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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9/가을)/권두칼럼/작가로서 현실에 대한 관심/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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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96회 작성일 09-12-2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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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
작가로서 현실에 대한 관심


지난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영욕의 세월을 자살로 마감했다. 5월 30일에는 국민장이 거국적으로 엄수되었다. 추모와 애도의 시간이 6월 내내 이어졌다. 그는 재임 기간 내내 한국 민주주의의 환골탈태를 위해 노력했다. 기꺼이 재계의 적이 되었으며, 검찰의 반발을 자초했다. 보수언론으로부터 받은 타매는 한국 사회에서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박연차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그의 개혁과 실험은 회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의 죽음은 그 회의마저 불식시켰다. 사람들은 지난 10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의 죽음은 그를 사랑한 모든 사람들의 10년을 되찾아주는 죽음이었다. 그래서 추모와 애도의 자리에는 언제나 어떤 부채감과 죄의식마저 느껴졌던 게 아니었을까.
현 정부의 실책은 지난 10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10년’을 강요한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사람들은 ‘위기의 기억’을 공유함으로써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금 모으기 운동’으로 경제 위기를 스스로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공유했으며, 한일 월드컵으로 위기의 기억을 영광의 기억으로 전회轉回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붉은 옷을 입고 거리에 함께 있었다. 여론조사의 열세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돼지저금통’ 정치자금을 건넨 수많은 사람들의 힘이 그를 대통령이 되게 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 발의의 순간에도 노 전 대통령 혼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그 곁에 있었다. 한미 FTA 협상 기간 동안에는 오히려 국민들이 참여정부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지난 10년은 그런 의미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혼자만의 10년이 아니라 위기를 함께 한 기억으로 맺어진 모든 사람들의 10년이었다. 그리고 이 ‘기억의 공동체’는 현 정부에 들어서서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촛불의 기억으로, 노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는 애도의 기억으로 더욱 굳건히 맺어졌다.
현 정부는 ‘두 개의 국민’ 현상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각종 부자 감세 정책과 부동산 규제 완화가 언제나 일자리 대책보다 앞섰다. 발본적인 대책 없이 허드레 일자리를 만들어놓고 비정규직법안 시행의 유예로 생색내기에 급급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민정시찰 때나 재래시장에 들러 만 원 어치씩 팔아주는 그런 이미지 정치가 아니다. 인사가 만사라는데 인사청문회 때마다 하자가 있더라도 일만 잘 하면 된다는 이상한 실용주의가 판을 치니 실망감이 크다. 용산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궐기했는데 범법자가 되었다. 탈세를 하고도 국세청장이 되고 위장전입을 해도 검찰총장이 되는데 납득이 안 가는 일이 많다. 군복을 입은 보수단체 사람들이 전 국군통수권자의 영정을 짓밟으면서 애국을 운위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진정한 보수인지 의심스럽다. 대통령이 방문한 분식집에 대해 따가운 눈총을 주는 일부 네티즌들의 행태도 우려를 낳게 한다. 시국선언을 하는 교수들과 그것을 비난하는 노인 단체 회원들을 보면서 사회갈등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음을 감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 6월 9일에는 188명의 문인들이 참여한 시국선언문 「이것은 사람의 말」이 서울 도심에서 낭독되었다. 작가들의 시국선언이지만 작가이기에 앞서 하나의 인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현 정부의 실정에 대해 비판하려는 것이 그날 시국선언의 취지가 아니었나 싶다. 188명의 문인들이 서명을 했지만 사실 그보다 많은 문인들이 그 대의에 공감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집회에 참여함으로써, 어떤 사람은 시국선언에 동참함으로써, 또 어떤 사람은 창작을 통해 현실과 이어져 있으려고 하고 있다. 어떤 미문이나 논리를 갖추어서가 아니라 필부들의 투박하지만 가식 없는 원성을 대변하는 것도 오늘날 작가들이 회피해서는 안 될 책무이다.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문학은 공허하기 마련이다. 참여의 논리가 아니더라도 순수문학의 대의에 있어서도, 대운하가 4대강 정비가 되고 족벌신문이 방송을 겸업하는 것이 언론의 선진화가 되는 ‘말의 오염’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 오염된 세상에서 문학은 그 빛을 잃기 십상이다. 아무도 인간의 선의를 믿지 않는 사회에서 문학이 어찌 통용될 수 있을 것인가. 
≪리토피아≫의 정신은 ‘말의 오염’에 맞서 인간의 선의를 옹호하고 지켜나가는 것이다. 지난 9년간 ≪리토피아≫는 인간의 위의를 드러내는 문학이 가능한 사회를 꿈꾸어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호에는 「갈증과 희망의 목소리」 특집을 마련했다. 400자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격앙된 감정을 깎아내고 현상을 응축된 언어로 담아내는 데 400자라는 틀이 더 유용하리라는 판단이 섰다. 일성一聲의 비난을 넘어 다양한 비판과 애정 어린 충고들을 담아내고 싶었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말 밖에 말을 남겨두는 것, 그 말 밖의 말을 읽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통감했다.   
가을호에 참여해주신 모든 필자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리토피아≫를 변함없이 사랑해주시는 독자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모든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우리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길을 갈 것이다. 


2009년 7월
장이지(시인,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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