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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9/가을)/신작시/먼 산 외 1편/신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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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먼 산 외 1편
겨울 저녁 7시
산이 피곤하다며 다리를 쭉 뻗고 눕는다
바람에도 미동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은 모두 내버려 두라는 듯
그냥 바라보기만 하라는 듯
머리 밑으로 노을이 잘잘 끓는 듯 불길 일어도
그 순간 그 뜨거움 다 사라지는 것이라고
사라지는 것은 손을 흔들어 주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라는 듯
종일 사라지는 것들을 위해 낮은 자세로
더 낮아지라고
셈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아무것도 만져지는 것이 없는 시간조차 기척 없는
그러므로 하루를 잘 벌었다
그러므로
저 먼 산의
겨울 저녁은 없다.
시제詩弟
연구실로 철골소심이라고 쓴 난분 하나 배달되었다
보내는 사람이 시제라고 되어있다 시제라……
나는 제자 중에 몇 얼굴을 생각했으나 곧 잊어버렸다
난분의 잎새가 몇 가닥 누렇게 변해 갈 무렵 난분의
갈증도 알지 못하고 무관심한 어느 날 아침 난분이
내게 말했다
얘야, 시제를 아느냐 무심히 지나치던 내게 말을 걸었다
그 순간 머릿속을 번개처럼 탁치는 그 사람, 시형 아니 시부
나는 난분 앞에 단정히 서서 말했다 스승이시여!
신달자∙ 1964년 ≪여상≫ 신인문학상. 1972년 ≪현대문학≫으로 재등단. 시집 '오래 말하는 사이' 외 다수. 수필집 '백치애인' 외 다수. 대한민국문학상, 시와 시학상, 시인협회상 수상.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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