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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9/가을)/신작시/손 외 1편/박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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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란
손 외 1편
잠자던 그의 손이 더듬더듬
허공을 짚으며
어딘가에 닿으려 한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불러냈기에
손은 혼자 맹세라도 하듯
간절히
뭔가를 꽉 움켜쥐었다 놓는가
깨어있을 때
다하지 못했던 일을 하려는지
도달할 수 없는 거리를 손사래치며
가고자 하는지
끝내 그 자신도 알 수 없겠지만
아침이면
수줍은 듯 놓여 있는
그의 두 손,
정작 너무 까마득하기만 해서
아무 것도 아닌 듯 지나가는 일이 있다
저녁 7시
어디선가 희고 따스한 그림자가
미열이 오르기 전의
내 이마에 잠깐 멈추었다가
떠나갔다
늘 이쯤에서
어렴풋함과 희미함의 결말이 오고
늙은 은행나무와 오랜 골목길이 거기서
한 번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 잠깐의 비극적 희극을
누군가 대신 할 수 있다면
아득해지기도 두렵고
따라나서면 영영 못 돌아올 것 같은
가슴 속 그 길을
열두 폭 비단치마 펼치듯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박미란∙강원도 황지 출생.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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