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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9/가을)/신작시/욕망의 무게 외 1편/조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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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28회 작성일 09-12-2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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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조
욕망의 무게 외 1편


마흔 무렵부터 무언가를 버리기 시작했다
문단 판에도 어울리지 않고 
집회 현장에 나가도 전선을 먼발치에 두고 서성이거나
친구들이나 동기간도 일부러는 만나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최대한 가벼워져야 한다고 
마흔 무렵부터 혹하지 않는 나이라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정확히는 
21세기가 시작되면서부터 어떻게 보면 
아버지가 죽은 나이가 되면서부터 
하던 것들을 하나둘씩 버리기 시작했다
누구의 권유도 충고도 훈계도 사양했다 
다 버리면서 그리고 겨우 남은 집에서 
일터까지의 사이에 놓인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에게마저 데면데면 굴었다 
힘들었다 무언가를 얻는 것보다 버리는 일이
힘들었다 버리지 않아야 할 것을 버린다는 생각이
버리고도 미련을 갖는 마음이 힘들었다
스스로 힘들어 하면서도 눈만 뜨면 
어디 무엇을 버릴 게 없을까 찾았다
십 년 가까이 버리다보니 가볍게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때 비로소 욕망의 무게를 잴 수 있었다.





난곡동 사투리 이야기


정선 아리랑학교 울타리 측백나무 생초 고속도로 나들목 탱자나무 무안 농협 주차장 호랑가시나무 양수리 남한강변 홍단풍나무 서천 동백정 동백나무 이런 나무들의 씨앗을 받아다 혼자 일하는 사무실 화분에 뿌려두고 날마다 물을 주었습니다 
한 달 만에 혹은 일 년 만에 싹들이 돋아 제법 나무꼴이 잡혔습니다 햇빛 드는 창가에 올려두고 잡초도 뽑고 쓰다듬기도 하며 어떤 나무는 벌써 처음 제 모습대로 씨앗을 매달기도 하는 것을 보며 몇 년을 싫지 않게 보냈습니다 
나무들이 어느 날부터 불만이라도 있다는 듯 투덜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충청도 제각각 사투리로 마음 놓고 떠들어댈 때는 성가시기도 했습니다 화분이 작다 물이 많다 햇빛이 적다고 입을 삐죽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고향 생각에 훌쩍거리는가 싶기도 하고 선거철이면 지방색을 띠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더는 참 감당하기가 어려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제가 태어난 곳으로 보내기는 뭣하여 가끔 마주치는 난곡동 산비알에 옮겨 심었습니다 여기가 고향이려니 여기고 살라며 다들 그렇게 산다고 뿌리를 단단히 내리라며 다독여주었습니다.


조기조∙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 수상. 시집 낡은 기계, 기름 美人 등. 도서출판 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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