지을만한 것들일 것이다. 이 탑에는 “탑의 망령”이 있고 “궁수” “검사” “사냥개” “감시자” “전사” “근위병” “마법사” “타락한 현자” “궁녀” “호위전사” “시녀” “백금족” “경호대 ” “영생의 구원자 ” “수호천사” “주술사” “천사의 심부름꾼” “대천사” 등이 있다. 나열된 직책에서 인물들의 역할과 성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들은 악역을 맡은 자들과 이들과 맞서 싸우는 선량한 자들일 것이다. 마지막 14층, 오만의 탑 꼭대기에 ‘선’의 상징이랄 수 있는 “대천사”가 탑의 상단부에 있는 것으로 보아 선과 악의 구도에서 ‘선’쪽에 있는 자들이 탑의 상단부쪽에 있는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어쨌든 이 작품 속의 서사가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인 것들이라고 해도 ‘선악’의 대결구도는 인간이 끊임없이 자행해온 모순된 법칙이다. 이는 탐욕스러운 인간의 모습과 그것과 맞서 싸우는 대결양상으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왔으며 지금도 이 쟁투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시인은 인간 내면의 탐욕과 호전성을 드러내 보이는 한편 가치 있는 것을 지키려는 인간의 실존을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리니지’게임은 한때 대단한 위력을 떨쳤다고 한다. 수많은 ‘게임광’을 양산해 게임광들이 몇날 며칠 잠을 설치며 온라인 게임에 몰두해 패가망신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특히 ‘리니지’의 아이템, 즉 게임 속의 인물들이나 무기들이 수백만 원, 수천만 원에 매매가 되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재의 현실공간이 아닌 비실재의 가상공간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실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김영산의 게임시는 ‘게임광’의 실존을 보여주는 한편 환타지적인 게의 서사를 통해 탐욕스럽고 호전적인 인간을 통찰하며 반성하게 하는 힘을 보여주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강경호∙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함부로 성호를 긋다> 등. ≪시와사람≫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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