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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9/가을)/신작시/엘리베이터 모기 외 1편/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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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엘리베이터 모기 외 1편
모텔 엘리베이터 안은 수직의 피스톤처럼 건조하다. 오로지 오차 없는 오름과 내림의 반복뿐이다. 나이트 숲에서 나온 남녀가 젖은 취기로 번식기에 오른 뱀처럼 곡선으로 엉겨있다. 곧 무미한 허물을 벗고 스스로 깊어지는 비린내를 맡을 차례이다. 그들이 발산하는 끈적끈적한 점액을 노렸다는 듯이 산란의 날개를 퍼덕인다. 윙윙, 주문을 외우듯이 부풀어 오르는 따끔한 허기가 빨려온다. 음, 혈관을 타고 흐르는 사람나무의 수액만큼 바람 든 것이 없다. 마그마처럼 뜨겁게 노출된 수위일수록 통제 없는 방출이 쉬워진다.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잠겨 있던 몸의 문들이 벽 없는 방에서 제각기 해제된다. 괜찮아, 이제 노선을 벗어난 정점에서 끝내기 위한 시작이다.
불혹
돌아가기에는 이미 늦고
끝내기에는 너무 이른
오후 네 시 경
물복숭아를 깨문다.
앗, 꿈틀대는 토막 난 벌레 한 마리
문득 드러난 하얀 속살 사이로
몸부림치던 벌레 먹은 어머니를 본다.
날마다 줄기가 되려고 땅을 갉아 먹으며
올라 왔던 뿌리의 뻐근한 기억이다.
끝내 흉터로 부풀어 오른
내가 먹은 시간의 각질을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다.
권성훈∙2002년 ≪문학마을≫,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 시집 '푸른 바다가재의 전화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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