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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9/가을)/신작시/애기똥풀 앞에서 외 1편/김인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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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육
애기똥풀 앞에서 외 1편
네 앞에서
부끄럽다
곱디고운 노란 애기똥풀꽃
어렸을 적
엄마 젖가슴만으로 무량 행복했던 적, 있었지
죄 없이 순한 눈 초롱초롱 별이었던 적, 있었지
그땐 저 애기똥풀 꽃빛 같은
순황의 똥을, 세상을 향해 통쾌히 날려보냈지
황금의 똥은 빛나는 자랑이었지
어머니의, 기쁨이었지
한 점 죄 짓지 않아
자두처럼 향기로웠지
어느덧
죄 많은 불혹의 세월
나, 부끄럽네
황금빛 순색을 잃은 나는
구린내 풍기는, 변색의 나는
사랑아, 너를 쌈하고 싶다
1.
사랑이 꽃잎처럼 사무칠 때
상춧잎에 따뜻한 밥알들을 싸듯
꽃잎처럼 흩날리는 추억들을, 두 손으로 고이 감싸보시길
쌉쌀하고 달콤한 부드러운 속살들이
첫날밤의 신부처럼
아삭아삭 착하게, 당신에게 와서 먹혀줄 거야
고혹한 속살을 넋 놓고 탐닉하는 사이
당신이 사각사각 그녀에게 먹히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쌉쌀하고 달콤한 희열의 쌈
당신이 그녀를 먹고, 그녀에게 당신이 먹힘으로써
기꺼이 하나가 되는, 한통속이 되는
혼곤한 오월의 꽃잠처럼
무아경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게 서로에게 스미게 될 거야.
2.
유월의 햇살은 초강력 최음제
희姬야,
하늘을 표적하여 꼿꼿이 솟는 상추의 꽃대를 보렴
수음하는 바람의 거친 숨결
불끈불끈한 저 직립의 발기를 보렴
오호,
저 견강한 근육질의 꽃대 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절정의 꽃들이
쫙― 쫙― 쏟아내는 꽃불들을,
저 열락의 희열들을 좀 보렴!
3.
쌈을 싸는 것은
그리움을 싸는 거다
내 열망은 한 그릇의 밥과 같은 것
주린 배고픔 같은 간절함의 날들을
송알송알 눈물 같은 밥알들을, 두 손 보듬어 고이 싼다는 것은
홀로 남겨진 허기 같은 쓸쓸함을
찢겨진 상처들을, 온몸을 펼쳐 감싼다는 것은
그대를 통째로 사랑한다는 거다
웃음에서 눈물까지
환희에서 절망까지, 송두리째 사랑한다는 거다.
김인육∙2000년 ≪시와생명≫으로 등단. 시집 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 아내의 문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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