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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9/가을)/신작시/아이디어 외 1편/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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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540회 작성일 09-12-21 00:25

본문

오은

아이디어 외 1편


한 줄기 빛은
한 줄기 빛
발아가 이루어지면 
한 포기 난초와
한 떨기 장미로 피어난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엄습하는 것들을 사랑해

때때로 우리가 직접 나서서 
그것들을 잡기도 하지

커피의 김과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커서는 껌벅거리며 최면을 걸고
은밀하게 시작되는
한낮의 점성술

우리는 별처럼 빛나는 순간을 기다려
우리의 동공이, 우리의 동맥이
현장을 사로잡는 순간을 기다려

때때로 빛이 너무 커다래서
우리는 터질 듯 벅차올라
땅에 꽂히는 일도 있겠지   

바르르 파르르
눈꺼풀을 떨며
마지막 남은 한 줄기 빛을 울컥 토해내겠지 

한 줄기 빛은
한 줄기 빛
땅 위로 봉긋
더욱 또렷하고 아름답게 피어나

원음보다 선명한 메아리처럼

우리는 분위기를 장악하며
돌아오기 위해 달아나지

모니터 속으로
키보드 위로
커서 앞으로

별들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나는 현장에서 바야흐로 발아해

이 빛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포스트잇을 떼서 이마에 탁,
붙이고 침대 위로 뛰어드는 순간

타버린 팝콘을 쥐듯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






스케치북


뚜껑을 열면 뽀얀 너의 얼굴이 튀어나온다 나는 나의 부분을 들어 너의 전체를 쓰다듬는다 너는 하얗다 과분하다 아득할 정도로 
뿌루퉁한 크레파스를 꺼내 너를 조준한다 네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린다 너의 부분에 먹칠을 해 주겠다 너의 전체에 본때를 보여 주겠다

너의 얼굴에 대고
빨간 동그라미를 그린다

네 입에 달콤한 사과를 물린다 커다랗고 하얀 이가 덥석 사과를 문다 사과는 본분에 충실하다 먹음직스럽다 아찔할 정도로
내 손이 군침을 대신 흘린다 기꺼이 나는 너의 부분이 된다 너의 이가 너의 목구멍으로 책임을 떠넘길 때까지 사과가 전체처럼 아득해질 때까지

내 묘사가 그 누구의 동의도 구하지 못할 때까지 
나는 손끝으로 너를 건드린다


오은∙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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