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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9/가을)/신작시/봉숭아꽃의 비밀 외 1편/정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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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겸
봉숭아꽃의 비밀 외 1편
견성암* 가는 길목
듬성듬성한 모오리돌 사이를 뚫고
외롭게 피어 있는 봉숭아꽃
너무 붉었다
푸른 나뭇잎 사이로
숨어든 햇살
한참을 망설이다가
풍선처럼 팽팽해진
씨앗자루를 살며시 흔들고 지나갔다
툭, 꼬투리가 터지고
씨앗 하나 파편이 되어
내 가슴속으로 날아와 박혔다
상처 난 파편자국에는
비밀정원이 생겨나고
꽃눈이 움트기 시작하였다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갓 피어난 꽃잎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다
내 안에서
나를 아프게 하였다.
*충남 예산군 수덕사 인근 비구니 사찰.
마곡사 숲길
철새가 텃새 되어 둥지 트는 숲
순한 나무 사이로
초록의 좁은 길이 보이고
그 길을 따라
새와 바람이 나란히 달리고 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나무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어깨를 낮추며
새들과 입맞춤을 하고 있다
농익은 독경소리가 계곡을 지나
강으로 흘러가고 있다
늙은 소나무길 따라
고단한 발자국들이 무수히 찍혀 있다
길마에 짐을 가득 실은 황소 한 마리
발자국을 따라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목어의 울음소리가 사방으로 퍼져가고 있는
숲의 끝
안개 꽃 피어난 해탈문 앞에
수많은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멈춰 서 있다
대광보전에서 쏟아져 나오는
직립의 언어들이 푸른 잎사귀로 변하여
나무 가지마다 달려 있다
황소가 무릎을 꿇고
무거운 짐을 벗고 있다.
정겸∙2000년 ≪세기문학≫,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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