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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9/가을)/신작시/매난국죽梅蘭菊竹을 치다 외 1편/조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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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환
매난국죽梅蘭菊竹을 치다 외 1편
가난을 무릉武陵이라 바꿨습니다
한 살림 조촐하여 홀로 차를 마시지만
잘 놀고 있습니다
어찌 사느냐, 상투적으로 물으시니
죽竹을 친 창에다가 햇살을 불러놓고
밥도 먹고 간혹은 흙도 요리해 먹고
잠을 자다가
서푼 짜리 시詩를 차압당해도
잘 놀고 있습니다
봄엔 매화 한 그루 심었습니다
매죽梅竹이 한결 명백해졌으므로
여전히 혼자 잘 놀 것입니다
어머니도 잊고 친구도 잊고 후레자식 같은
봄 가고 여름 가고 비 그치고
쟁명한 뜰에 황국黃菊 분盆을 두었으나
풍경이 자주 기울어져
노근란露根蘭 한 촉 쳤습니다
좀 헐겁지만
이제는 깨 벗고 놀만 합니다
무릉할만 합니다
자서自序
시詩 한 줄 쓰지 않은 시인이
시집의 자서를 먼저 쓴다
오늘도 시장통을 걷는다
골목을 걷는다 사소하다
단 한 줄이면 족하다
배가 고프면 노래를 부른다
완창을 해본 적 없어도
명창이 되었다 유래 없는 사전만을
백과의 뒷골목을 뒤진다 배꼽을 뒤진다
까맣게 굳어버린 사유를
상징과 은유를 버려야한다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다 전복적 상상력이다
시 한 줄 쓰지 않은 시인이
바람을 걷는다 담쟁이넝쿨을 걷는다
된장찌개 냄새를 걷는다
비누거품을 걷는다
온몸이 비유적 언어인 시인은
단 한 줄의 시를 꿈꾸지만
오늘도 탈고가 안 된다
서성거리는 일이 직업이다
조용환∙1998년 ≪시와사람≫으로 등단. 시집 뿌리 깊은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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